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맛이 깊어지면 쓴맛이 된다는 걸 아시나요? - Monterosso
지중해를 향해 부리나케 가는 길, 웃음이 배시시 나왔다. 상경한 시골쥐가 이런 마음이었을까. 그저 들뜬 마음이 실실 새어 나와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 그렇게도 내가 들뜬 이유는 그 역사가 꽤 길다. 우선 지중해라는 단어는 여러 번의 반복 입력을 통해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 출처가 학교 수업이건, TV이건 '지중해식' 기후, 요리, 건축 등 들리는 말에 의하면 다양한 문화를 상징하는 왠지 유명한 곳 같았다. 또 암기를 싫어해 학교에서의 역사 시간은 싫어했지만, 그런 문화의 배경에 격렬하고도 풍부한 서사가 있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는 영화와 다큐멘터리, 잡지를 비롯한 미디어가 보여주는 지중해의 이미지는 자극적일 정도로 낭만적이었다.
이처럼 내 인생에서 소문만 무성했던 유니콘 같은 장소를 실제로 본다는데 웃음이 안 나오고 배기겠는가. 이에 더해 바다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의 선호가 한 스푼의 힘과 낭만을 보태었다. 동해, 서해와 제주바다 다수 방문, 남해 1회 방문에 빛나는 나의 이력. 지중해에 방명록을 남기는 것은 개인적인 영광에 가까운 사건이었다. 그런 들뜬 마음치고는 바다를 맞이하는 준비는 굉장히 빈약했지만, 넘치는 열정이 모든 걸 해결해주리라 굳게 믿었다.
그렇게 설레는 만남을 잠시 뒤로 하고 다급하게 찾은 한 상점. 왠지 정감 가는 비주얼 머천다이징을 자랑하는 작은 가게였다. 분명 동해에서 들른 것 같은데... 어쨌든 그곳엔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다. 타월과 수영복과 티셔츠를 포함한 의류, 심지어는 편한 샌들까지. 가장 시급한 사안이었던 대형 타월을 허겁지겁 유로와 바꾸었다. 그 재질이 두툼하고 사용하기에 충분한 크기였을 뿐만 아니라, 방문한 친퀘테레의 풍경화가 그려져 있어 기념품 또한 겸하는 아주 효율적이고 모든 이해관계자가 만족하는 거래였다. 거래를 흡족하게 마치고는 옷을 갈아입고 소중한 핸드폰과 카메라를 보관할 수 있는 곳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시설은 유료였다. 역에 있는 화장실마저도 동전을 찾아 지불해야 하는 이탈리아답게 - 다른 글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겠지만 - 타월에 이어서 나는 정당한 값어치를 지불하고서야 귀중품을 맡기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물론 코앞으로 다가온 설레는 첫 만남 앞에서는 푼돈으로 느껴졌지만 말이다. 사실 이때부터는 핸드폰도, 카메라도 없었지만 기록 따위는 생각조차 안 나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중해를 즐겼다. 웃음과, 바다와, 해수면에 비친 노을빛만 존재했던 시간.
바다처럼 깊은 만족감, 그리고 마르지 않았던 웃음 말고도 인상적인 것이 또 있었다. 바로 지중해의 맛이었다. 그렇게 짠 것은 평생 처음 먹어봤다. 감사하게도 우리 어머니의 요리 솜씨가 훌륭했기에 모르고 살아왔던 그 높은 수준의 짠맛은 정말 아찔한 경험이었다. 만약 물속에서의 시간이 그 정도로 즐겁지 않았다면 눈, 코, 입으로 느낀 염분과 아린 감각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 같다. 한국의 바다에 비해 과하게 소금 간을 한 나머지 결국엔 쓴맛이 느껴질 정도였다.
짜디짠 나머지 눈을 찌푸릴 만큼 쓰지만, 한편 펼쳐진 지중해와 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미소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아린 피부 정도야 물장구와 즐거운 웃음으로 잊게 되는 그 바다는 달콤 쌉싸름한 우리의 인생과 닮았다. 어쩌면 우리는 불확실성과 노화, 질병, 그리고 이별의 바다에 몸을 담그고 서로의 눈을 보며 웃음 지으며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중해가 가르쳐준 삶의 모습은 씁쓸한 허무주의보다는 삶의 아름다움과 의미가 주는 단맛에 무게중심이 기울어 있는, 분명히 바람직하고 추구할 만한 모습이었다.
쓰디쓴 소주 한 잔으로 아픔을 털어내는 것은 우리 사회의 클리셰이지만, 소주 향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쌉쌀한 지중해로 여러 가지 잡념을 씻어내는 것도 훌륭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소주를 털어 넘기는 포장마차와 사뭇 다른 금액의, 환율이 적용된 영수증이 청구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몬테로소에 멋들어진 숙소를 잡고, 그 앞 모래사장에서 발리볼을 하는 꿈을 꾸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짜이다. 그렇게 마음에 곱게 담아두면 언젠가 그 모래를 밟고 있지 않을까? 그날 마음이 뻥 뚫리도록 푸른 지중해 앞에 나도 모르게 서있었던 것처럼, 계산서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채 말이다.
P.S. 파스타 삶을 때 바닷물처럼 물의 염도를 맞추라는데, 동해 맛보다 두 배 넣어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