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없는 생물도 잠을 잔다. 바로 뇌가 없는 원시 동물인 히드라(hydra)가 그렇다. 히드라는 잠을 자면서 체세포가 성장되고 잠을 못 자면 체세포 증식이 억제된다. 뇌가 있는 고등 동물은 잠을 자면서 하루 동안 쌓인 뇌의 노폐물을 제거하고 기억을 정리한다.
잠을 자는 것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육체적 휴식만이 아니라 정신 활동이 일어나는 뇌의 휴식에도 필요하다. 인간은 잠자는 동안 렘(rapid eye movement, REM)수면과 비렘수면(Non-Rapid Eye Movement, N-REM) 상태가 반복된다. 렘수면은 잠든 지 한 시간 반 정도 뒤에 처음 나타난다. 잠든 상태에서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는 안구 운동이 관찰된다. 뇌파 활동은 깨어있을 때와 비슷하다. 호흡이 빨라지고 불규칙해지며, 맥박과 혈압은 거의 깨어있는 수준까지 높아진다. 대부분 꿈은 렘수면 중 꾸게 되지만 일부는 비렘수면 중 일어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수면 시간 중 렘수면에 소비되는 시간이 줄어든다. 특히 렘수면은 자면서 눈이 빠르게 움직이는 수면으로 인지기능과 학습과 큰 관련이 있다.
인간 그리고 포유류와 조류 그리고 파충류에게 나타나는 렘수면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뇌가 깨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사람은 자는 동안 몇 차례의 렘수면을 경험 하는데, 대부분의 꿈은 렘수면 상태에서 이뤄진다. 잠이 들면 비렘수면이 먼저 나타나고 이후 렘수면이 오는데, 약 1시간 반 정도 주기로 몇 차례 반복된다. 인간은 깊은 잠을 자는 비렘수면과 얕은 잠을 자며 기억을 되살리고 꿈을 꾸는 렘수면을 반복한다. 비렘수면 단계에는 체온조절이 이루어지고, 호흡이 느리고 규칙적이며, 팔다리나 안구 운동도 최소화되면서 깊은 잠에 빠진다. 렘수면으로 바뀌면 체온조절이 되지 않고, 급속한 안구 운동과 함께 호흡이 불규칙하게 빨라지고, 팔다리도 자주 움찔거리고, 깨어 있는 것처럼 뇌 활동이 활발해 악몽을 꾸기도 한다.
보통 인간의 렘수면은 전체 잠자는 시간의 20% 정도이며, 악몽은 렘수면의 주기가 잦아질 때 주로 나타난다. 밤사이에 악몽을 꿨다면 우리의 뇌가 잘하고 있었다는 증거일 수 있으니 너무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렘수면은 잠자는 시간의 약 25%를 차지한다. 렘수면은 체온조절에 투입됐던 에너지를 뇌로 돌려, 여러 뇌 기능을 활성화시킨다. 렘수면을 통제하는 부위는 시상하부라는 곳으로 거기에 특별한 신경세포(Melanin-Concentrating Hormone. MCH)가 있다. 실내 온도에 따라 렘수면을 한다는 것은 2019년 처음 확인되었다. 체온조절에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을 때, 뇌는 렘수면을 하여 뇌 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결국 따뜻하게 잘 자야 뇌의 기능이 좋아질 수 있다.
과거에는 렘수면이 포유류와 조류에만 있고, 파충류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렘수면은 깃털 달린 새가 처음 나타났던 약 1억 년 전과 포유류가 처음 나타났던 약 6500만 년 전경부터 진화해 나타났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파충류도 렘수면이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렘수면은 포유류, 조류, 파충류의 공동 조상인 최초의 양막류 만큼이나 오래된 것일 수 있다. 조류, 포유류, 파충류에서 임신 중 양막이 관찰되며, 따라서 이러한 생물들을 양막류(amniota)라고 부른다. 파충류인 오스트레일리아 도마뱀도 렘수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다 같은 수면패턴을 가진 것은 아니다.
렘수면 시간은 동물의 체온과 관련이 있다. 체온이 높으면 렘수면 시간이 짧다. 체온이 낮은 항온동물 그룹은 렘수면 시간이 긴 반면, 체온이 높은 동물 집단은 렘수면 시간이 짧다. 항온동물 중 새는 41°C로 체온이 가장 높고 렘수면은 하루 0.7시간으로 가장 적다. 인간과 기타 태반이 있는 포유류는 37°C로 약 2시간 렘수면을 한다. 한편 유대류의 신체 온도는 35°C이고, 4.4시간 렘수면을 취한다. 유대류는 원시적인 태생 포유류로 발육이 불완전한 상태로 태어난 새끼를 캥거루처럼 육아낭(育兒囊)에 넣어서 기른다. 단공류는 31°C로 렘수면 시간은 7.5시간에 이른다. 단공류는 원시적 난생 동물로, 항문과 생식기가 한데 합쳐 있으며 오리너구리처럼 배에는 젖샘이 있어 젖으로 새끼를 기른다. 비렘수면에서는 뇌 온도가 내려갔다가, 일반적으로 비렘수면에 이어지는 렘수면에서 올라간다. 이러한 패턴은 항온 포유류가 비렘수면 상태에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게 해준다. 뇌 온도가 너무 내려가서 위협에 반응하지 못하지 않도록 해준다. 렘수면이 자동온도조절장치로 조절되는 뇌의 히터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인간의 렘수면의 양은 다른 항온동물에 비해 많지도 적지도 않다. 이는 학습이나 정서 조절에서 렘수면의 역할을 시사하는 일부 대중적인 견해와 어긋난다. 그렇지만 여전히 렘수면은 학습과 관련이 있음은 분명하다.
https://www.thelancet.com/journals/laneur/article/PIIS1474-4422(22)00210-1/fulltext
파충류, 포유류, 조류의 수면은 상당히 다르다. 인간의 수면 사이클은 1시간에서 1시간 반인데, 고양이의 수면 사이클은 30분, 도마뱀의 수면 사이클은 80초에 불과하다. 렘수면과 관련된 유전자도 밝혀졌다. 쥐의 ‘Chrm1’과 ‘Chrm3’ 유전자가 렘수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들 유전자 중 한 개를 제거하자 쥐의 수면 시간이 82~118분 짧아지는 것을 확인했고, 두 개를 모두 제거하자 렘수면 시간이 거의 없어졌다(정상적인 쥐의 평균 렘수면 시간은 70여 분). 렘수면도 결국 유전자에 각인된 것이다.
2019년에는 어류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렘(REM)수면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물고기는 눈꺼풀이 없어 눈을 뜨고 자며 렘수면 시 빠른 안구 운동은 없다. 이 연구결과로 보아 렘수면을 포함한 단계적인 수면 현상이 진화적으로 4억 5,000만 년 전에 나타났다.
진화의 과정에서 초기 인류의 수면(睡眠) 양식이 크게 변했다. 인간은 아프리카가 숲에서 초원으로 바뀌자 나무에서 내려와 두 다리로 서서 직립보행을 하였다. 맹수로부터 살아남기 위하여 인간은 불을 피워놓고 무리 지어 잠을 잤다. 이때부터 인간은 다른 영장류에 비하여 뇌 발달에 중요한 렘수면을 깊게 취할 수 있게 됐다. 대부분의 영장류는 모두 인간보다 잠이 깊지 않아 인간의 수면과 질이 다르다.
그렇다고 인간의 수면 시간이 원숭이나 유인원 같은 다른 영장류에 비해 긴 것은 아니다. 다른 영장류들은 14시간~17시간을 자지만 인간은 그 반밖에 안 되는 7~8시간 정도를 잔다. 하지만 인간의 렘수면은 전체 수면 시간의 약 25%를 차지한다. 반면 다른 영장류의 램 수면 시간은 수면 시간의 5% 정도밖에 안 된다. 인간의 렘수면에 잠의 비밀이 있는 것이다.
사실 렘수면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20세기 초까지도 자는 동안 뇌도 활동을 멈추고 잠을 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50년대 렘수면이 발견되면서 자는 동안에도 뇌는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몸은 잠들었지만 뇌가 활동하면서 지나간 하루의 경험을 기억할 것인지 아닌지를 정리하는 ‘시냅스 재정규화’라는 것을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뇌는 필요한 정보는 기억하고 불필요한 경험을 지워 뇌의 과부하를 막아준다. 이러한 일은 특정 호르몬(Melanin-Concentrating Hormone, MCH)이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자고 일어나면 꿈을 꿨다는 것은 기억나는 데 그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잠을 자면 뇌가 뉴런과 뉴런 사이의 시냅스 연결을 방해해 낮 동안 있었던 일이나 간밤에 꾼 꿈을 기억하지 못 하게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인데, 이는 ‘시냅스 재정규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꿈을 꾸는 렘수면 과정에서 특정한 신경세포(멜라닌 응집 호르몬의 뉴런)가 활성화되면, 깨어 있을 때 경험했던 많은 일뿐만 아니라 이것들이 나타난 꿈마저도 선택적으로 지워진다. 결과적으로 꿈이 빨리 잊히게 되는 것이다. 흔히 꿈이 이상한 내용이 많고 혼란스럽기도 한 것은 아마도 불필요한 정보들을 삭제하다가 기억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뇌의 해마 부위에 있는 뉴런은 수면 중에 재활성화하면서 낮 동안의 기억을 강고하게 만든다. 잠을 자면서 렘수면을 통하여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새로운 정보를 연결시키고 확장시킨다. 특히 단순 암기보다 종합적 사고를 요하는 문제해결에서 렘수면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