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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어 선생님은 특별한 존재

2020년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My Octopus Teacher)’은 남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에서 사는 암컷 문어 이야기이다. 2021년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영화를 보면 문어가 인간과 친구같이 지내는 모습이 나온다. 장난도 친다. 문어는 지루해지면 주위의 부유물이나 작은 물고기를 가지고 ‘장난’도 친다. 잠을 자는 패턴도 인간의 렘수면과 비렘수면과 비슷한 특성을 보인다. 심지어 렘수면과 비슷한 상태에서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 피부의 색과 패턴을 끊임없이 바꾼다.


문어는 외계 생물체 같은 신체 구조이다. 심장이 3개로 몸 전체로 피를 보내는 심장 1개, 아가미로 피를 보내는 심장 2개가 있다. 피는 척추동물과 달리 파랑이다. 척추동물의 혈액 속 헤모글로빈처럼 혈액 속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금속단백질 헤모시아닌이 파란색 구리를 가지고 있어서이다. 문어의 눈은 시력이 좋지만, 색맹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온몸의 피부를 통해 빛과 색을 인지할 수 있다. 피부 전체에 광수용체가 분포되어 있어 자체적으로 빛과 색을 인지하고 반응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빨판마다 화학수용체가 있어 8개의 팔로 사물을 만지면서 맛도 함께 느낄 수 있다.


문어를 비롯하여 오징어, 주꾸미, 갑오징어 등은 ‘두족류’라고 한다. ‘두’는 머리를 ‘족’은 다리를 의미하여 머리와 다리가 붙어 있다는 의미이다. 이들의 다리에도 신경세포가 있으니 ‘족’이라고만 하기는 무리가 있다. 문어는 ‘큰’ 뇌는 없지만 신경세포가 발달하여 지능이 좋다. 이것을 설명하는 과학 용어가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이다. 수렴진화란 서로 관련이 없는 생물이 비슷해지는 것을 말한다. 박쥐는 포유류인데도 다른 포유류와는 달리 날개가 있어 날아다닌다. 박쥐와 새는 관련이 없는 종으로 모두 날개가 없는 조상으로부터 진화하였다. 그런데도 박쥐와 새는 뼈의 구조와 날개의 모양에서 유사하다. 문어의 신경계도 뇌와 유사하게 지능이 좋아지는 방향으로 수렴진화를 했다.


캘리포니아 두점박이 문어(Octopus bimaculoides)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유전자 수는 27억 쌍 염기서열로 30억 쌍의 인간과 비슷하고 단백질 코딩 유전자는 3만 3천 개로 2만 5천 개인 인간보다 더 많았다.문어는 무척추동물 중에서는 뇌가 신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뉴런의 수는 5억 개로 2억 개인 쥐보다 훨씬 많고 토끼나 올빼미와 비슷하다. 뉴런 대부분이 뇌에 모여 있는 척추동물과 달리, 문어는 뉴런의 3분의 2 이상이 8개의 팔에 분포한다. 문어의 뉴런은 척추동물에 비해 미엘린 수초가 부족하여 신호전달 속도와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배적인 중앙 신경망을 구축하는 대신 지역 신경망에 더 의존하는 전략을 택했다. 즉 문어의 8개 팔에 미니 뇌가 하나씩 있어 각각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문어는 마치 머리에 하나, 팔에 하나씩 전부 9개의 뇌가 있는 것과 같다.


전이인자(transposable element)는 염색체 내에서 이동할 수 있는 DNA 서열로 점핑 유전자(jumping genes)라고도 부른다. 전이인자는 변이를 일으켜 유전병의 원인이지만, 일부는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도록 유전자를 변화시키면서 진화와 적응에 기여한다. 인간의 게놈에는 점핑 유전자(Transposon)가 있다. 어디든지 이동하고 복사될 수 있는 유전자로 인간 게놈의 45%를 구성하지만, 그 대부분은 휴면상태이다. 그중 드물게 활성상태를 유지하는 점핑 유전자를 라인(Long Interspersed Nuclear Elements, LINE) 유전자라 하는데, 인간을 포함한 유인원의 진화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인 유전자는 특히 해마에서 강한 활동이 포착되어 학습, 기억 활동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문어의 뇌에도 라인 유전자가 있다. 라인 유전자가 인지, 기억, 학습 등의 활동과 연관 있을 뿐 아니라 문어의 높은 지능에도 관여하고 있을 가능성을 나타낸다. 또한 문어가 고등 포유류처럼 고통과 즐거움을 느끼고, 상황을 기억하고 예측하는 등 높은 의식을 가진 생물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두족류는 뇌의 크기는 작지만, 무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복잡한 신경계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배우자’를 보호하고, 관찰하여 배우는 등 놀라운 지능을 가지고 있다.


수억 년 전에 나타난 문어가 오랜 세월이 흘러가면 인간과 같이 생각할 수 있는 생물로 진화할 수 있을까? 인간의 조상도 수억 년 전에는 문어의 조상과 같았음을 생각해보면 진화는 신비롭기도 하지만 인간에게는 당황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재밌는 것은 창조과학계의 주장이다. 사실 과학자들은 창조과학에 ‘전혀’ 관심이 없다. ‘과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2020년 한동 대학 생명과학과 현창기 교수의 블로그에서 이런 글을 발견했다. 창조과학계의 주장을 게재하는 한 저널에 2019년 게재한 논문을 인용하였다. ‘인간은 정말 특별하다!’라는 제하의 글에서 그 특별한 증거로 이 라인유전자(long interspersed nuclear elements, LINEs)를 지목한 것이다. 물론 인간은 ‘특별한’ 존재이다. 생물학적으로도 특별하고 지적으로도 가장 뛰어난 존재이다. 이 교수는 문어에서도 나타나는 수렴진화를 어떻게 또 설명할까 궁금하다. ‘문어는 특별한 존재이다!’라고 할까? 라인유전자는 다른 동물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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