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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vbe 글롭 Jul 09. 2022

밥갱스터의 간헐적 단식 일지 23日

애증의 탄수화물과 친구 먹다.

    지난 일지에서 나는 면에 대한 사랑을 울부짖었다. 그에 따라 간단히 유추되는 사실. 그렇다. 나는 탄수화물을 무진장 사랑한다. 면이 그 사랑의 꼭대기를 장식하고 있을 뿐, 밥과 빵을 비롯하여 고구마, 옥수수와 같은 작물들까지. 그들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그들의 고유한 매력은 꼭 선을 넘고 만다. 면 사리, 떡 사리, 고구마 사리, 볶음밥, 후식 냉면까지. 닭갈비를 비롯한 주인공의 따귀를 때리는 그들의 행태는 씬 스틸러가 아닐 수 없다.


    그 마력의 출처는 어디일까. '맛있다'는 언제나 정답이겠지만, 그 중독성은 분명 비밀을 숨기고 있다. 아마도 인류의 긴긴 역사에서의 피드백이 우선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또 몸 안에서의 대사작용의 용이성도 한몫할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 세 가지 요인은 별개가 아닌 한 몸이어서, 서로를 강화하며 탄수화물을 더더욱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만들어왔다. 그리고 농업의 발전과 더불어 경제 수준의 상승, 식문화의 발달은 우리 세상에 탄수화물을 폭발적으로 범람하게 만들었다. 


    나, 그리고 우리는 그 범람의 수혜자이자 피해자이다. 탄수화물에 탄수화물을 얹어 탄수화물을 뿌려 먹고는, 탄수화물을 마시고 탄수화물을 입가심하는 천국의 주민이자, 동시에 호르몬 범벅이 된 몸을 가누기 어려워하는 지옥의 수감자이기도 하다. 축복과 구원을 동시에 기다리며 먹킷 리스트를 펜이 휘어지도록 작성해나간다. 탄수화물이 주는 즐거움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함께 지워지는 책임을 증오한다. 

Brokenhearted Crop Pal / 2022.07.07 ©

    간헐적 단식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애증의 탈출구가 되어주었다. 지나친 사랑의 열기를 식혀 마음의 여유를 선물했다. 인슐린을 비롯한 호르몬이 안정되며, 몸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도록 해방해주었다.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마음이나 먹는 즐거움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먹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라졌다. 즉, 몸의 건강에 앞서서 마음의 건강이 먼저 찾아왔다. 즐거운 일이다. 


    하나의 실험 같은 프로젝트였지만,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도 나는 알 수 있다. 내가 이 끝에 얻어갈 것이 체중 감량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 경험과 데이터를 쌓아나가다 보면 내가 겪은 것과 같은 괴로움을 덜어낼 사람을 하나 둘 더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자격은 누군가 나에게 부여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당분간은 돌팔이 같은 연구에 집중할 의향이 충분하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단순당 노예 해방에 헌신하리라.


   >>> 7월 9일, 간헐적 단식 스물 셋째 날의 체중 증감: (상당해) -4.1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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