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종교의 분리에서 협력으로 나아갈 것을 주장하는 입장도 있다.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1929~2021)은 과학과 종교가 협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 유명한 학문 간의 ‘통섭’이다. 1998년 에드워드 윌슨은 자신의 저서 『통섭』에서 예술, 종교,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이 하나로 통합될 것을 주장했다. 에드워드 윌슨은 자신의 저서 『사회 생물학』에서 이렇게 썼다. “외계 행성에서 온 동물학자의 눈으로 보면,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생물학에 속하는 전문 분야들로 축소된다. 역사나 전기, 소설은 인간 행태학의 관찰 사례 보고서가 되고, 인류학과 사회학은 모두 영장류의 한 종에 대한 사회 생물학이 된다.” 그가 통섭을 주장했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생물학으로 환원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윌슨 본인을 포함해 어떤 과학자도 통섭은 과학이 인문학을 흡수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과학이 현대 문명의 기초를 다졌다는 것은 정당한 주장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을 절대화하는 것은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과학과 함께 인문학과 사회과학 더 나아가 철학과 신학의 방법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인문학 등이 과학만큼 객관적이거나 더 나은 지식을 제공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이성과 탐구를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을 요구할 뿐이다.
에드워드 윌슨은 자신의 저서 『인간 존재의 의미』에서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한다면 배울 만한 것이 과학이 아니라 인문학이라고 말했다. 인문학은 너무나도 중요한 주제를 탐구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문학을 경시한 것은 아니다. 통섭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교류하며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은 인간의 자연과학적 연구결과를 기피한다. 의미와 가치는 자연과는 별개라고 생각한다. 특히 과학을 환원주의로 비판한다. 그러나 ‘나쁜’ 환원주의적인 생각을 가진 과학자는 드물다.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는 자신의 저서『지금 다시 계몽』에서 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은 양자 모두에 ‘윈-윈’이 될 것임을 강조했다. 과학의 연구 성과들이 종교나 인문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쓸모가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놀라운 일이다. 통섭은 쌍방향 도로이다. 종교도 과학과 함께 가야한다는 것이 통섭의 입장이다. 2018년 타계한 스티븐 호킹은 뉴턴과 다윈이 묻힌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되었다. 당시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사제는 성명에서 “우리는 삶과 우주의 미스터리라는 위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과학과 종교의 협력이 필수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에드워드 윌슨은 기독교 목사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형식으로 과학과 종교의 통섭을 다룬 책 『생명의 편지』(2007)을 출간했다. 기독교인이라면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자연을 접해 관찰하고 느끼고 배우는 것이 곧 하느님의 창조물들이 대대손손 이어가게 만드는 사랑의 행위라며 이 과정에서 종교가 큰 몫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창조론과 진화론을 둘러싼 논쟁은 일단 접어두고 모든 인간이 공유할 수 있는 도덕규범은 바로 우리 스스로와 후손을 위해 아름답고 풍성하고 건강한 자연을 지켜야한다는 것이다.「요한계시록」의 종말과 같은 멸종을 종교인과 과학자가 힘을 모아 막아야한다고 호소한다. 그는 어느 목사님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나는 세상의 인본주의자입니다. 목사님은 하느님이 인류를 구원한다고 믿지만, 나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자유를 주려고 불을 훔쳤다고 믿습니다. 목사님과 세계관은 다르지만 목사님은 내가 깊이 고민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의 해결을 도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윌슨의 입장은 과학과 종교의 대립은 지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과 종교가 비판적, 건설적으로 상호작용할 것을 요구한다. 자기 고유영역은 보존하고, 상대방 영역으로 무리하게 뛰어들지 말아야 한다. 수학적·자연과학적 명제와 초경험적·철학적·신학적 명제는 구분하여 하며 그것은 정당하고도 필요한 일이다. 자연과학은 신학과 신앙과는 독립하여 완전한 정당성·독자성·자율성을 지닌다. 다시 말해 기독교 신앙은 이성과 철학 그리고 과학에 대하여 적대적 태도를 요구하지 않는다. 과학과 역사비평적인『성서』 해석의 성과를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근본주의적이고 전근대적 발상을 거부하여야 한다. 1950년 교황 비오 12세는 진화론이 ‘타당한 접근’이라고 했다.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진화론이 언젠가 정설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로마가톨릭 프란치스코 교황이 진화론과 빅뱅이론은 창조론과 대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과학을 수용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과학의 성과를 자기네 교의에 흡수, 동화시키는 신학자들의 주장(우리나라의 창조과학 같은 사이비 과학 같은)도, 자기네 명제들을 위해 종교를 도구화하는 과학자들의 주장(빅뱅설을 창조설과 동일시하려는 시도 같은)도 지양한다. 신학적 근본 문제들을 기피하거나 종교를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다고 매도하는 것도 지양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