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는 깨달음을 얻고 추앙받았다. 윤회하는 무상의 고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하였다. 기독교에서는 죽음은 원죄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당시의 붓다나 유일신교에게나 인간을 포함한 생명의 죽음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과학이 없었다.
기독교의 원죄란 무엇인가?「창세기」3장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보고, 이들의 타락 범죄 이후 인간은 죄에 의한 죽음이 있으므로 구원이 필요하다고 보는 기독교 교리이다.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이 금지한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을 ‘원죄’라 한다. 선악과란 ‘선악을 분별하게 하는 지혜’를 주는 과일이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셨다.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이 죄라니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선과 악을 구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원죄는「창세기」제3장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야기에 따라 인간은 죄와 죽음 가운데 태어나므로 구원이 필요하다고 보는 기독교 교리이다. 그런데『구약』만을 정전으로 하는 유대교에는 원죄 교리가 없다. 이슬람교에도 원죄 사상이 없다. 이슬람교는 아담이 용서받았으며 그의 자손에게 원죄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기독교 중에서도 동방기독교에서는 원죄 개념이 또한 없다. 유일신교 중 로마가톨릭과 그것을 이은 개신교에서만 원죄교리가 남아있다. 그것은 단 한 사람, 아우구스티누스의 유산이다.
과학적으로 죽음과 노화는 지구의 생명체가 다세포생물로 진화되어 유성생식을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 아메바나 히드라 같이 무성생식으로 단순 분열을 하는 생명은 영원히 살 수 있다. 끊임없이 자신을 복제하며 ‘자신’이 이어진다. 클론(clone)은 하나의 세포 또는 개체로부터 무성 생식으로 생긴 유전적으로 동일한 세포나 개체이다. 더 진화된 생명체인 식물은 영원히 살지는 못하지만 고등동물보다 훨씬 더 오래 산다. 수백만 년 이상 사는 나무도 많다. 와인을 만드는 까르베 소비뇽(Cabernet Sauvignon)나 모하비 사막의 작은떡갈나무덤불이 그렇다. 진화의 마지막에 나타난 고등동물은 유성생식을 하며 때가 되면 죽는다. 죽음은 진화가 낳은 결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고등생물은 살아가면서 불완전한 진화의 결과 DNA가 망가지고 유전자 손상이 쌓인다. 암이 발생하고 각종 고장(질병)이 누적된다. 더 고장 나기 전에 세대를 교체하여야 종의 생존이 가능하다. 끊임없이 변이를 일으키며 공격하는 바이러스와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종의 다양성은 중요하다. 다양한 개체가 있어야 아무리 가혹한 환경이라도 살아남는 개체가 발생한다. 종의 다양성을 통해 종을 보존하기 위해 이성애를 통한 번식으로 진화했다. 성욕과 섹스가 등장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붓다가 말한 생로병사의 고통이 나타났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욕과 죽음이라는 원죄가 나타났다. 하지만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죽음은 후손과 종의 보존을 위하여 진화한 결과이다.
인간을 포함한 고등동물은 유전자의 돌연변이와 손상으로 죽는다. 하지만 과학은 인류의 평균 수명을 80세 그리고 90세까지 늘리고 있다. 생물학적 종 보존을 위한 생식을 거부하고 피임을 하며 자신을 결정했던 유전자를 바꾸고 있다. 인간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창조하고 있다. 종의 생존을 위한 진화의 기제를 거부하고 개체의 삶의 질을 중심으로 바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