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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을 바라보는 시선(2): 계급사회의 지속


18세기말 프랑스혁명이 났다. 수천~수만 년을 이어온 신분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물론 불평등은 없어지지 않았고 없앨 수도 없다. 프랑스혁명 후 200년 이상이 지난 21세기에도 인간 사회는 신분은 공식적으로는 없어졌지만 분명하게 존재한다.


권력과 폭력은 함께 따라다닌다. ‘미성숙한’ 사회일수록 더욱 그렇다. 2014~2015년 우리 사회는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 같은 각종 ‘갑’의 횡포로 시끄러웠었다. 갑의 횡포뿐만 아니라 을에 의한 을의 ‘화풀이’ 성격의 횡포도 자주 목격된다. 이런 횡포는 진화를 거쳐 탄생한 동물의 세계에서도 모두 같은 양상이다. 데이비드 바래시(David P. Barash)와 주디스 립턴(Judith E. Lipton) 부부가 함께 쓴『화풀이 본능』(2012년 번역출간)은 동물이 위계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하는 ‘화풀이’ 행동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공동체 내의 다툼에서 패배한 동물(‘을’)은 자신의 서열이 더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자신보다 약한 개체(‘병’)에게 ‘화풀이’ 폭력을 휘둘러서 위계질서를 유지한다. 화풀이는 진화과정에서 유전자로 각인된 본능으로 인간뿐만 아니라 유인원과 조류, 어류, 곤충에서도 발견된다.


우리 인간은 어떤 면에서 생각해보면 생존투쟁, 권력투쟁과 서열경쟁의 동물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투쟁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물질에 대한 탐욕과 더불어 조직에서의 승진욕구, 정치에서의 권력욕구 등은 우리 인간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것의 진화의 부산물이 아니라 주산물일수도 있다.


사실 계급의 단초는 농업이 아닌 유전자에서 비롯되었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모든 영장류 사이에 음식과 성이라는 두 가지 가장 기본적인 욕망에서 평등이란 찾아볼 수 없다. 지구상의 유인원인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 세계에서 성적(性的) 자원은 불균등하게 분배되었다. 이런 유전자가 초래한 평등에 대한 경시와 탐욕추구는 계급발생의 생물학적 근거이다. ‘서열’ 경쟁은 인간만의 고유한 현상은 아니다. 침팬지 같은 유인원의 세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피터 싱어(Peter Albert David Singer)의『다윈의 대답 I』(2007년 번역출간)은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사회현상을 분석한 책이다. 피터 싱어는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이 있으며 우리 육체와 유전자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동도 유전적인 기초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계급제도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위계를 형성하려는 경향을 인간 본성에 내재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사회적 지위는 배우자, 자원 등을 얻게 해주었기 때문에 인간은 사회적 지위를 중시하게끔 진화했다. 인간의 생존욕구는 지능의 발달과 함께 신분제도로 나타났다고나 할까. 이 같은 본성을 간과했기 때문에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몰락한 것이다. 한편 사람들은 진화 심리학을 유전자 결정론으로 보고 생존경쟁, 적자생존 등이 자연의 법칙이므로 인간이 겪고 있는 불평등이 유전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진화 심리학은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의 진화를 연구하고 활용해 인간이 처한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학문이다.


200년 이상 전 프랑스 혁명은 인간평등을 주장했다. 사실 이것은 생존경쟁과 적자생존, 자연의 ‘보편적’ 불평등에 대한 최초의 반론이었다. 바로 인간이 ‘인간은 자연과 다른 존재’임을 선언한 것이었다. 우리 인간은 그런 자연적인 생존방식을 따르지 않겠다! 그러나 다시 200년 이상이 지나고 세상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다. 기성세대는 물론 아이들로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명품으로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려고 한다. 그런 행동이 인간이 유인원의 일원임으로 스스로 선언하는 것임을 알지 못한다(다음 편에 계속). 나는 동물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명품을 바라보는 시선(3): 침팬지와 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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