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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의 전쟁과 평화(1)


천동설은 천 년 이상 동안 『성경』을 근거로 해석한 가르침이었다. 오늘날 천동설을 주장하는 기독교는 없을 것이다(그렇기를 바란다.). 1992년 로마 교황청은 지동설이 정설이 된지 300년 이상이 지나서야 갈릴레이를 사면했다. 그런데 갈릴레이를 사면한 것은 무슨 뜻일까.『성경』이 틀렸다고 인정한 것일까? 아니면『성경』을 잘못 해석했다고 인정한 것일까? 아마 전자는 아닐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보수 개신교나 근본주의 성향의 기독교인은 진화론을 거부한다. 1859년 『종의 기원』이 출간되었으니 300년이 지난 2159년이면 진화론을 수용할까. 『성경』을 잘못 해석했다고 인정할까?

각각의 종교는 저마다의 우주관 또는 세계관이 있다. 종교를 믿는 사람은 우주라는 ‘연극’의 각본이 곧 자신들의 경전이라고 믿는다. 과학이 아닌 경전에 근거하여 세계를 해석하다보니 늘 오류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 저편의 신에서 존재의 근거를 찾는 종교의 상상력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매력적이다. 인간이 존재의 근거를 찾아온 가장 오래되고 가장 중요한 원천은 종교였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그러나 분명히 종교는 과학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은하는 천억 개 내외의 별이 있다. 이러한 은하가 1조 개 정도가 있다. 그것도 우리가 아는 것만 그렇다. 『성경』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성직자나 신앙인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우주는 당황스러울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눈에 보이는 하늘과 별들을 천상계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거기에 신이 있고 천사가 산다고 상상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겨우 태양계나 만든 존재가 아니라 무한한 우주를 창조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경전』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불교에게도 우주는 놀랍다. 우주와 생명을 이해하는 것은 과학의 영역이다.


과학은 이제 자연에 대한 지식을 넘어 종교와 철학이 하던 존재를 성찰하는 강력한 원천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다보니 과학과 종교는 각축을 벌이고 있고, 신앙과 과학 간에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특히 특정 종교를 절대적 진리로 믿는 ‘종교적 절대주의’와 종교를 망상이라 믿는 ‘과학적 합리주의’가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물론 극단적 대립을 지양하고 ‘회의주의자’로서 중도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입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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