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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곰이 대나무를 먹는 모습을 보는 과학적 시선


2021년 대나무만 먹는 줄 알았던 판다가 고기를 뜯어먹는 장면이 중국에서 포착되어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그 전에도 중국의 여러 지역에서 야생 판다가 가끔 ‘특별’ 식을 즐긴다는 연구가 있었다. 판다는 대나무를 주식으로 하는 초식동물이지만 소화기관과 소화효소, 치아구조, 유전자 발현, 장내미생물 등은 육식동물과 비슷하다. 판다가 육식동물에서 초식동물로 진화한 증거이다. 하루 15시간씩 먹는 것은 육류보다 훨씬 적은 식물에서 최대한 단백질을 흡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쌍한 ‘곰 생’이다. 그야말로 먹고 자는 삶이다.


대왕판다는 대나무로 99%의 에너지를 섭취하지만 가끔 곤충과 설치류를 먹는다. 판다가 하루에 먹는 대나무의 양은 45kg 가량이며, 하루 24시간 중 15시간을 대나무를 먹으며 보낸다. 판다는 육식동물 조상에게서 유래한 짧은 소화기관을 가지고 있으며 소화 시간 또한 12시간 이내로 빠른 편이다. 천적이 없는 곳에서 1년 내내 구할 수 있는 식량인 대나무를 주식으로 하면서 중국 남부와 동남아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자이언트 판다는 지금은 중국에만 산다. 그러나 과거 자이언트 판다는 유럽에서도 살았다는 증거가 나왔다. 약 600만 년 전 유럽에서 살았던 자이언트 판다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현대 판다의 직접적인 조상은 아니지만 가까운 친척에 해당된다. 이 판다는 약 600만 년 전 숲이 우거진 늪지대에서 살았으며 지금의 판다보다 덩치가 약간 작았다. 또한 현재의 판다가 대나무만 먹는 것과 달리 이 고대 판다는 부드러운 식물을 포함해 다양한 채식을 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과거 기후변화로 지중해 분지가 말라 주변 환경이 변화하면서 판다가 멸종했을 수 있다. 남유럽에서 중신세 말기 기후변화가 건조화로 이어지면서 마지막 유럽 판다의 존재에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https://www.tandfonline.com/doi/full/10.1080/02724634.2021.2054718


판다는 특이한 앞발이 있다. 앞발을 이용해 대나무를 꼭 쥐고 먹는다.  이는 판다의 또 다른 엄지인 여섯 번째 손가락, 일명 ‘가짜 엄지’ 덕분이다. 판다의 가짜 엄지(pseudothumb)는 손목의 종자 골(관절을 지나가는 힘줄이나 인대 속에 있는 뼈)이 마치 엄지처럼 돌출된 것이다. 또한 판다는 대나무를 쉽게 씹을 수 있는 특수한 치아를 갖고 있다. 


그럼 이렇게 대마무만 먹는 식성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2019년 연구를 보면 대왕판다(Giant Panda)는 약 5천 년 전만 해도 다른 초식동물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다양한 식성을 가졌었다.


그러나 2022년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판단의 가짜 엄지는 수백만 년 전부터 진화되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중국 남부 지방에서 발견된 판다 화석을 보면 600만 년 전부터 대나무를 주식으로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왕판다의 화석에서 가짜 엄지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판다의 가짜 엄지는 먹는 기능과 동시에 걷는 기능도 함께 해야 하는데, 이러한 이중 기능이 판다의 엄지가 성장하는 데에 제약이 되었을 것이다. 가짜엄지가 비교적 짧고 휘어진 것은 이러한 진화적 적응이다. 대나무를 섭취하는 데에는 꽉 쥐는 것이 중요하므로 짧은 갈고리 모양으로 진화한 것이다. 육식성 조상으로부터 대나무만 먹는 종으로 진화하면서, 판다는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만 했다. 손목뼈에서 나온 움켜쥘 수 있는 ‘엄지’는 장애물을 넘기 위한 판다의 가장 놀라운 진화일 것이다.


수백만 년 전에 가짜 엄지가 나타났지만 하루아침에 대나무만 먹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육식에서 잡식성으로, 다시 초식성에서 대나무 위주 식습관으로 점차적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대나무는 지방 함량이 4% 미만이지만 단백질 함량은 비교적 높아 판다는 에너지의 절반을 단백질 형태로 섭취한다. 대왕판다는 육식동물의 소화기관을 간직한 채 초식동물로 바뀌었지만 단백질 의존도는 늑대와 비슷하다. 과거에 육식을 하던 유전자나 다양한 초식을 하던 습성이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고기를 보면 먹듯이. 


그런데 대왕판다는 몸매가 통통하다. 몸길이가 1.2~1.9m인데 몸무게가 100㎏가 넘고 수컷은 160㎏까지 나간다. 대나무를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럴까. 그렇지는 않다. 판다는 계절에 따라 먹는 대나무의 부위가 다르다. 8월 말부터 4월까지는 대나무 잎을 먹지만 4월 말 죽순이 나오면 8월까지는 어린 대나무 순을 먹는다. 불곰이 연어를 먹어 동면을 위한 지방을 비축하듯이 대왕판다는 죽순으로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한다. 죽순의 단백질 함량은 32%로 대나무 잎의 19%보다 훨씬 높다. 죽순을 먹을 때는 장내세균 군집에 낙산 생성 균이 급증한다. 이 세균의 대사산물이 지방의 합성과 저장을 촉진한다. 새끼를 낳는 겨울에 대비해 몸집을 불릴 수 있다.


판다는 기후위기 피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판다에게 필수적인 대나무 숲이 지구온난화로 점차 사라지면 생존과 번식이 어렵다. 수백만 년 동안 진화해온 판다는 새로운 진화를 해야 할 운명이다. 단백질 위주의 음식을 먹는 유전자를 가진 판다는 멸종하고 그런 유전자가 적은 판다가 살아남을지 모른다. 아니면 잡식성 유전자가 강한 판다가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그건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지구온난화로 급격한 환경변화가 오고 코로나 같은 새로운 바이러스가 반복된다면 유전자가 맞지 않는 인간은 도태되고 맞는 유전자를 가진 인간이 자연선택 될 것이다. 그것이 누구일지는 누구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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