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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vbe 글롭 Jun 26. 2022

시간은 그렇게 내 곁을 흐른다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그 이름들, 완벽주의와 시간 

    오늘도 시간은 흐른다. 흔한 똑딱 소리마저 없이 고요하게, 하지만 무참히. 


    언제부터였을까.


    어린 나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 손으로 오물조물 완성한 레고 자동차. 스티커로 장식을 하는 순간이 오면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작업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걱정에 휩싸였다. 이 작은 스티커가 이쁘지 않게 붙으면 어쩌지. 전전긍긍했다. 꼼지락꼼지락 스티커를 만지다 보면 즐거운 놀이보다는 나만의 사투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힘겹게 붙인 스티커. 약간은 틀어진 축이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성장하면서 스스로의 완벽주의적 욕망을 크게 인식한 적은 없다.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러한 마음이나 불안을 정의할 단어가 없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그 시절을 돌아보면, 그 들불을 은폐한 범인은 불안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완벽주의로 인한 불안이 억누르는 완벽주의라니, 역설이 아닐 수가 없다. 


    그렇지만 과거를 찬찬히 추적해보면 역설 끝 닿아있는 진실을 마주한다. 우선 무언가 그리기를 좋아했던 나는 색칠하기를 꺼려했다. 스케치는 지우개로 되돌리기 쉬웠지만, 색깔은 종이를 끌어안아 놓아주지 않았다. 덧칠한 물은 색보다는 종이를 짓이겨놓았다. 매끈했던 배경이 일어난 것을 보며, 나는 아마 아파했던 것 같다. 


    학창 시절의 한 축이 되는 시험은 더욱 확실한 증거다. 시험을 앞두고 나는 좋은 결과를 얻으리라 다짐을 하고는, 연필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시험 직전이 되기까지. 공부나 다른 할 일을 미루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지만, 그 강도는 분명 부자연스러웠다. 대학 시절에는 시험 당일, 즉 새벽이 되기까지 미루기는 일쑤였으며 심지어는 밤을 새우고 한 시간 전부터 공부를 시작한 경우도 있다. 


    꾹 누른 용수철이 높이 뛰어오르듯이, 불안으로 누른 나의 의식은 의미심장하게도 항상 나쁘지 않은 성적을 가져왔고, 이는 나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쓸모없이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할 만큼의 이상함. 하지만 실제로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던 사실은 따로 있었다. 이런 원인과 결과의 이면에서 나의 습관은, 무의식은 철저히 그 사례들을 먹어치우며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완벽한 결과를 마음에 그리고는, 그 압도감에 옴짝달싹 못하는 모습은 또다시 다른 완벽을 그리게끔 만들었다.


Passing By / 2022.06.26 ©

    그 누구든 스스로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면을 발견하면 고통을 겪는다. 그 끝에 깨달음이 있다 할지라도 그 터널은 꽤나 어둡다. 나는 그 길을 지나오기 위해 무언가를 애써 대충 했던 것 같다. 애써서 대충하는 역설이 또 일어난다. 마음속에 박힌 완벽이 너무 아파서 어설프게 덮어 가리고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대충 한다고 둘러대는 것이다. 그 대충은 나에게도 남에게도 그렇게 보였지만, 실제로 마음은 매우 긴장되어 있었음을 이제는 안다. 완벽주의자도 아닌, 대충 사는 베짱이도 아닌 슬픈 자화상.


    반면 요즘의 나는 마음이 무척이나 가볍다. 예전의 내 모습과 기분을 되돌이켜 보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할 만큼. 이제는 안다. 어린 나는 시간 위에 살았다, 아니 그 위를 기거나 뛰었다. 나는 알 수 없는 존재가 정해놓은 시간을 성실하게 걸어가야만 하는 노역자였다. 미래에 완벽을 두고, 과거에는 실패를 두고는 그 사이를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그러니 자리에 차분히 앉아 색을 칠하거나 공부를 할 여유는 전혀 없었다.


    요즘은 시간이 나를 스쳐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간은 나를 스쳐, 시야 너머 흔적만 남긴 채로 사라진다. 시간이 사건의 중심인 세상에서의 어린 나는 수동적이었다. 능동성의 이름으로 미래와 과거 사이를 발에 불이 나도록 뛰었지만, 잠깐의 휴식시간엔 공허함이 찾아왔다. 한편 지금은 여유롭게 걷는 나를 중심으로 시간이, 과학적인 이름으로는 사건들이 내 주변을 불나게 뛰어다닌다. 아직은 빠르게 움직이는 불빛에 눈을 뺏기기도 하지만, 걷고 있는 발에 다시금 눈을 두려 노력한다.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오늘도 그렇게 나는 걷는다. 정성껏 한 걸음씩. 대충도, 완벽도 아닌 그 걸음을 지금도 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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