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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 자고 가장 많이 일하는 한국인의 삶을 진화로 보면


야생 나무늘보는 하루 9.5시간 정도 잔다. 잡아서 우리에서 사는 나무늘보는 하루 16시간을 잔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종인 침팬지의 수면 시간은 하루 9.5시간, 솜털머리타마린 원숭이는 하루 13시간이다. 심지어 하루 17시간을 자는 원숭이도 있다. 인간도 산업화되기 전에도 은 7~8.5시간을 잤다. 인간과 가까운 유인원 또는 영장류보다도 훨씬 적게 잔다. 


현대인뿐만 아니라 지금도 초기인류와 유사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도 수면시간이 짧다. 볼리비아 치마네 족, 나미비아 산 족, 탄자니아 하드자 족의 평균 수면 시간이 5.7시간에서 7.1시간이다. 하드자 족 사람들은 평균 6.25시간을 잤고 대부분 충분히 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은 환경적인 이유로 밤에 자주 깨는 바람에, 실제 수면을 위해 투자된 시간은 9시간이 넘었다.


사실 인간은 유인원 또는 영장류와 유전자 차이가 아주 작다. 따라서 이렇게 적게 잘 생리학적 이유는 없다. 실제로 체질량, 두뇌 크기, 식 습관을 고려한 수면 예측 모델에 의하면 인간은 침팬지처럼 하루에 9.5시간을 자야 한다. 인간은 다른 영장류보다 잠을 덜 자게끔 진화한 것이다. 특이한 것은 ‘렘수면’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인간의 수면시간이 줄어든 것은 진화론으로 설명된다. 인간이 살던 자연환경이 변하면서 그것에 적응하면서 수면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초기 인간은 나무에서 살고 잠도 잤다. 침팬지와 몇몇 유인원은 지금도 나무에서 잔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평원인 사바나로 내려온 인간은 땅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사자 같은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위험이 커졌다.


그래서 인간의 수면시간이 이렇게 짧아진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 가운데 하나가 사회적 수면 가설이다. 두 가지 근거가 제기된다. 하나는 잠자는 동안 일어날지도 모를 포식자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런 생활은 아마도 인류의 조상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나무 위에서 내려오는 순간 시작됐을 것이다. 이는 잠을 자는 도중에도 안구운동이 활발한 렘수면 비중을 높이는 쪽으로 인간을 진화시켰다. 다른 하나는 부족한 수면은 낮잠을 통해 보충했다는 것이다. 집단생활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일부가 보초를 서는 동안 일부는 잠을 잘 수 있었다. 생존환경이 바뀌면서 일어난 생활리듬의 변화였다. 교대로 수면을 취할 수 있게 해준 집단생활 시스템을, 달팽이 껍질에 비유해 사회적 껍질이라 부른다.


인간의 수면시간은 산업화 이후 다시 줄어들고 있다. 산업화가 가속화되고 일을 많이 하면서 잠을 많이 잘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온난화 때문이다. 과거의 수면시간 감소가 자연환경의 변화가 원인이었다면 지금은 인간이 만들어낸 자연환경 변화로 수면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줄어든 수면시간은 연간 평균 44시간이다. 하루 7분 정도이지만 적은 숫자는 결코 아니다. 이것이 누적되면 피곤할 수밖에 없다. 수면시간 부족은 또 하나의 불평등을 낳았다. 수면 감소는 개발도상국이 더 컸기 때문이다. 밤 최저기온이 1도 상승할 때 개도국 주민의 수면감소는 선진국 주민의 3배였다. 개도국 주민들은 선풍기나 에어컨 같은 냉방기 사용률이 낮아 수면 손실의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 이는 더운 기후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수면 잠식 정도가 더 심하다는 사실과 맥락을 같이한다. 수면이 부족해지면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나쁘다. 치매위험도 높인다. 가난한 국가의 사람들은 병도 많이 걸리게 된다.

https://www.cell.com/one-earth/fulltext/S2590-3322(22)00209-3?_returnURL=https%3A%2F%2Flinkinghub.elsevier.com%2Fretrieve%2Fpii%2FS2590332222002093%3Fshowall%3Dtrue


21세기 초 사람들의 평균 수면은 6.8시간으로 하루 평균 8시간 수면이 기준이었던 1942년에 비해 많이 줄었다. 하루 평균 8시간을 자는 국가는 단 한 곳도 없다. 최소의 수면 7시간이라는 기준을 충족하는 국가는 있다. 뉴질랜드, 네덜란드, 핀란드, 영국, 아일랜드 등이 7시간대이다. 최저 수면 시간을 유지하는 국가로는 일본 5시간 59분이고 사우디아라비아, 스웨덴, 인도, 필리핀 등이 6시간대이다. 개발도상국가의 수면 상태가 상당히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상 하루 평균 잠자는 시간이 가장 적고 일하는 시간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이다. 일뿐만 아니다. 청소년들이 공부하는 시간의 양은 어느 나라도 감히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세계 최고를 기록 중이다. 


현대인은 물질적인 풍요를 위하여 기본적인 생리현상인 잠을 줄이고 있다. 수면 부족은 건강을 해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하루 6시간 이하 자는 사람은 7시간 이상 자는 사람에 비해 치매에 걸릴 확률도 30% 높다. 먹고살기 위하여 잠까지 줄이고 살다가 나이 들어 암 같은 치명적인 병에 더 많이 걸리고 치매에도 더 많이 걸린다.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삶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수단이 목적이 된 생물학적 적자생존과 경쟁이 끝을 모르고 치열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자연계의 ‘이치’대로 생존을 위한 경쟁으로 지구상의 어떤 사람들보다 더욱 잠을 덜 자면서 살아가고 있다. 수면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적고 공부하고 일하는 시간은 세계 최고이다. ‘이러다가 지치면 시스템을 바꾸겠지’라는 일말의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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