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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을 바라보는 시선(3): 침팬지와 진화론


프란스 드 발(Frans DeE Waal)이 쓴『침팬지 폴리틱스』(2004년 번역출간)는 침팬지 세계의 ‘정치’를 말하고 있다. 인간 세계와 거의 똑같이 펼쳐지는 분쟁과 화해, 경쟁과 협력, 음모, 합종연횡, 파벌 및 권력 교체 현상이 침팬지 사이에도 있다. 침팬지도 권력을 차지하려면 음모를 꾸미고, 합종연횡하고 격렬한 투쟁을 한다. 무리를 장악한 우두머리 수컷은 먹잇감에서부터 짝짓기까지 독점한다. 물론 우리 인간사회는 침팬지와는 다르게 신석기혁명 이후 국가가 등장하고 법률시스템의 도입으로 권력행사에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정하고는 있다. 그럼에도 인간사회에서 ‘서열’이 높은 남자가 ‘좋은’ 여자를 더 잘 차지하고 더 많은 소득과 부를 점유하는 것은 침팬지 세계와 큰 차이가 없다. 생물학적 그리고 문화적 진화의 과정에서 나온 인간사회의 권력시스템은 유인원과 공유되는 현상이다.


그렇다보니 인간사회도 보이지 않게 ‘침팬지’ 문화가 숨어있다. 예일대학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30대 웬즈데이 마틴(Wendy ‘Wednesday’ Martin)은 아들을 잘 키워 보겠다고 뉴욕 맨해튼으로 이사했다. 어느 날 파크 애비뉴로 향하는 이스트 79번가를 걷는데 한 중년 여성이 마치 눈앞에 아무도 없다는 듯 걸어왔고, 길옆으로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뉴욕의 최상류층이 사는 거리에서 열대우림 사바나의 침팬지들의 서열 짓기가 현대에 재생된 것이다. 명문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은 유아원에 아이를 보내기로 한다. 대기 리스트에 올려놓고도 몇 년을 기다리고 수천만 원짜리 명품 백의 연줄을 이용한다. 웬즈데이 마틴이 쓴『파크 애비뉴의 영장류』(2016년 번역 출판)라는 책의 내용이다. 파크 애비뉴에 사는 영장류의 후손들은 잘 관리한 몸매와 명품 가방이나 패션으로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공유한다.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제인 구달의 침팬지 ‘마이크’가 이곳에 사는 영장류의 후손들과 잘 비교된다. 마이크는 힘이 약하고 서열이 낮아 늘 괴롭힘을 당해왔다. 어느 날 우연히 등유 깡통 두 개를 발견하고 그것을 두드리면서 서열은 바뀌었다. 그것을 두드리면서 굉음이 났고 그것으로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파크 애비뉴의 거주자들은 명품 백으로 서열을 결정하고 있었다. 침팬지 문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파크 애비뉴는 우리나라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서열 짓기를 동물들의 특성이다. 물론 인간도 동물이다.


명품이나 보석은 오래된 유산이다. 수십만 년 전~수만 년 전 살았던 멸종한 네안데르탈인도 목걸이 같은 장신구를 사용했다. 독수리의 발톱으로 만든 목걸이로 스페인 북동부 지중해 연안의 동굴에 발견되었다. 약 3만9000년 전의 것으로 석기로 자른 흔적이 있다. 이미 유럽 남부의 13만~4만2000년 전 유적지 열 곳에서 그 흔적이 발견되었다. 또한 네안데르탈인이 보석과 깃털로 몸을 치장했다. 네안데르탈인은 가죽을 손질하는 도구를 만들 때 동물의 뼈를 사용했으며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게 만들었다. 동물 가죽을 손질하는 데 사용되는 매끄러운 끝이 있는 동물 갈비뼈 조각인 ‘리소아르(lissoirs, 매끄럽게 하는 도구라는 뜻)’라는 도구를 사용했다. 당시 순록이 훨씬 더 흔했지만 소 갈비뼈로 만들었다.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기 전 수십만 년 동안 빙하기였다. 추운 구석기시대에 가장 좋은 방한 옷은 동물의 가죽이었다. 2022년 30만 년 된 독일에 있는 동굴 곰의 화석에서 가죽옷을 만든 증거를 발견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동굴 곰은 빙하기인 2만 4000년 전에 멸종했다. 일부 과학자들은 동굴 곰이 멸종한 이유 중 하나로 인류에 과도한 사냥을 지목한다. 고기가 아니라 따뜻한 털과 가죽이 동굴 곰의 멸종에 영향을 준 원인일지도 모른다. 수십만 년 전 살다가 멸종한 네안데르탈인 시대에서 ‘명품’을 갖고자하는 열풍이 있었다. 명품은 고대 멸종 네안데르탈인 시대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콜린 캐머러(Colin Camerer) 교수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남성의 혈중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 높으면 사회적인 지위를 나타내는 명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테스토스테론이 높은 동물 수컷들은 지위 향상을 위해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다. 인간이 돈과 권력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향한 욕구는 생물학적 진화와 유전자에서 출발한다. 인간이 성욕이 자신의 몸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모르고 청소년기에 혼란을 겪듯이 사회적 욕구도 인간을 휘두른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의 기반이 무엇인지 의식하지 못한다. 그저 욕구에만 충실한 것이 생물학적 인간의 모습이다. 수천 년 전 성인들은 자연과학적 지식 없이도 이를 극복하려고 애썼다. 오늘날에는 인간에 대한 과학적 이해로 생물학적 삶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인간은 유인원이다. 유인원은 거의 대부분 자신을 신분을 과시하려는 특성이 있다. 물론 대부분의 동물이 그렇다. 인간은 특이하게도 이것을 명품으로 과시한다. 남성 243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한 그룹에게는 테스토스테론을 피부에 묻혀 흡수하도록 한 후 실험을 진행했다. 테스토스테론을 복용한 남성일수록 고가 브랜드와 명품에 대한 강한 선호도를 보였다. 테스토스테론의 주요 기능 중 하나가 높은 지위를 추구하고 유지하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많은 행동은 영장류들에게서 나타나는 행동이 목적에 맞게 바뀐 것이다.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동물 수컷은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만 인간은 무엇을 입고 있는지, 무엇으로 장식했는지, 어디서 사는지를 통해 그런 행동을 한다. 파크 애비뉴와 강남은 테스토스테론이 조종하여 만든 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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