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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수 Apr 06. 2023

7억 년 전의 슈뢰딩거 고양이의 지옥


인간에게 우주와 생명은 ‘슈뢰딩거 고양이’이다. 인간이 그 상자를 열어보기 전에는 그에 관한 ‘지식’이 없었다. 인간은 슈뢰딩거 고양이 상자를 여는 ‘학자’이다.


유일신 종교는 사후의 지옥을 말하지만 사실 지구의 과거야말로 지옥이었다.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고, 대규모 화산폭발이 발생하고 지구 전체가 얼음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구는 얼음으로 뒤덮인 시기가 여러 번 있었다. 8억 5,000만 년 전에 두 번째 빙하기가 나타났다. 다행히 당시에는 인간은 흔적도 없었다.


약 7억 년 전에는 얼음이 적도를 포함한 지구 전체를 뒤덮은 최악의 빙하기였다. 이 시기의 지구를 ‘눈덩이지구’(Snowball Earth)라 부른다. 우주에서 바라봤다면 눈 덩어리 공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눈덩이지구는 지구상에서 가장 심각했던 빙하기 가운데 하나로 ‘크라니오제니아기(Cryogenian period, 약 7억2천만~6억3천500만 년 전)’라 부른다.


약 10억 년에서 7억 년 사이 지구는 로디니아(Rodinia)라고 불리는 대륙 하나만 있었다. 지구의 지각은 여러 개의 거대한 판으로 끊임없이 움직여 왔다. 지난 10억 년간 지구의 이런 판구조 변화를 40초 영상으로 응축해 담아낸 연구 결과물이 나왔다(참고 동영상: https://youtu.be/gQqQhZp4uG8). 전 세계 대륙을 다니며 수집한 지질 자료를 토대로 만들었다. 대륙의 이동뿐만 아니라 판의 경계, 바다의 움직임까지 10억 년에 걸쳐 처음으로 보여주는 영상자료이다. 지구의 판은 1년에 몇 센티미터 움직이지만 10억 년의 시간으로 보면 커다란 변화를 보여준다. 10억 년이 40초로 집약된 영상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다. 이러한 판의 변동은 바다를 바꾸고 생물 종의 진화에도 커다란 영향을 준다.


눈덩이 지구에서 초기 생명체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이 시기 사막은 모두 얼음으로 뒤덮였고, 바다도 산소가 부족했다. 하지만 기포가 빙하 얼음 속에 갇혀 있다 녹으면서 물속으로 방출되면서 생물이 극한 빙하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2019년의 연구결과이다.


약 6억5천100만~6억3천500만년까지는 후기로 마리노(Marinoan) 빙기라고 한다. 당시 적도 인근에서 형성된 퇴적물과 암석에서 빙하가 작용한 흔적이 발견된 것이 근거이다. 하지만 지구 전체가 완전히 얼음으로 덮였었는지를 놓고는 논란이 있어왔다.


2023년 적어도 빙하기 말기에는 북위 30~40도의 중위도 지역까지도 얼음이 녹아 바다가 노출된 곳이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눈덩이지구 후기인 마리노 빙기 때 중위도까지 얼음으로 덮이지 않은 바다가 존재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다세포 진핵생물이 빙기를 극복하고 생존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되었을 것이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3-37172-x


당시에는 원시적인 다세포생명만 살던 시기였다. 대빙하기로 대부분 멸종했을 것이다. 간신히 살아남은 일부 생명체들은 그 후 진화의 대약진을 하였다. 그 끝에 살고 있는 필자가 슈뢰딩거 고양이에 대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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