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짜집기로 쓴 글입니다. 해석은 독자의 몫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고용이 악화하면서 취업 의지가 없는 청년층 무직자를 뜻하는 ‘니트(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NEET)족’이 크게 늘어났다. 니트 족은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 중 미혼이면서 직업훈련, 육아, 가사 등을 하지 않는 ‘그냥 쉬는’ 사람이다. 국내 니트 족은 2020년 기준 43만6000명(전체인구의 0.85%)으로 2019년보다 24.2%(약 8만5000명) 증가했다. 전체 청년층(15~29세) 인구에서 니트 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약 2.8%에서 2020년 4.9%로 2.1%포인트 증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청년층 중 취업자와 학생을 제외한 인구를 니트 족으로 분류한다. 이 기준으로 보면 한국 청년층에서 차지하는 니트 족 비중은 18.4%로 OECD 평균 13.4%보다 높다(2017).
니트 족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15년 신문기사는 약간의 일만 하는 사람인 ‘달관세대’를 묘사하였다. 그는 금융기관의 6개월짜리 인턴으로 일하면서 한 달에 100만원 벌어 월세 25만원, 저축 20만원을 뺀 55만원으로 생활한다. 그는 “그래도 풍족하게 산다. 돈 안 들이고도 취미와 여가를 즐기며 사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주말 오후엔 여자 친구를 만난다. 저녁 메뉴는 대개 맥도날드 햄버거에 테이크아웃 커피나 음료다. 그가 입는 옷은 중저가 브랜드다. 달관세대는 노는 법이 다르다. 중저가 옷을 입고 햄버거와 떡볶이를 먹으며,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카페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낸다. 동네 수영장에서 월 5만원을 내고 운동도 한다. 도서관에서 책 100여권을 대출해 읽었다. 사회의 외톨이로 살아가는 건 아니다. 페이스 북 같은 곳에서 그들은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낸다. 모두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들이다(조선일보, 2015.2.24. 편집).
대학을 졸업한 그는 입사 5개월 만에 퇴사했다. “매일 오전 8시에 출근해 밤 9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이렇게 일해서 뭘 얻는 건가?’라는 회의가 들었다.” 그는 학원 계약직 영어 강사로 취업하여 업무 시간은 4분의 1로 감소고 연봉도 작아졌다. 이젠 강사직도 그만두고 일하지 않고 1년간 지낼 생각이다. 그는 “불안한 마음이 없진 않지만…지금은 스트레스도 없고 행복하다. 소박하지만 문화생활도 가능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만으로도 내 선택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양극화, 취업 전쟁, 주택난 등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절망적 미래에 대한 헛된 욕망을 버리고 ‘지금 이 순간’ 행복하게 사는 게 낫다.”고 말한다. 1990년 이후 20여년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에서는 이런 젊은이들이 이미 ‘사토리 세대(さとり世代)’로 불리며 사회현상이 됐다. 사토리는 우리말로 ‘득도·달관·초월’에 해당되는 말이다. 한국 경제가 일본의 전철을 밟으면서 분노와 좌절의 심리를 현실 안주로 치환하는 젊은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이들의 생각은 정규직으로 입사해 뼈 빠지게 일해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사토리 세대의 직업 선택 기준은 ‘여유 있는 삶 보장’이다. 정규직이라고 미래가 보장되는 시대는 끝난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조선일보, 2015.2.23.).
달관 세대의 등장은 사실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다. 다만 우리나라가 심하다는 것만 다르다. ‘남들보다 앞서가는 법’으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 대한 반발일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젊은이들에게 “애인을 찾는 것처럼 직업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달관 세대는 부모가 권하는 직업 대신 애인 같은 직업을 찾는 세대다. 그들 가운데서 한국의 스티브 잡스가 나올 수 있다. 록 밴드 크라잉넛은 1976년생 초등학교 동창 넷이 열아홉 살 때 어울려 만든 밴드이고 ‘대중음악계의 악동’ 이미지인 이들은 책을 냈다.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어른들은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말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 이제 음악은 그만하고 먹고살 길을 찾아야지. 남들처럼 성공해야 하지 않겠어?' 다들 ‘성공'을 말하기에 그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봤다. 그 뜻은 ‘목적하는 바를 이룸'이었다. 우리의 목적은 ‘록밴드를 하면서 함께 늙어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린 이미 성공한 것이었다. 그 후로는 어른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저희 성공했는데요.'”(조선일보, 2015.3.7. 편집).
더 극단적인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결혼 4년차인 한 한국인 부부는 2년째 세계의 도시에서 한 달씩 살고 있다. 집은커녕 직장도 없다. 직장을 그만두고 ‘월세 여행자’가 되었다. 첫 결혼기념일은 터키에서, 이듬해는 파라과이에서 보냈다. 결혼식 때 청첩장도 안 찍었다. 인도식 레스토랑을 빌려 소수만 초대했다. 결혼 선언문은 이랬다. “집으로 투기하지 않을 겁니다. 인생 목표를 평수 넓히기에 두지 않겠습니다.” 2012년 결혼 후 둘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계획한 비용은 2년간 4000만원. 전세금 7000만원을 빼내 3000만원은 국민연금·보험료 등 고정지출비로 묶어놓았다. 가능한 여비는 월 166만원, 하루 5만원 남짓이었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니 남미나 아시아에서는 한 달 150만원에 살았다. 둘의 여행기는 2014년 9월 『한 달에 한 도시』라는 책으로 나왔다. 귀국하지 않고 여행지에서 출판사에 원고와 사진을 보냈다. 이들은 출발 2년 2개월 만인 2015년 5월 돌아온다. 하지만 여름과 겨울은 계속 세계의 유목민이 되어 돌아다니겠다고 한다. “우린 정말 많은 얘기를 했어요. 무의미한 생명 연장이나 장례 방식부터 왜 사는가의 문제까지요. 그 덕에 둘이 원하는 삶의 방향이 갈수록 닮아가요. 이보다 큰 얻음이 있을까요?” “24시간, 365일 붙어살다 보니 결혼 3년도 안 됐는데 30년차 부부는 된 것 같은 편안함도 느껴요. 다른 부부의 긴 삶을 응축한 것 아닐까 싶고, 이제 더 멋진 무언가가 다가올 것 같아요.”(조선일보, 2015.1.17. 편집).
와튼 스쿨 리처드 셸 교수는 프린스턴 대학을 다닌 엘리트의 길을 걸은 수재이다. 그는 베트남전 반전운동을 계기로 삶이 송두리째 뒤바뀐다. 자신이 믿는 가치와 집안의 기대 간 충돌로 심각한 내적 갈등에 빠졌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레스토랑 웨이터, 발레 파킹 주차원, 페인트 공, 악기 연주자, 사회복지사, 탁아소 직원, 아마추어 극단 배우, 부동산 판매직, 건자재 판매상, 변호사 등 수많은 직업을 거쳤다(수년에 걸친 세계 방랑까지). 결국 ‘자아'를 찾아 오디세우스처럼 세상을 방랑한다. 간염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리스 터키, 아프가니스탄, 인도, 스리랑카, 네팔, 태국, 홍콩, 대만 등을 거친 오디세이 마지막 기착지는 한국 송광사였다. 그곳에서 구산 스님을 만났다. “눈과 마음을 열고 현재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눈을 뜨게 됐다.” 그는 스님이 되는 대신 귀국을 택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진정한 소명(의미 있는 일)이 가르치는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하는 일을 정말 사랑한다. 바로 내 자신이 ‘찾아낸 일(created it myself)'이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진로결정은 남다르다. 전공과 진로를 정하기 전 ‘내 인생과 행복이란 무엇인가?'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좀 더 근본적 질문을 던져보라고 말한다. 성공한 삶을 위해선 ‘의미 있는 일(Meaningful Work)'을 찾아야 한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돈과 명성만을 위해 삶을 살지 마라.”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타인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다른 이들의 시끄러운 의견을 듣느라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파묻히지 않게 하세요. 정말 중요한 건 가슴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입니다. 가슴과 직관은 여러분이 진정 무엇이 되고 싶어 하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스티브 잡스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할 직업을 선택하여야 한다. 단지 세속적인 성공만이 목적으로 삼아선 인생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고, 성공하기에도 피곤하다. 성공관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외적 요소로 문화와 가족을 들 수 있다. 자신이 속한 문화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특히 대중매체에 의해 부풀려진 성공(대개 돈과 명성)만으로 자존감을 가늠하는 이들은 ‘굶주린 유령(Hungry Ghost, 불교 신화에 등장하는 아귀를 일컬음)'이 되기 쉽다. 아귀는 몸집은 코끼리만 하지만 머리는 바늘귀만 하고 입이 너무 작아 음식을 먹을 수 없고 먹어도 언제나 허기가 진다. 만족할 줄 모르는 일종의 병적인 ‘성공 중독자'가 되는 것이다. 알고 보면 타인 소망을 만족시키려 버둥대는 것에 불과하다. 이들은 때론 돈과 명성을 위해 부도덕한 일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당연하게도 안정된 생활을 위해 충분한 돈은 반드시 필요하다. 돈에 굶주린 아귀가 되지 않으려면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한 목적으로 돈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더 많은 돈을 좇아 달리는 대신 경제적 안정을 목표로 삼아라. 예를 들어 자신과 가족에게 안락한 삶을 보장해주는 데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돈을 번다면 차라리 기부를 하라. 직업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에는 열정과 흥미, 재능과 장점, 일정 수준 경제적 안정 등이 있을 것이며 이를 충족시키는 ‘스위트 스폿(Sweet Spot. 최적지점, 의미 있는 일)을 모색하여야 한다. 일은 생계를 위한 '직업', 자신이 되고 싶은 미래의 자아를 향한 약속을 의미하는 ‘경력', 그리고 수준 높은 전문성과 자존심을 제공하는 ’소명'으로 나눌 수 있다. 소명은 종교적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의미 있는 일이란 이름으로 바꿔 부른다. 일정 수준 경제력을 보장할 수 있는 ‘보상지향성 일', 자기 재능과 장점을 사용할 수 있는 ‘재능지향성 일', 자신이 좋아하고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열정을 샘솟게 하는 일', 이 세 가지가 겹치는 스위트 스폿이다. 안락한 삶을 위한 보상을 받으면서도 재능과 실력을 발휘할 수 있고, 흥미와 열정도 느낄 수 있는 일을 말한다. 스위트 스폿을 찾는 것은 어렵다. 계속 시도하고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우선 시도하고 일단 시작하라. 자기 재능과 능력을 따라가고, 그 길 위에서 당신 마음이 하는 소리를 들어라. 만약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지금 하는 일 때문에 흥분되고 즐겁다면 거기서 멈춰라. 그 일에서 탁월해질 수 있도록 열정과 노력을 쏟아라(매일경제신문, 2015.3.26. 리처드 셸 와튼 스쿨 교수 인터뷰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