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은 ‘자연 선택’의 결과가 드러나려면 인간의 생애를 뛰어넘는 ‘매우’ 긴 시간이 걸린다고 주장했다. 물론 새로운 종이 나타나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상당한 변이는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도 가능하다.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사는 얼룩나방은 원래 흰색이 많았으나 검은색이 나방이 더 많아졌다. 자연선택이 이루어지는 것을 실험으로도 관찰되었다. 1950년대에 영국에서 깨끗한 숲과 오염된 대도시 근처 숲에 나방 수백 마리를 풀고 3년에 걸쳐 생존율을 관찰했다. 대도시의 검은 나방은 시꺼멓게 얼룩진 나무 덕분에 새의 아침밥이 될 운명을 피했다. 반면 눈에 잘 띄는 흰색 나방은 참새에게 쉽게 잡혀 먹혔다. 깨끗한 숲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검은 빛을 띠는 나방은 밝은 색 나무 사이에서 새의 먹잇감이 되기 일쑤였다. 생물이 수년 만에 자연선택에 의하여 진화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이런 일은 인간문명의 환경오염과 사고로도 발생한다. 1986년 4월 26일 그 악명 높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났다. 원전 인근 30㎞는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됐다. 원래 이 청개구리는 밝은 초록 빛깔을 띠며 짙은 빛깔은 드문데 지금은 검은 색이 많다. 원전의 폭발로 배출된 방사성 물질은 생물에 해로운 방사선을 내쏘면서 검은 색 청개구리가 자연선택된 것이다. 짙은 색 청개구리일수록 피부에 많이 든 멜라닌 색소가 방사선의 영향을 막아준다. 수십 년 만에 검은 청개구리가 많아진 것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된 고전적 사례이다. 멜라닌의 보호를 받는 검은 청개구리의 생존율과 번식률이 높아졌고 맑은 색은 점차 도태된 것이다. 열 세대 이상이 지나면서 아주 빠르지만 고전적인 자연선택이 일어나 검은 개구리는 체르노빌 출입금지구역의 지배적 형질로 자리 잡았다.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10.1111/eva.13476
원전사고 같은 극단적인 것뿐만 아니라 인간이 흔히 만들어내는 화학물질도 진화의 방향을 바꾸어 놓고 있다. 미국 뉴욕의 뉴어크만(Newark Bay) 북서쪽은 화학 공장이 즐비하고 환경오염이 심각하다. 오염이 심각한 물속에 대서양 열대송사리(Atlantic Killifish)가 우글거린다. 동부 해안지대에서 많이 사는 은빛 송사릿과 물고기이다. 오염이 덜 된 환경에서 사는 동종의 물고기는 뉴어크만 수준의 다이옥신에 노출될 경우 대부분 번식에 실패하거나 알에서 부화하기도 전에 죽어버린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은 물고기는 유전자가 다르다. 환경오염에 대한 면역력은 유전자 변이로 생겼다.
송사리의 독성 저항 능력은 유전자의 다양성 때문이다. 환경이 변화하자 그 환경에 맞는 유전자 변이를 가진 송사리가 살아남은 것이다. 이러한 진화를 ‘도시 진화’라고 한다. 도시 진화란 생명체가 인간에 의한 서식지 변형에도 생존할 수 있는 이유를 밝히려는 신생 학문이다. 인간의 도시문명에 적응하여 ‘도시형 생물’으로 진화한 생명이다. 이는 자연 재해나 오염으로 황폐화된 지구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개량 형’ 인간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인감이 도시에 살면서 수많은 질병에 시달리고 문명의 발달로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도태’되었다. 특히 코로나19만으로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인간도 ‘도시형’ 생명으로 진화하고 있다.
인간 문명으로 인한 자연선택은 특히 우리나라의 출산율에 반영되고 있다. 그것은 환경오염이나 방사능 오염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우리나라에서의 교육은 학문이나 연구가 목적이 아니다.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라는 ‘고전적인 언어’는 거의 사라졌다. 교육과 대학은 신분상승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그래서 사교육과 학원비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도 쓰지만 대학 등록금은 몇 십만 원만 올려도 ‘난리’가 난다. 그러다보니 교육은 사라지고 입시경쟁은 거의 ‘죽음’의 경쟁이 되었고 사교육비를 하늘을 찌른다.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구석기시대에는 거의 5명에 가까운 아이를 낳았다. 다섯 명을 낳아도 서너 명의 아기가 죽으니 결국 한두 명 정도가 살아남았다.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점점 떨어져 ‘1’ 이하가 되었다고 걱정이지만 살아남은 아이의 숫자를 생각하면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종족 유지’의 본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하지만 현대인에게 그런 본능은 없다. 생존과 번식의 복잡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본능이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자녀를 키우는데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데 아이를 많이 낳을 리가 없다. 적게 낳는 것은 자녀에게 최적의 투자를 하려는 ‘진화적 동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인구는 언젠가 구한말의 인구와 비슷해진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회 스스로 선택한 입시전쟁과 신분상승 제도는 자연선택으로 지구상의 인구수에서 한국인의 비율을 줄여나가고 있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변함없이 인간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