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진화를 하면서 두 가지의 특징이 나타났다. 종이 갈라지면서 생물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구조와 기능이 복잡한 생물이 나타난다. 이것은 지능의 출현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 진화를 거치면서 다양한 생물이 나타나는 이유는 다양한 환경이 진화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최초의 생명은 ‘특수한’ 환경에서 살았다. 여기서 ‘특수한’이라고 한 것은 환경은 늘 바뀐다는 의미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도 과거와는 다른 ‘특수한’ 환경이라는 의미이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환경은 변했고 환경변화에 따라 새로운 생물이 출현했다. 생명체의 종류는 점차 다양해져 오늘날 수천만 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
생명다양성이라는 개념은 생명계 안에서 인간의 위치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유일신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신이 생명을 창조하였고 생물 중에 맨 꼭대기에 인간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은 이러한 생각이 오류임을 분명하게 했다. 나무에서 많은 나뭇가지가 뻗어 나가고 잎사귀가 생기는 것처럼 생물이 나타났다는 생명의 나무(tree of life)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즉 모든 생물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 나무의 줄기가 갈라지며 뻗어나가듯이 태동했다는 주장이다. 인간은 수많은 가지 중 하나며, 다른 생물도 각자 가지 끝에 있다. 따라서 각각의 생물은 같은 위치에 있다. 모든 생명체가 평등하다. 단지 어떤 생명(인간)은 높은 지능을 가지는 방향으로 어떤 생물(사자)은 물리적인 힘이 강한 동물로 진화했다.
2023년 1월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 잡는다.’라는 격언이 틀렸다는 연구가 나왔다. 과학자들의 연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큰 그림’을 먼저 보아야 한다. 그냥 한 연구만을 보고 이해하면 왜곡이 생긴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주변 환경을 파악하여 기억한다. 특히 동물의 경우 천적이 있는 곳이나 먹이가 있는 곳을 잘 기억한다면 살아남을 확률이 클 것이다. 과학자들이 꿩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머리가 좋은 꿩은 여우를 피해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더 좋은 기억력을 가진 동물들이 자연 선택으로 살아남는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머리 좋은 새가 벌레 잡는다.’라는 주장이다.
https://www.natureasia.com/en/research/highlight/14363
물론 틀 말은 아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머리 좋은 개체가 살아남았다면 지구상에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살아남았을 리가 없다. 생명 종마다 환경에의 적응방식은 다르다. 특히 인간이나 유인원은 지능이 좋은 쪽으로 진화했지만 사자 같은 맹수는 힘이 세고 빠른 개체가 살아남았을 것이다. 이것을 생명다양성이라고 부른다. 인간이 지능이 높은 쪽으로 진화했지만 지능의 분포는 너무도 다양하다.
세균과 아메바부터 현생인류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230만개 생물종의 진화를 나타낸 생명의 나무를 정리한 계통수가 2015년 나왔다. 계통수는 생물들이 공통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와 진화한 과정을 나뭇가지가 갈라지는 모양처럼 나타낸 그림이다. 이 자료는 인터넷홈페이지(opentreeoflife.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생물이 살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환경에서도 살고 있는 생물을 보면 생명의 다양성을 실감할 수 있다. 가혹한 환경에서 사는 생물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에 50~75도의 뜨거운 온도에서 사는 미생물이 보고되면서 본격화되었다. 2012년에는 2400km의 깊은 바다 열수 구 주변에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섭씨 400도가 넘는 심해 열수 구 주변에서 사는 신종 새우도 발견되었다. 열수 구는 깊은 바다의 땅 밑에서 용암의 열기로 뜨거운 물이 솟아나오는 곳이다. 2016년에는 인도양 깊은 바다에서 괴이하게 생긴 생물이 발견되었다. 가슴에 잔뜩 털이 난 게인데 호프 게(Hoff crab)으로 명명되었다. 어디가 머리이고 어디가 몸통인지 구분하기조차 쉽지 않다. 생물들은 수십억 년의 진화를 거치면서 다양한 환경변화에 다양하게 적응하여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으니 그것이 생명다양성이다.
생명다양성을 가져온 곳은 환경뿐만 아니다. 수컷과 암컷에 의한 양성생식이 생명의 다양성을 폭발시킨 요인이다. 세포 안에 있는 핵에 막이 없는 원핵생물은 자기 자신과 똑같이 복제를 한다. 하지만 막이 있는 진핵생물은 다른 진핵생물로부터 유전물질을 받아서 합쳐야 번식할 수 있다. 이것이 ‘섹스’를 통한 번식으로 진화되었다. 혼자서 분열하여 번식을 하면 똑같은 것이 계속 나온다. 하지만 둘이 합쳐져서 번식을 하면 어미와 다른 다양한 새끼가 나온다. 다양성이 커지는 것이다. ‘섹스’에 의한 번식이 다양성을 증가시키면서 진화의 속도는 빨라졌다. 진화는 어미와 새끼가 다른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물이 이렇게 많아진 것이다. 이렇게 생물이 다양해지다보니 다양한 특성을 가진 생물이 지구상에 살게 되었다. 머리가 가장 좋은 인간도 살고 힘이 가장 좋은 사자도 살고 하나의 세포로만 사는 생물도 살게 된 것이다. 지적능력이 뛰어난 인간이 출현한 것은 바로 다양성의 증가로 인한 것이다.
생명체의 종류가 다양하고 같은 종에서도 개체마다 차이가 나는 것은 생존과 진화에 유리하다. 같은 종 내에서도 유전자가 다양해야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그렇게 유전자가 다양한 종이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았을 것이다. 최근에 나타난 조류 독감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철새들은 조류 독감에 감염되지만 일부는 살아남아 멸종되지 않는다. 철새들은 저마다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류독감에 약한 유전자를 가진 철새들만 죽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교배하여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닭, 오리 등 가축은 유전적 다양성이 적다. 따라서 한 마리만 감염되어도 잘못하면 다 죽을 수 있다. 1800년대 아일랜드에서 대기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당시 아일랜드는 수확량이 높은 한 종의 감자만을 재배했다. 그러나 감자잎마름병이 퍼졌고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던 모든 감자가 죽었다. 결국 감자를 주식으로 하던 아일랜드는 기근으로 25%의 사람이 아사했다. 다양성이 떨어지는 종은 결국 멸종하였을 것이다. 생명다양성의 특수한 사례는 환경오염 속에서도 나타난다. 미국 뉴욕의 뉴어크만(Newark Bay) 북서쪽은 화학 공장이 즐비하고 환경오염이 심각하다. 이렇게 오염되고 탁한 물속에도 대서양 열대송사리가 우글거린다. 오염이 덜 된 환경에서 사는 동종의 물고기는 뉴어크만 수준의 다이옥신에 노출될 경우 대부분 번식에 실패하거나 알에서 부화하기도 전에 죽어버린다. 뉴어크만에서 살아남은 열대송사리들은 특정한 단백질과 관련된 유전자로 인해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환경오염에 대한 면역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독자적으로 유전 변이를 일으켜서 다른 종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이러한 진화를 ‘도시 진화’라고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인간이지만 모두 생김새와 성격도 다르고 유전자도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인간이라는 종 전체의 생존능력을 높인다. 2019년 말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은 코로나19에 강하다. 우리나라 사람 10명 중 6명은 코로나19를 이겨낼 수 있는 유전자를 이미 가지고 있다고 추정된다. 이렇게 사람마다 유전자의 차이가 나니 어떤 바이러스가 나타나도 살아남는 인간은 있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른 지능이라는 특성에도 적용된다. 유전자가 모두 다르다보니 사람마다 지능도 다르고 잘하는 과목도 다르고 잘 하는 일도 다르다. 그래서 인간사회는 직업도 엄청나게 다양하고, 사고방식과 행동도 천차만별인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것은 교육도 다양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어떤 사람은 공부보다는 비즈니스를 하면 성공할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을 공부로 몰아넣으면 그는 좌절할 것이다. 모든 청소년을 이런 식으로 몰아놓으면 불행한 사회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극단적인 대학입시 경쟁과 취업구조로 몰아넣는 사회의 불행지수가 높고 자살률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