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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씬한 사람과 친구하면 나도 날씬: 미생물 생태계

음식을 먹으면 위에서 소화된 후 소장으로 내려간다. 소장은 위에서 소화된 음식으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하고 대장은 주로 수분을 빨아들인다. 이러한 소화과정은 위나 소장이나 대장이 모두 하지 않는다. 인간의 몸에는 자신의 세포보다 많은 미생물이나 균이 살고 있다. 인간 몸 자체가 하나의 생태계이다. 소장과 대장에 사는 장내 미생물이 우리 몸 안에서의 소화와 영양분 흡수, 면역계 발달에 영향을 준다. 우리는 장내 미생물과 공생하고 있다. 그래서 장내 미생물종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이 균형이 깨지면 대사 체계에 혼란이 생겨 비만해지거나 당뇨병 같은 질병에 걸릴 수 있다.


인간의 체중은 장내미생물의 영향만 받는 것이 아니다. 비만을 유발하는 ‘외부’ 바이러스도 있다. 1980년대 인도에서 비만 환자를 치료하면서 전혀 살이 빠지지 않거나 살을 뺏는데도 다시 몸무게가 돌아오는 것이 관찰되었다. 그런데 당시 인도 전역에 조류바이러스(SMAM-1)가 돌아 수많은 닭이 폐사하였는데 죽은 닭이 지방이 아주 많이 축적돼 있음이 발견되었다. 두란다는 그 바이러스를 닭에게 주입하였더니 체중이 느는 것을 확인하였다. 두란다는 조류바이러스를 연구하면서 감기와 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Ad-36)도 인간에게 지방 축적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바이러스성 비만을 완전하게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 인과관계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은 외부환경 그것도 바이러스로 인하여 체중이 달라진다. 인간의 몸 자체가 생태계를 이루지만 또한 인간이 사는 환경도 함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우리 인간만이 먹고사느라 모르거나 잊고 사는 것뿐이다.


비만이 병균처럼 사람 간에 호흡기를 통하여 전염될 수 있다. 2020년부터 코로나19로 호흡기 질환을 피하느라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었지만 비만도 호흡기를 통하여 전염된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 몸에 서식하는 박테리아의 중 3분의 1가량은 공기 중에서도 생존할 수 있어 공기를 통해 타인의 몸속으로 침입할 수 있다. 쥐를 통한 실험을 보면 비만 체형의 쥐에게서 채취한 장내 미생물을 마른 체형의 쥐에게 주입했더니 날씬했던 쥐는 비정상적으로 체중이 불어났다. 따라서 날씬한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날씬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장내미생물 중에는 비만을 직접적으로 가져오는 것도 있다. ‘뚱보’ 균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이 붙여진 장내미생물은 체중을 좌지우지 한다. 이 장내미생물이 체중을 늘리고 요요현상을 일으킨다. 요요현상이 일어나 살이 찌는 쥐의 장내 박테리아를 다른 쥐에게 넣어주자 체중이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또한 장내에 나쁜 세균이 많으면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인 렙틴의 기능이 저하돼 과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똑같은 음식이라도 비만 유발 균이 많으면 체중이 쉽게 증가할 수 있다.


사람처럼 미생물도 유전체가 고정되어 있지 않아, 유전자의 일부를 잃을 수 있고, 다른 미생물과 유전자를 교환하거나 새로운 유전자를 얻을 수도 있다. 같은 세균도 한쪽 유전체에선 발현되고 다른 쪽에선 발현되지 않는 유전자나 한쪽에선 여러 번 발현되는데 다른 쪽에선 한번 발현하는 유전자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차이를 ‘구조적 변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구조적 변이를 체계적으로 찾아내 7,000개가 넘는 변이를 찾아낸 연구결과가 나왔다. 몸무게와 관련된 변이도 나왔다. 어떤 미생물 종의 유전체에 특정한 변이가 있는 사람은 그 변이가 없는 사람들보다 몸무게가 몇 kg 덜 나갔고 허리가 수 ㎝ 더 가늘었다. 이러한 변이는 해당 미생물에게 특정 당을 낙산 염(Butyrate) 성분으로 바꾸는 능력을 부여한다. 낙산 염은 항염증 효과가 있고 대사 작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알려졌는데 이 능력이 몸무게와 허리 크기의 차이를 설명해준다고 추정한다.


    다이어트의 한 방법으로 간헐적 단식이 많이 권장된다. 그러나 간헐적 단식을 해도 살이 빠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 원인 중 하나가 장내미생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간헐적 단식을 하면 보통 갈색지방세포가 늘고 당뇨와 지방간에 관련된 수치도 모두 좋아진다. 그런데 장내미생물이 부족하면 그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사람에게 좋은 장내미생물을 투여하면 다이어트 효과가 나타난다. 이는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으로 한 연구지만 사람도 유사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내 미생물의 균형이 깨지면 살이 찔 수 있다. 다이어트를 위하여 하는 말은 간단하다. 규칙적으로 자연식품을 골고루 먹으라는 것이다. 이처럼 간단하고 쉬운 말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대부분 이 간단한 사실을 놓친다.


특히 규칙적으로 먹는 것은 장내미생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생물이 그렇듯이 장내 미생물도 24시간 주기의 생체시계(circadian clock)에 따라 살아간다. 생체시계는 간단하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어두워지면 자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못하는 생체시계이다. 생체시계 하나로 현대인들은 질병이 걸리고 건강이 나빠지고 살이 찐다. 장내 미생물은 인간이 먹는 음식물뿐 아니라 하루 중 어느 시간대에 먹는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따라서 장내 미생물의 생체시계에 따른 순환이 건강과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장내 미생물의 순환적인 변화는 전반적인 체내 물질대사에 깊숙이 관여한다. 장 미생물은 생체 리듬에 맞춰 변화하면서 포도당, 콜레스테롤, 지방산 등을 조절하고 통제한다. 인간은 자신의 힘만이 아니라 장내미생물과 협업하여 살아가는 가는 것이다. 음식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거나 먹는 시간이 불규칙하면 장내 미생물의 균형에 큰 ‘충격’을 준다. ‘나쁜’ 음식을 먹어도 장내미생물의 생존리듬을 교란시킨다. 몸이 비만이거나 규칙적으로 좋은 음식을 먹지 않으면 장내 미생물의 리듬과 생체시계 조절이 교란된다. 결국은 살이 찌고 건강이 나빠진다. 하지만 규칙적으로 좋은 음식을 먹으면 섭식 패턴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생체시계 조절에 도움을 주는 새로운 신호 경로가 생긴다. 어떤 음식을 얼마나 규칙적으로 먹는지가 장내 미생물의 건강 유지에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https://www.cell.com/cell-reports/fulltext/S2211-1247(22)00797-5?_returnURL=https%3A%2F%2Flinkinghub.elsevier.com%2Fretrieve%2Fpii%2FS2211124722007975%3Fshowall%3Dtrue


장내미생물은 우리 맘대로 바꾸거나 유익한 것으로 교환할 수 없다. 다만 할 수 있는 일은 장내세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그것을 기초로 장내세균을 바꾸는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학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은 생물로서의 인간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예측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의지의 포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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