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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자의 서랍 Oct 17. 2022

나는 무얼 먹고 자랐을까?

척박한 환경 속 좋은 식습관






나는 말랐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그렇다. 마른 사람들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이 입이 짧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입이 짧다는 사전적 의미는 '음식을 적게 먹거나 가려 먹는 버릇이 있다.'라고 나와있다. 나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내가 음식을 가리거나  적게 먹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음식을 가리지도 않고 음식을 앞에 두고 께적거리지도 않는다.  냄새나 맛에 예민하지 않아 기본적으로 달거나 맵고, 짜거나 싱겁거나 쓴 맛 이외에는 둔한 편이다. 깊은 맛이나 감칠맛, 담백한 맛, 개운한 맛 등  애매하고 수준 높 표현되는 맛은 지금도 가늠하기 어렵다. 입으로 느끼는 맛에 둔해서일까? 음식의 질이나 양을 따지지도 않으며 무엇을 먹든 한 끼 때우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불결한 곳에서 만들었거나 먹어야 하는 상황은 아직까지 적응을 잘 못하는 편이다.


이렇듯 맛에 둔감한 것은 내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자라지 못한 까닭이고 또한 음식을 맛있게 만들지 못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엄마 흉보기가 내가 쓰는 글의 대부분이고, 모든 일에 '기승전 엄마'로 결론 내리는 만큼 음식과 맛에 대한 것 또한 엄마 탓을 안 할 수가 없다.






나는 어릴 적 무얼 먹고 자랐는지 기억나는 것이 몇 가지 없다. 겨울이면 '만두'를 만들어 먹었고, (엄마가 좋아했다.) 총각김치와 동치미등 여러 종류의 '김장김치', 그리고 김치를 송송 썰어 넣어 끓인 '김칫국'이 유일하게 생각난다. 자기 연민에 집착하느라 살림에는 뒷전이었던 엄마가 겨울이면 성의 없이 매일 끓여대던 김칫국 질린 아버지는 그것을 먹지 않았다. 그러면 엄마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고깃국을 끓일 만큼 벌어오지도 못하면서 김칫국을 싫어하는 아버지가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반찬이 상하기 직전의 것들을 몽땅 집어넣어 끓여주던 정체가 불분명한 '찌게'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집이 가까우니 점심시간이면 집으로 밥을 먹으러 다녔고, 중, 고등학교 때는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겠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은 나는 기억에 남아있는 도시락 반찬 하나가 없다.


당시 가장 흔했던 반찬이 콩자반이나 멸치볶음, 무장아찌. 김치, 두부 부침이나 콩나물 무침 정도였으니 기억나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먹었으려니 짐작한다. 어묵볶음이나 계란 프라이, 분홍 소시지 부침은 그때 우리에겐 사치였다.






원성동 살 때 어느 해 여름의  일이다. 먼 친척이 아기를 낳은 '산후조리'를 엄마에게 부탁했다. 물론 얼마간의 보수를 받는 일이었다. 그 집은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혜란이 이모네 '만홧가게' 바로 옆집이었다. 엄마는 한동안 그 집으로 아침에 갔다가 저녁 무렵에 집에 오곤 했다. 우리에게는 절대 그곳으로 찾아오지 말라고 아침에 나갈 때마다 당부를 했다.


찬장에는 스테인리스로 된 밥통이 있었고 그 안에는 항상 밥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여름이라 밥통 속의 밥은 상해있기 일쑤였다. 엄마는 손이 컸다. 밥을 할 때마다 하루치를 한꺼번에 했다. 어제 밥을 다 먹지 못해 상해가는데  아침에 한 새 밥을 먹을 수는 없었다.


상한 밥을 먹기 싫었던 우리는 엄마가 산후조리를 도와주러 가있는 집으로 갔다. 절대 오지 말라는 협박과도 같은 당부가 있었으므로 선 듯 들어가지 못하고 문틈으로 빼꼼히 들여다본다. 여러 차례 그렇게 하다 보면 엄마가 우리를 발견하고 나오곤 했다.


"엄마, 밥 어떤 거 먹어? 하얀 밥통에 밥 상했는데~"


엄마는 겨우 그걸 물으러 여길 온 것이냐며 눈을 부라리며 혼을 냈다. 어떤 때 우리가 온 것을 알게 된 아기 엄마는 우리에게 과자나 사탕 따위를 주기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으라고 돈을 주기도 했다. 엄마는 그것을 무척 싫어했다.


예상했던 뻔한 반응에 우리는 터덜터덜 걸어서 집으로 온 뒤 밥통의 냄새나는 상한 밥을 물에 헹구었다. 밥이 담긴 밥통에 물을 받아 흔들면 식혜 밥처럼 삭아있는 밥알에서 하얀 찌꺼기 같은 것이 물 위로 둥둥 떴다. 그러면 여러 번 그걸 살그머니 따라낸다. 그렇게 하얀 찌꺼기가 나오지 않을 만큼 되풀이 한 다음 그 밥을 먹었다. 반찬이나 변변하게 있었을까? 무엇과 함께 그 밥을 먹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집은 가난했고, 먹거리에 대한 엄마의 정성도 없었고,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니 먹을 만한 반찬이나 주전부리 같은 변변한 것들이 있었을 리 없다. 그때 다른 밥통에 들어있던 아침에 지은 밥은 다음날이면 또 상해있곤 했다. 우리는 엄마가 돈을 벌러 '산후조리'를 하러 다니는 동안 냄새나는 상한 밥을 내내 물에 헹구어 먹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한 밥을 나만 먹게 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래도 크게 한 번 아프지 않고 자란 것을 보면 음식이나 식습관이 건강에 생각만큼 큰 영향을 미치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금까지 먹을 것에 집착하지 않고, 다소 마르긴 했지만 입맛 까다롭지 않게 이것저것 아무거나 잘 먹는 좋은 식습관을 가진 것은 어릴 적 척박한 환경에서 적응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가진 몇 개 안 되는 장점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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