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멈블비 Sep 09. 2024

식물을 보는 이유

식물이 실시간으로 자라는 것을 사람의 눈으로 관찰하기는 어렵다. 대신 어느새 훌쩍 자라있는 모습을 알아차리고 놀랄 때가 많다. 내가 돌보는 식물들은 볼 때마다 조금씩 변해있고,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뻗어가거나 하룻밤 새 꽃봉오리가 맺혀 있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식물이 계속 보고 싶어진다.

나는 스스로 예술가로 살겠다고 정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크게 나아지지 않는 살림살이나 아직도 항상 처음처럼 어려운 작업에는 너무나도 쉽게 마음이 들쭉날쭉 한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식물을 보는 것이 큰 위안이 된다. 무언가 멈춰있는 듯 보일 때조차도 사실은 정체된 것이 아님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발코니에 자라고 있는 40 여종의 식물들을 보러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집에도 이렇게 기쁜 아침이 오는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식물이 햇빛을 필요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 우리 집 발코니에서는 햇빛이 식물 덕에 생기를 얻는다. 무미건조하게 벽에 늘어지기만 하던 독일의 햇빛이 다양한 모양의 잎채소와 허브들 그리고 어린 나무들 사이를 유영한다. 스테인드글라스 공예품도 아닌데 잎사귀를 투과한 빛은 초록 기운을 배로 내뿜으며 그 주변을 밝힌다. 그 모양을 베끼며 드리우는 그림자도 바람에 살랑거리며 간질간질 기분을 좋게 한다.

우리가 보통 식물을 보는 방식은 대부분 단편적인것 같다. 기념일에 받는 꽃다발의 색깔이나, 길가에 자라는 풀에서 흘깃 보인 계절의 채도 정도인 경우가 많다. 식물을 제대로 마주하면 그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디테일을 보게 된다.


보타니컬 드로잉이라는 장르의 미술이 있다. 보통 식물을 아주 상세하게 그리는 세밀화를 말한다. 발코니에 선 아침마다 나는 마치 그릴 것처럼 식물들을 관찰한다. 잎사귀 하나 안에 얼마나 많은 선이 있는지 꽃잎이 얼마나 가볍고 투명한지, 줄기에는 얼마나 많은 솜털이 나 있는지를 바라본다. 매혹당하고 환희를 느끼면서 그에 역설적으로 평안을 느낀다. 많이 보면서도 편안할 수 있다는 것이 식물이 다른 대상과 가장 다른 점이다.

식물의 잎사귀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녹색을 보았다. 모든 식물이 직사광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님을 그렇게 알게 되었다. 애정만큼 자꾸 물을 많이 주어도 문제다. 그래서 재촉하지 않고 채근하지 않고 잘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거의 기분 탓일지도 모를 하루만큼의 성장을 가늠한다. 그렇게 내 하루도 시작한다.

작가의 이전글 씨앗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