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자의 조각보 Apr 07. 2022

굼벵이도 기는 재주는 있다구.

인형 옷 만들어 입히기



 


어릴 적 우리 집에 동생 몫인 인형이 있었다. 그 인형이 어떻게 우리 집에 있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제법 고급스러운 인형이었다. 통통하고 귀여운 아기 인형은 머리가 긴 금발이었고 옆으로 누이면 눈꺼풀이 내려와 까맣고 큰 눈이 감겼다. 레이스가 달린 블라우스에 치마를 입었고 치마 속에는 하얀색의 속옷도 갖추어 입고 있었다. 동생은 잘 때도 그것을 안고 잤다. 변변한 장난감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사랑받던 인형은 날이 갈수록 분홍빛이던 양 볼에 거뭇하게 때가 묻고, 블라우스를 장식하던 레이스가 제일 먼저 뜯어져 너풀댔다. 그 후로 치마 고무줄이 늘어나고, 단추까지 사라진 옷을 버리고 나니 끝까지 온전한 건 꼬질꼬질하게 때 묻은 속바지뿐이었다. 윤기 나던 긴 금발머리는 엉켜서 산발이 되었고 동생이 잘 때도 놓지 않던 인형은 윗목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어떤 때는 어깨가 빠진 한쪽 팔이 따로 떨어져 있기도 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되는 동안에도 누이면 감기는 커다란 인형 눈은 고장 나지 않고 멀쩡했다.


끝내, 인형이 알몸으로 굴러다니는 것을 보고 나는 옷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재료는 집에 굴러다니는 털실을 이용했다. 당시 아후강이라는 일본식 뜨개질이 유행이었고 엄마는 그것을 배워 아기용 모자를 뜨는 부업을 하고 있었다. 자투리 털실은 얼마든지 있었고 나는 종일 털실을 가지고 뜨개질을 흉내 내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때였다.     






이틀 동안 혼자 늘이고 줄이고 끈을 달고 하면서 인형 목에 두르는 망토와 치마를 떴다. 그걸 인형에 입히고 나니 제법 그럴듯했다. 뿌듯했던 나는 자랑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랑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다.  

  

 “경자 저것이 누굴 닮았는지 눈썰미가 있더라구~ 이거 만들어 입힌 것 좀 봐~ 제법 그럴듯하잖어~ 언제 이런 건 배웠는지 의견이 아주 멀쩡하다니께~ 굼벵이두 기는 재주는 있다더니...”    

 

어느 날, 엄마는 부업으로 만든 모자를 가지러 온 아주머니에게 내가 만들어 입힌 인형 옷에 대해 말했다. 문 밖에 있던 나는 그 말이 끝나도록 조용히 듣고 있었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왜 내게 직접 말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유독 인색한 엄마로부터 들은 첫 칭찬이었다.


이전 04화 나는, 미운 오리 새끼였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