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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자의 조각보 Jul 22. 2022

말(言)로 주는 상처가 더 아파요.

말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말(言)로 받는 상처




우리는 말의 힘과 영향력을 무심코 잊으며 살아가지만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구업(口業)이라는 말 있다. 불교에서 몸(身業), 입(口業), 뜻(意業)으로 짓는 세 가지 업을 삼업(三業)이라고 하는데, 그중 구업은 말을 잘못하여 짓는 업을 말한다. 이것은 입으로 하는 말을 조심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말이 씨가 된다'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칼의 상처는 아물어도 말로 받은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라는 몽골 속담도 있다고 한다. 모두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교훈을 담은 것이다. 말의 상처는 깊고 오래간다. 그래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말을 언어폭력이라고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오랫동안 엄마의 정제되지 않은 천박하고 상스럽고 모욕적인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때 엄마가 지은 구업그대로 내 마음속에 가 되어 지금 원망과 미움이라는 열매를 엄마가 거두고 있는 중이다.   

 




엄마는 때리거나 욕은 하지 않았다. 말, 말, 말, 오로지 말이었다. 한번 시작하면 서너 시간씩 자신에 대한 과한 연민을 담고, 나에 대한 미움을 담고.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무능하고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원망과 질책을 담은 말을 뱉어냈다. '같은 말이라도  다르고,  다르다'라고 한다. 거짓말이나 욕이 아니칠고 마음을 다치게 하는 말은 폭력이고 학대 다름없다. 그렇게 여과 없이 마구 뱉어낸 말은 나름 힘들게 살아왔을 엄마의 수고를 헛되게 하기 충분했다.



나는 성장하면서 부모로부터, 특히 엄마로부터 받았어야 할 기본적인 것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 먹을 것을 챙기는 것, 학교를 보내 가르치는 것, 씻기고 옷을 입히는 것,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 공감하고 이해해 주는 것, 잘하는 것을 응원하고 칭찬해 주는 것, 위험으로 부터 보호해 주는 것, 하나에서 부터 열까지..


     

결핍을 경험한 아이는 눈치와 함께 일찍 철이 든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목련이 지고 나면 장미가 피고, 봄이 가고 나면 여름이 온다. 거쳐야 할 때를 건너뛴 시간은, 부실한 기초공사 위에 지은 집처럼 언젠가 대가를 치게 된다.  나는  어릴 적 착하다는 소리를 듣던 그때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른 아이로 머무다. 일찍 철들었지만 여전히 나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는, 그때의 일찍 철든 애 철없는 어른으로 퇴행되어 있는 느낌이다. 부했던 기초공사의 대가를 이제 치르고 있는 것일까? 지금도 부족한 어른 철든 아이 사이를 혼란스럽게 오간다.




엄마의 말, 말, 말

    

엄마는 자기애가 강하 이기적이고 외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남의 험담을 즐기기도 했지만  못생긴 딸을 가진 엄마로서 이런 말예사로이 했다.

     

"은숙이 엄마는, 난쟁이 똥자루처럼 키두 작구, 살만 뒤룩뒤룩하니 찌고 저리 못 생겼어두 남편 복은 있어서.. 시집이야 두 번 아니라 세 번 가믄 어떻다니? 사구 싶은 거 다 사구, 하구 싶은 거 다 하구 살믄 장땡이지~"

  

 “나는 지금두 어디 나가믄 이쁘구 곱게 늙었다구 한다. 경우바르구  보통 할머니들 하구 다르다믄서~ 나처럼만 하라구 해라”


“저 의사는 키도 오종종하니 똑 뭣같이 생겨먹었구먼, 그래도 의사 하는 거 보믄 머리는 좋았는가 부다. 세상 참 공평한 게, 저런 사람은 의사 안 했으믄 뭐 해 먹구 살었을까?”  


또 자신의 인생 불행것은 아버지 탓이라고 했다. 혼자 살아갈 능력과 자신이 없어 아버지만 바라보고 살았으면서, 무슨 근거인지 항상 자신은 대단히 잘났다고 믿었다.

     

“나는 지금두 죽은 느이 아부지 생각만 하믄 지긋지긋하니 소름 돋는다. 세상에 느이 아부지같이 능력읍구 맹한 사람이 또 있을라구.. 내가 느이 아부지만 안 만났더라두 세상 보란 듯이 떵떵거리구 살았을 거여~”  

  

무엇이든 자신이 우선이었다. 좋아하는 음식은 엄마 몫을 먼저 챙겨놓곤 했다.   

  

“느이들 입만 입이구, 내 입은 뭐 입이 아니라니? 내가 나 좋아하는 거 먹겠다는디 뭐가 문제라구~ 엄마라구 좋은 건 다 자식한테 양보하라는 법이라두 있다니? 니들 입에 단 사탕이 내 입에 들어오믄 쓴 맛이라두 나는 줄 아는가벼~ ”   


글로 차마 옮길 수 없는 수많은 말 가운데 내게 이런 말도 자주 했다.


"경자 저것두 꼴에 기집애라구 시집은 가것지~ 어떤 놈 하나 신세 조져놓을라구~"


"생긴 것 조차두 어쩌믄 저렇게 정이 안 가는지, 오죽하믄 내가 낳자마자 죽으라고 윗목에 밀쳐놨을까? 쟤는 그때 죽었어야 했어, 살아서 끝끝내 내 속을 썩이느니... 그때 죽었으믄 저나 나나 신세 편했을 건디~"


"내가 씨 못 받을 종자 씨를 받은 거지. 내 잘못이여~ 나 좋다구 씨 못 받을 종자랑 붙어서 저런 걸 낳아버렸으니.. 내가 누굴 탓하것어~"


  




   


후회는 앞 서 오지 않는다. 이미 늦었다. 이제 와서 이런 글을 쓴다고 내가 그때로 돌아갈 수 없고,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엄마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눈물이 나는 누군가에게 엄마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일 수 있다. 이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사랑과 희생의 엄마라는 이름에 주는 면죄부가 있다면 우리 엄마에겐 예외를 두고 싶다. 미워하면서 미안해지는 엄마에 대한 죄책감도 이제 그만 내려놓고 싶다. 엄마라는 이름이 누구에게나 가치 있고, 모든 것을 정당화시키지는 않으니까. 글을 쓰는 지금도 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은 거라고 나를 다독이는 중이다.


나는 단지 어른스럽고 평범한 엄마를 갖고 싶었을 뿐이니까.

그리고 나도 이제 철든 어른으로 늙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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