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과학뉴스

할머니도 설득할 수 있는 과학

과학 책이 ‘고전’이 되려면 가독성이 있어야 한다. 과학 저술이나 논문의 가독성이 떨어지면 일반인들은 더욱 더 과학 바깥의 더 단순하고 간명한 설명에 관심을 가진다. 과학의 엄밀성과 가독성은 과학에서 공존하기 힘들다. 과학적으로도 엄밀하면서도 가독성을 유지하는 것 정말 어려운 과제이다. 특히 과학교육에서 과학 문헌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과학 교육의 기본 목표이고 필수적(essential for effective citizenship)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독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당한 엄밀함을 갖추면서도 가독성이 있는 책, 과학자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과학이 필요하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주목하는 이유이다.


가독성은 과학계 내의 논문에서도 문제이다. 과학이 갈수록 세분화하고 전문화해 논문이 해당 분야의 과학자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갈수록 과학 전문용어(general scientific jargon)도 늘어났다. 그래서 2007년 과학저널「사이언스」가 과학 소통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실험에 나섰다. 논문과는 별개로 논문을 좀 더 쉽게 풀어 설명하는 ‘저자의 요약문’을 따로 받아 내고 있다. 난해한 학술논문의 가독성(readability)을 높이려는 취지이다. 과학이 발달하고 전문화할수록 어휘의 다양성은 더 커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과학의 전문용어는 불가피하더라도 그것이 과학 논문 가독성의 지속적 감소 경향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는 가독성이 있는 과학 ‘해설’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했던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은 바로 그런 프로그램이다. 데이비드 애튼버러(David Attenborough, 1926~)는 ‘동물의 왕국’ 해설자이다. 90대의 나이에도 ‘BBC’ 등에서 생물을 설명해왔다. 그는 과학 비전문가이지만 과학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으며, 과학교육 프로그램의 범위를 확대하였다.


빌 브라이슨도 과학이론이나 지식, 현상을 ‘엄밀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재미있게 ‘이야기’를 한다. 과학자들이 현상을 발견하고 이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마치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썼다.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 매우 쉽고 친절하게 과학을 풀어나간다. 과학 이야기임에도 인간적인 냄새가 묻어난다. 따라서 과학을 잘 모르는 독자들도 아주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 바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어떤 것을 당신의 할머니에게 설명할 수 없다면 당신은 그것을 진정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실천한 책이다. 룰루 밀러(Lulu Miller)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2022년 상반기 베스트셀러이다. 과학을 감성적 문체로 설명하며 여성 독자의 마음을 샀다. 착한 소년이 과격한 인종차별적 우생학자가 되는 삶을 사랑과 상실이라는 테마로 이야기한다. 과학을 인간의 삶과 연결시키는 따뜻한 글이다.


서문도 참 매력적이다. “당신을 환영하고 축하한다. 나에게는 당신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 큰 기쁨이다. 나는 당신이 이곳까지 오기가 쉽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사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보통 사람이 과학책을 사서 읽는 것이 그만큼 멀다는 얘기이다. 상당히 어려운 내용임에도 쉽게 설명해서 책을 읽는 동안 그리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기존 과학책에 실망했다면, 과학을 알고 싶지만 마냥 어렵게 느껴진다면, 또는 과학자들 사이에 얽히고설킨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공식과 암기가 아닌 진짜 과학을 알고 싶다면, 교과서 안팎의 과학이야기를 폭넓게 알고 싶다면, 심도 있는 지식을 쉽게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오마이뉴스, 2017.2.24.).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2003년 초 미국에서 발간되었고 그해에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필자는 2004년 이 책을 들고 트랑고타워(K2 가는 길에 있는 약 7천 미터의 암벽 산) 등반대를 따라 두 달 동안 히말라야에 갔었다. 4000여 미터의 호수가 있는 아름다운 베이스캠프에서 히말라야의 설산을 바라보며 밤이면 쏟아지는 별 빛을 바라보면 감명 깊게 읽었다. 박범진 작가는 2023년 『순례』를 출간했다. 과거 썼던 히말라야와 카일라스 순례기에 산티아고 순례기와 폐암일기를 더 한 책이다. 우리 인생 자체가 순례의 길이다. 나도 언젠가는 히말라야를 다시 떠돌며 자연과 인간의 순례기를 쓰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신이다"와 가짜 뉴스 & 음모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