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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자의 조각보 Apr 04. 2022

개천으로 요강 닦으러 다니기

원성천의 기억





원성천 뚝 방에 살 때 이야기다. 우리 집에는 요강이 있었다. 그때 대부분의 집들이 그랬듯이 화장실이 집 밖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밤에 화장실 가기가 불편했고 방안에 요강을 두어 사용했다. 우리 집은 항상 무거운 초록색 사기 재질의 요강을 사용했다. 요강을 비우고 닦아 놓는 것은 내 몫의 일이었다. 매일 요강 안에는 우리들이 밤새 싸놓은 오줌이 반쯤 차 있거나 어느 날은 가득 차 있기도 했다.  

    

아침이면 그 요강을 가지고 대문을 열고 길을 가로질러 원성천 뚝 아래로 가지고 갔다. 그런 다음 요강 속 오줌을 개천에 흘려보내고 개천 물로 요강을 닦아서 가지고 왔다. 요강은 무겁기도 했고 들고 가다 보면 손에 오줌이 묻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요강을 들고 경사진 둑을 내려가다가 떨어트려 깰까 봐 더 신경을 썼다. 내가 요강을 닦고 있으면 건너편 둑길을 따라 학교에 가고 있던 교복을 입은 중학생들이 나를 가리키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 쟤 좀 봐라. 저거 요강 아니냐? 저 안에 손 넣고 있는 것 좀 봐. 아유 더러워라!~”  

   

나는 그럴 때마다 부끄러웠고 요강 닦는 일을 그만하고 싶었지만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러다 늦게 오는 날이면 길고 긴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너는 뭐만 시켰다 하믄 함흥차사라니? 요강 가지고 간지가 언젠데 이제 오냐구! 하나부터 열까지 맘에 들게 하는 게 하나두 읍으니.. 생긴 건 황새 늦새끼마냥 생겨가지구.. 손 놀리는 거 보믄 똑 죽은 게 발 놀리 듯하고 있으니.. 어이구.. 앓느니 내가 죽지..”  

   

부엌 앞에 있던 수돗가는 제법 넓었다. 물이 내려가는 수채 구멍도 커서 자칫 잘못하면 빨래하던 비누나 잠깐 벗어 놓은 신발이, 버리는 물에 쓸려 수채 구멍으로 떠 내려가기도 했다. 어차피 수채는 하수관을 통해 개천으로 이어져 있어서, 떠내려간 비누나 신발은 하수관이 연결된 개천에서 찾아오곤 했다.


내가 요강을 닦아오는 일이 마음에 안 들면 엄마가 직접 가까이 있던 수채 구멍에 버리고 닦아 놓으면 되는 것을, 열 살짜리 딸에게 시켜놓고 마음에 안 든다고 그렇게 야단을 쳤을까? 이제 와서 문득 궁금해진다.      




왼쪽이 열 살 때의 내 모습이다.


요강을 닦으러 다니던 원성천의 뚝에서 삼 남매가 찍은 오래된 흑백사진이다. 마르고 키만 멀대같이 오빠보다 컸던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다 깜박 잠이 들었었다. 고새를 못 참고 잠이 들었다고 길고 긴 엄마의 잔소리를 들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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