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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챗GPT 시대라 질문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글은 2022년 출간한 <미래형 인재 자녀교육>을 업데이트 한 글입니다.



질문과 토론을 중심으로 한 교육은 유대인 교육의 핵심이다. 유대인은 전 세계 인구의 1%도 안 되는데도 노벨상 전체 수상자 가운데 30%를 차지한다. 미국 명문 대학 입학생의 20~30%가 유대인이다. 아인슈타인, 프로이드, 스필버그도 유대인이다. 유대인 아이들은 학교에서 서로 자유롭게 질문하고 토론한다. 1919년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였던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B. Veblen, 1857~1929)은 유대인 탁월함의 비결은 의심하는 태도(skeptical animus)라고 주장했다. 이점은 유대인이 경전을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나온다. 카렌 암스트롱의 저서『성서 이펙트』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바빌로니아 탈무드』는 최초의 쌍방향 경전이며…학생들 역시 랍비들이 했던 것과 같이 토론에 참여해 자기 나름대로 경전 해석에 공헌했다.…각각의 페이지마다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빈칸이 마련돼 있었다. 학생들은…누구의 말도 최종적인 발언이 아니라는 점, 진실은 계속 변화한다는 점…을 배우게 된다. 학생은 반드시 자기 자신의 의견(게마라)를 성스러운 페이지에 더해야 한다.” 경전을 공부하면서도 모든 것을 의심하고 반문하는 전통을 가진 것이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학교에서 침묵하고 듣기만 하거나 수면부족으로 잠을 자고 있으니 정반대이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인건도 자녀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저녁 식사를 할 때마다 회의적 사고와 우주에 관련된 주제로 대화를 했다. 자녀와 끊임없이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주고받았다. 칼 세이건은 어떠한 경우에도 ‘누군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또는 ‘그건 원래 그런 거야’라고 답하지 못하게 했다. 모든 질문에는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특히 칼 세이건은 어떤 것이 사실이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것을 경계했다. 오직 진실만이 비판을 견딜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아인슈타인이 1955년 <LIFE>와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은 교육에 있어서 명언 중의 명언이다.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호기심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질문과 토론은 우리나라 학교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2023년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은 인공지능이 고도화할수록 학생들에게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지며 이를 키워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챗GPT 출현으로 문제의 답을 찾는 교육보다 어떻게 질문하느냐를 가르쳐주는 교육이 더 중요해졌다는 의견이다. 그러면서 초·중·고 졸업식에서 교육부 장관상인 ‘질문 왕’을 시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질문은 인공지능이나 챗GPT의 출현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질문 그 자체는 교육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입시위주의 교육풍토에서 최소한 가정에서나마 질문과 체험학습, 그리고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가기를 바라지만, 우리나라에서 실천하기에는 쉽지 않은 교육방식이다. 어렵더라도 집에서 나마 부모와 자녀가 함께 질문하고 토론 하는 장을 잘 유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이들이 무슨 질문을 하더라도 우선 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을 하나만 말해 주는 것보다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 좋다. 틀리더라도 아이의 의견이 나오면 칭찬해 주고 토론을 하여야 한다.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들어주는 것이 질문과 토론 교육의 시작이다. 필자도 이런 교육에 익숙하지 않아 아이들을 키울 때 그렇게 못한 것이 후회된다. 사실 필자도 우리나라에서 교육받으면서 질문과 토론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질문과 토론은 비단 아이들의 교육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사람들과 대화하고 논쟁하여야 한다. 4년 동안 과학을 전공한 대학원생 수백 명을 연구한 결과 동료들과 나눈 논쟁적인 대화가 지적발달에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인간의 뇌는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아 혼자 생각하고 추론하면 확증 편향에 갇히기 쉽다. 오히려 다른 관점을 지닌 사람과 논쟁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탄탄히 쌓인다.


현대 사회는 지식이 축적되면서 발전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 지식의 반감기, 대학에서 배운 지식의 절반이 무력해지는 기간이 7년이다. 앞으로는 더 짧아질 것이다. 지식의 반감기가 줄어드니 대학은 지식을 배운 사람이 아니라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 지식 전달을 넘어 학생들의 역량을 키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질문하는 능력, 의문을 제기하는 능력,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능력 말이다. 평생 배움의 자세를 갖춘 사람을 길러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더욱이 인간의 수명이 90세, 100세까지 늘어서 평생 학습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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