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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천 년간 지속된 흑사병의 ‘흑’ 역사(2)


서로마가 5세기경 멸망할 무렵 유목민족들이 로마에서 활보하기 시작하며 대규모 페스트가 유행했다. 6세기 동로마제국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 황제시대에 처음 발생하여 유스티니아누스 페스트라고도 불렸다. 역사적 기록으로는 6세기 독일과 동로마제국에서 페스트가 창궐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로마 제국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황제가 통치하던 시기(527~565)인 541~542년 역병(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 유행하여 세계 인구의 10%(2500만~1억)가 죽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때 유행한 질병은 쥐벼룩이 매개하는 페스트(Yersinia pestis)라고 판단되고 있다. 


1990년대 역사학계는 과학계와 공동으로 나무의 나이테 연구를 하여 540년에 지구 온도가 크게 떨어진 것을 밝혀냈다. 유럽, 중동과 아시아 일부 지역은 알 수 없는 안개(fog)가 땅을 뒤덮어 536년의 연평균 온도는 1.5°C~2.5°C로 떨어졌다. 당시 역사가인 프로코피오스(Procopius, 490-562)는 태양이 달처럼 빛을 잃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중국에서는 여름에 눈이 내려 흉작으로 기아에 허덕이고 아일랜드에서도 기근이 찾아와 굶어죽는 사람이 많았다. 541년에는 “Plague of Justinian”으로 불렸던 페스트(sunfest)가 당시 로마의 이집트에 나타나서 동로마제국 인구의 반이 죽었고 결국 오스만투르크에 멸망했다. 이러한 재앙의 원인이 536년 초 아이슬란드에서 발생한 대규모 화산 폭발로 인한 화산재가 북반구를 덮은 것이었음이 빙하를 분석하여 밝혀졌다. 540년과 547년에도 화산 폭발이 이어졌고 계속되는 화산 폭발이 기후변화를 일으켜 흑사병과 같은 역병을 일으켜서 이 여파가 640년까지 이어졌다. 연구 결과는 자연현상과 인류 역사와의 관계를 밝혀낸 사례로써, 학제 간의 연구로 나온 이번 연구는 역사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시 시작된 흑사병의 매개체로 꼽혀왔던 야생 검은 쥐는 12세기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동안 쥐가 옮긴 벼룩이 흑사병의 주범으로 인식되어왔지만, 동시에 인간을 숙주로 삼는 이와 벼룩 같은 체외 기생충이 산업화 이전 유럽에서 전염병을 옮겼다고 보는 학설이 최근에는 보다 설득력을 가진다. 곧, 인간이 전염병 전파에 쥐보다 더 큰 감염의 매개역할을 했다는 주장이다. 


8차에 걸친 십자군 원정(1096~1291) 같은 전쟁은 페스트 확산의 원인으로 거론된다. 전쟁터의 시신은 쥐와 까마귀가 파먹기 시작하며 페스트균은 땅과 하늘을 가로지르며 돌아다녔다.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은 동방에서 페스트에 감염되어 고향에 페스트를 확산시키는 주범이 되었다. 


14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흑사병은 당시 유럽 인구 3분의 1 내지 절반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후에도 수백 년간 희생자를 만들었고, 흑사병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최소 7500만 명에서 최대 2억 명으로 추정된다. 흑사병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낳은 감염병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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