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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최초의 기억은 꿈일까 생시일까

추억은 아름다운 것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피부로 촉감을 느낀다. 하지만 실제로는 뇌에서 보고 듣고 맡고 느낀다. 눈으로 보지만 실제로는 뇌에서 보는 일이 생긴다. 뇌는 기억을 저장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뇌는 컴퓨터가 정보를 저장하는 것처럼 저장하지 않는다. 뇌는 전기와 화학물질로 필요에 따라 정보를 편집하고 재구성하여 저장한다. 이를 기억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조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잘못 조립될 경우 엉뚱한 정보가 나온다. 같은 경험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나이가 꽉 찬 ‘라떼’의 이야기는 허구가 많고 오류가 많다.


생후 6개월 된 아기는 몇 주 동안 지속되는 장기 기억이 형성된다. 미취학 아동기에는 몇 년 전의 사건을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이런 기억들은 거의 사라진다. 우리는 4살 때까지의 기억은 거의 또는 전혀 없다. 7세 이전의 삶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며 이 기억도 성인이 되면 대부분 잊어버리는데 이를 유년기 기억상실증이라고 한다. 무언가 기억이 난다고 하더라도 실제인지. 착각인지 들은 이야기로 연상한 것인지 불명확하다. 인간이 뇌에 무언가를 기억하는 것은 기억을 뇌에 형성하고 유지하며 필요한 경우 기억정보를 검색하여 끄집어내는 것이다. 기억의 형성은 해마에서 이루어지며 7세까지는 발달한다. 7세 이후 성인으로 나아갈수록 기억 형성보다는 기억의 유지능력이 더욱 발달한다. 기억 능력의 발달은 언어를 배우는 것과 관련이 있다. 유년기 기억상실은 언어를 아직 배우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다. 언어를 일찍 터득한 아이는 과거를 더 잘 기억한다. 또한 부모가 아이에게 어렸을 적 얘기를 자주 해주면 기억유지에 도움이 된다. 마오리족은 부모가 이런 역할을 많이 하여 아이들의 최초 기억이 2.5세로 세계 최고이다.


인간에게 가장 오래된 기억인 최초의 기억처럼 불분명한 것은 없다. 인간이 가진 태어난 후 최초의 기억이 무엇인지 자신도 잘 모른다. 은하수처럼 뿌옇게 모호하고 불분명하다. 심리학계에서는 사람이 떠올릴 수 있는 생애 최초의 기억을 평균 3~5살 사이로 본다. 평균 4.2살이라는 연구도 있고, 3.24살이라는 연구도 있다. 2021년에는 평균적으로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은 3.5살이 아닌 2.5살 때라는 연구도 나왔다. 생애 최초의 기억은 최초의 기억이 생긴 그 시점의 기억이 아니다. 무언가 기억이 뇌에 축적되고, 거기에서 편집하여 저장되어 있다가 편집되어 떠오른 기억이다. 실제로는 2.5살 때의 기억이 떠올리는 과정에서 3살 이후의 일로 잘못 생각해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최초의 기억을 계속 생각하면 할수록 더 오래된 기억에 다가간다. 그들의 부모에게 확인한 결과도 최초 기억은 자신들이 생각한 시기보다 더 이른 시기에 일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사람의 생애 초기 기억 연령은 개인마다 큰 차이가 있다. 우리의 지식을 함부로 절대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장 같은 연구이다. 필자는 가끔 추운 겨울에 시골 역에서 누군가에 업혀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아기 때인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실지로 있었던 일인지 아닌지 확실하지는 않다. 


기억은 놀라운 것도 있다. 필자는 첩첩산중 산골 학교에 들어갔다가 5학 년 때 서울로 왔다. 한 학년에 30명 정도였으니 정말 작은 학교였다. 그런데 옆 마을 학교를 들어간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그래서 잠깐 이사 갔다가 돌아왔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6살 때 입학했다가 병으로 두 번이나 그만두고 8살 때 다시 이 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억은 불명확하다.


친구들끼리 옛날 추억을 회고하다보면 사람마다 기억이 다르다. 나는 그 자리에 끼지도 못한다. 기억력이 낮은 편이라 대체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간이 가진 기억은 있는 그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뇌에서 편집된다. 기억은 결코 당시를 그대로 녹화해서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기억을 떠올릴 때 녹화된 그대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뇌가 그것을 재구성하거나 편집하기도 한다. 우리가 또는 우리의 뇌가 기억을 편집하는 것은 새로운 정보를 오래된 경험과 통합시키는 작용이다. 그동안 인생사에서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하면서 뇌 안에서 갖고 있던 많은 지식과 정보가 재편집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잘못된 기억이 생성되기도 한다.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다. 사실여부를 따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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