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부모를 가진 아이는 머리가 좋고 학업성적이 좋고 고등교육을 받을 확률이 높다. 부모가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으면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에 비해 ‘평균적으로’ 학업성적이 좋은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성공한 부모는 좋은 유전자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영국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저소득층 출신 아이의 47%가 학업성취가 좋지만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는 77%가 학업성적이 좋았다. 반면 학업 성취가 좋지만 부모가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가정의 아동들은 21%만이 고등 교육을 받았다. 지능이 낮아도 부모가 잘살면 더 좋은 고등교육을 받을 가능성은 훨씬 더 높다. 생명계나 인간세상은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는다.
교육은 개인과 가정의 가장 큰 관심사이다. 그러나 교육과 학문을 ‘인류’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학업능력이 좋고 학문적 성취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좋은 교육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면에서 교육의 평등성이 중요하다. 누구나 능력이 되면 대학에 진학하고 공부할 수 있는 무상교육을 지지한다. 그게 가능하려면 모든 사람이 높은 세금을 내는 것에 동의하고 실천하여야 한다. 쉽지 않다.
매력적인 외모가 긍정적인 감정을 만들어내고 경제적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텍사스 대학과 미시간주립 대학 교수들은 미국과 캐나다 남녀의 외모와 수입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잘생긴 외모는 수입에 5~10%의 프리미엄을 가져왔다. `저널 오브 이코노믹스`에 실린 1998년 연구에서도 4400명의 변호사 수입을 추적한 결과 잘생긴 변호사들의 수입이 월등하게 높았다(매일경제, 2014.10.3. 서평: 스티븐 다얀, 서영조 옮김, 우리는 꼬리치기 위해 탄생했다, 위즈덤하우스). 누군가는 더 힘들게 살도록 삶이 주어졌다. 마치 운명처럼 개인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고통이란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다.
2023년 전철에서 ‘아줌마’라고 부르는 소리에 흉기를 휘두른 30대 여성이 법정에 섰다. “‘아줌마’라고 불러 기분이 나빠 칼을 사용했습니다.…제가 잘못했나요?” 20대 여성에게 아줌마라고 말했다가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사고도 발생했다. 언론사 설문조사에 의하면 ‘아줌마’는 ‘못생긴’ 외모를 뜻한다. 결혼 여부와 나이도 반영되지만 외모가 더 반영된다. 나이에 관계없이 아줌마라는 호칭을 싫어하였다. 아줌마라고 불리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아줌마라는 말은 ‘비하’의 의미가 숨어있는 것이다. 억척스럽고 예의 없는 사람으로 말이다. 그리고 은근히 보이지 않게 신분관념이 숨어 있다. 아줌마와 사모님으로 나누어지는 호칭이 그렇다. 또한 명품사재기로 신분을 과시하려는 우리 사회의 모습도 그렇다. 우리나라는 명품사재기 세계 최고를 달린다. 아무튼 식당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호칭은 어렵다. 2022년 ‘MZ’ 세대 아르바이트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저기요’를 가장 선호했다고 한다. ‘저기요’ 또는 ‘여기요’는 비하의 의미나 ‘신분’을 나타내지 않는 중립적인 표현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었다. 2023년이면 234년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대통령도 총장도 미스터 ‘누구’라고 불러도 괜찮다. 물론 서구사회에도 아직 신분관념은 강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신분관념이 강하다. 웬만하면 사장님, 선생님, 사모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아저씨나 아줌마라고 부르면 안 된다. 인간평등성은 프랑스혁명, 헌법, 법률, 교과서, 책, 상식 등 어디에서나 보편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줌마와 사모님, 아저씨와 선생님 같은 신분적인 의도의 말이 많이 쓰인다. 물론 우리말이 존칭이 많아서 일수도 있다. 그러나 명품사재기가 10대까지 퍼질 정도로 명품으로 양반이나 귀족이 되고픈 풍조는 달갑지 않다. 명품이 ‘유인원적인’ 유전자나 본능의 유산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인간’은 또는 ‘인간적’이라는 말은 유전자나 본능을 넘어선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좀 더 인간적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