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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수 Oct 27. 2022

노벨상을 안긴 네안데르탈인은 어떻게 살았을까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멸종한 종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지리적으로 유라시아의 서쪽, 데니소바인은 동쪽에 주로 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의 염색체를 분석 결과, 단지 0.1~0.5%만이 다르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래서 현생인류를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사피엔스 네안데르탈로 부른다. 널리 알려졌듯이 두 종은 성적인 교류를 했고, 우리 몸에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남아있다.


네안데르탈인은 석기와 사냥술, 불의 사용, 언어를 매개로 한 가족의 의사소통, 매장 풍습 등으로 ‘문화’를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부싯돌로 도구를 만들고 사냥기술도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사냥능력으로 인하여 이들은 초기 고 인류가 살지 못했던 현대의 우크라이나나 남러시아의 빙하지대에 거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명품이 엄청난 인기이다. 아이들까지 가세하고 있다. 명품이나 보석은 오래된 유산이다. 네안데르탈인도 목걸이 같은 장신구를 사용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독수리의 발톱으로 만든 목걸이로 스페인 북동부 지중해 연안의 동굴에 발견되었다. 약 3만9000년 전의 것으로 석기로 자른 흔적이 있다. 이미 유럽 남부의 13만~4만2000년 전 유적지 열 곳에서 그 흔적이 발견되었다. 어쩌면 독수리 발톱을 장식품으로 이용한 문화가 네안데르탈인을 통해 우리 인간에게 전해졌을 수도 있다. 아니면 현생인류가 독자적으로 개발했을 수도 있기는 하다. 또한 네안데르탈인이 보석과 깃털로 몸을 치장한 증거도 나왔다. ‘원시인’과 현대인은 살아가는 모습이 큰 차이가 없다.


네안데르탈인은 가죽 손질 도구를 만들 때 동물의 뼈를 사용했으며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게 만들었다. 동물 가죽을 손질하는 데 사용되는 매끄러운 끝이 있는 동물 갈비뼈 조각인 ‘리소아르(lissoirs, 매끄럽게 하는 도구라는 뜻)’라는 도구를 사용했다. 당시 순록이 훨씬 더 흔했지만 소 갈비뼈로 만들었다. 네안데르탈인이 가죽을 손질할 때 어떤 것을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당시에도 ‘명품’을 갖고자하는 열풍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명품은 고대 원시인의 유산이다.


또한 나무에서 추출한 천연섬유를 꼬아 사용한 유물도 발견되었다. 천연섬유로 끈을 만들려면 재료가 될 나무의 성장과 계절적 변화에 관한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탈리아의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코끼리뼈로 만든 도구가 만들어진지 10만년 뒤에나 일반화된 기술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로마 인근 유적지(Castel di Guido)에서 발굴된 동물 뼈로 된 도구를 분석한 결과이다. 이 유적지에 대한 발굴은 1979~1991년에 이뤄졌다. 연대측정 결과 약 40만 년 전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에 이곳에는 작은 개천이 흘러 코끼리(Palaeoloxodon antiquus)들이 물을 마시러 찾아오던 곳으로 추정된다. 이 코끼리들이 주변에서 자연사하면서 당시 인류가 그 뼈를 이용해 도구를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에서 발굴된 도구가 98점인데 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표준화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이런 방식은 훨씬 뒤에나 일반화된 기술이다. 특히 리스와(lissoir)와 비슷한 도구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네안데르탈인이 동물 가죽을 부드럽게 만들 때 사용한 도구로 약 30만 년 전 쯤에야 널리 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 유적이 유럽에 네안데르탈인이 출현한 시점과 비슷한 시기 형성된 것으로 보아 네안데르탈인의 유적으로 추정된다.


네안데르탈인도 가족이나 친족 중심의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현생인류의 초기 모습과 유사하다. 이들이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핵가족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은 가까운 친족끼리 10~20명씩 소규모 집단을 형성해 생활한 것으로 보인다. 동굴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적 다양성이 멸종위기에 처한 종과 비슷할 정도로 낮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버지에서 아들에게 유전되는 Y염색체의 다양성이 모계에서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DNA보다 낮아 주로 여성이 소집단 사이를 오간 것으로 추정됐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2-05283-y


네안데르탈인도 우리와 같이 아이를 키웠으며 성장 속도도 비슷했다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발굴된 7만 년~4만5천 년 전 네안데르탈 어린이의 젖니를 분석하여 나온 연구이다. 치아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자라나면서 성장선(growth lines)이 있다. 이 연구에 의하면 네안데르탈인 아이는 생후 5~6개월이 되면서부터 이유식을 주기 시작했다. 우리 현대인도 어린이에게 더 에너지가 많은 식품이 필요한 생후 6개 월 경부터 이유식을 준다. 다른 영장류에 비해 인간의 두뇌 발달은 높은 에너지가 요구돼 어린이 식단에 고형식이 일찍 도입된다.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초기 유아기 때 비슷한 에너지 수요가 있고, 성장 속도도 서로 비슷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네안데르탈인의 신생아가 우리 인간의 신생아와 체중이 비슷했으며, 임신 기간과 초기 개체 발생이 비슷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네안데르탈인이 대부분의 시간을 집 근처에서 보냈다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는 현대인과 매우 유사하다. 이번 연구 결과는 네안데르탈인들의 작은 인구가 이유식 연령의 차이에서 발생했다는 주장과, 이들이 우리 인간과는 다른 생물문화적인(bio-cultural) 요인으로 멸종됐다는 이론을 반박하는 것이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네안데르탈인은 우리 호모사피엔스보다 먼저 장례식을 한 종이다. 장례라는 의식을 했다는 것은 네안데르탈인에게도 종교적인 무언가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네안데르탈인이 죽은 자를 묻었고 초기형태의 종교를 가졌을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이다. 실제로 이 무렵에 복원이 가능한 거의 완벽한 유골이 갑자기 많아진 것도 그 점을 시사한다. 네안데르탈인 이전에는 ‘종교’ 생활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 인간의 종교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는 아직 모른다. 어쩌면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물려받았을지도 모른다.    

네안데르탈인이 매장을 했다는 증거는 오래전에 나왔다. 그러나 그 의미와 의도를 두고는 논란이 분분하다. 네안데르탈인이 어느 정도까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에 대하여 의견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 이라크 쿠르디스탄(Kurdistan) 샤니다르 동굴(Shanidar Cave) 유적에서 40~50세 가량의 네안데르탈인의 상체 뼈가 거의 온전하게 보존된 형태로 발굴되었다. 이 동굴 유적지는 1950년대에 시작된 발굴에서 남녀 성인과 어린이까지 10명의 네안데르탈인 화석이 나왔다. 여기서 발굴된 네안데르탈인 화석을 근거로 네안데르탈인의 매장 풍습이 장례 문화라고 결론 내렸다. 이 동굴 토양 샘플에선 꽃가루 화석이 발견됐다. 이를 근거로 네안데르탈인이 매장할 때 꽃을 바치는 풍습이 있었으며, 이는 추상적 사고 능력을 갖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장례의식’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장례를 한다는 것은 죽음 사람을 기리고 사후의 삶을 생각했을 거라는 얘기이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이 실제로 ‘장례 문화’를 갖고 있었는지를 놓고는 수십 년간 논쟁이 이어져 왔다. 꽃가루 화석이 살았던 동료들이나 설치류 동물, 또는 곤충이 바깥에서 묻혀온 ‘오염’된 증거일 수 있다는 반론이다. 이후 꽃가루 화석이 발견된 구덩이에서 퇴적물을 파 내려가다 거의 온전한 형태로 보존된 갈비뼈와 부서진 두개골 등 상체 화석을 새로 찾아냈다. 발견된 뼈는 고대 꽃가루 화석과 다른 식물 화석들이 함께 함유된 퇴적물에서 발견돼 ‘꽃 매장’의 가능성을 되살렸다. 매장한 네안데르탈인이 추상적인 사고능력과 추모 감정을 가졌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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