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dman Dec 20. 2020

자유주의적인, 제국주의적인

더 데이 더 얼스 스투드 스틸 (1951)

제목: 지구가 멈춘 날(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1951)

감독: 로버트 와이즈     


1950년대는 핵 공포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1945년 8월 6일과 9일 첫 모습을 드러낸 핵무기는 파괴력 면에서 종래의 그 어느 폭탄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이 무기의 개발은 전 지구적 절멸을 사람들로 하여금 내재화할 수 있게 하였다. 핵폭탄은 잠재적으로 온 지구를 쓸어버릴 수 있는 무기다. 1950년대 SF 영화이다. 핵무기 공포의 시대에 SF의 가장 핵심은 인류 전체의 파멸이라는 상황을 포착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SF의 전성기였던 50~60년대에 등장한 <더 데이 더 얼스 스투드 스틸>은 핵 시대에 핵에 어떻게 반응하고 ‘지구인’ 관념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보여주는 텍스트다.     


<더 데이 더 얼스 스투드 스틸>은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영구 보존 작품으로 지정할 정도로 미국에서 높은 위상을 차지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매카시즘의 광풍이 미국을 휩쓸던 시기에 자유주의자 영화인들이 매카시즘에 저항하며 제작하였고, 그들의 정신이 이 영화를 자유주의의 고전으로 만들었다.      


어느날 미국의 도시 한복판에 UFO가 착륙한다. 지구상의 모든 무기가 통하지 않는 압도적 무력을 지닌 로봇경찰을 대동하고 지구에 온 우주 경찰 클라투. 지구에서 끊임없는 군비 경쟁으로 핵을 개발하여 언젠가 우주 전체의 평화를 위협할 수도 있는 사태를 방지하고자 그는 지구에 왔다. 그는 미국의 정치인들에게 시종일관 “나는 당신들의 어리석음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전 세계의 대표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목적을 전달하고 싶었지만, 실패하자 과학자를 찾아가 자신의 목적을 이룬다. 지구의 전기를 일순 끊어버릴 정도의 압도적 무력을 발휘하여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되게 한 뒤, 그는 지구의 대표들에게 우주의 평화에 동참하든지, 계속 어리석은 군비 경쟁을 하다 자신에 의해 멸망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말한다. 이런 면만 보면, 이 영화는 군비 경쟁이 초래할 지구적 위기에 대한 진지한 조언이다.      


클라투는 매우 전형적인 메시아 내러티브를 따른 캐릭터다. 그는 기적과도 같은 능력으로 사람들을 압도시키고, 전 세계의 에너지를 일순 정지시킬 수 있는 압도적 힘을 가졌다. 그가 평범한 가정 집에 숨어들면서 썼던 이름은 존 카펜터, 목수 요한 예수의 아버지를 가리킨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그는 예수처럼 죽었다 부활하고, 그의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예수가 승천하듯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승천한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매우 노골적인 메시아의 상징을 띤 외계인의 외적인 형상이 앵글로색슨 남성이라는 사실이다.     


지구와 미국을 동시에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미국과 지구라는 두 가지 공간적 위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영화를 지구적 차원에서 이해하면, 지구 바깥에서 온 외계인 메시아의 관점에서 지구인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경고라고 일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같은 메시지를 미국적 수준에서 보자면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클라투가 대동한 로봇은 우주경찰이라고 나온다. 이 절대적 힘을 가진 우주경찰은 지구의 ‘내전’을 안정시키기 위해 우주로부터 지구에 왔다. 그는 ‘어리석은’ 지구의 지도자들과 달리 매우 공명정대한 관점에서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때 로봇을 통하여 우주의 평화를 지키는 앵글로색슨 남성의 형상은 세계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의 역할과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미국이 세계경찰로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 최초의 전쟁이 한국전쟁이다. 한국전쟁에서 미군은 미군의 이름이 아니라 UN군의 이름으로 참전하였다. 그러나 UN군의 절대적인 숫자를 차지하는 군이 미군이며 UN군의 사령부는 미군 사령부이다. 전쟁 수행 과정에서 미국과 미군이 사실상 UN군을 주도한 것이다. 초국가적 거중 조정 단체로서 설립된 UN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국가가 미국이라는 사실은 상당히 시사적이다.


트루먼에 따르면, 미국은 전쟁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엔하에서의 질서 유지 행위, 정확하게 말하면 폴리스 액션을 취하고 있다. 즉 치안행위였다는 것이다. 치안 유지를 ‘국가 내부에서 벌어지는, 국가의 안녕을 위해서 그 안에 존재하는 다툼을 조정하는 행위’로 정의 내릴 때, 자신들은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는 트루먼의 언설은, 미국이 UN을 전유하여 전지구적 결정권자와 경찰국가로 스스로를 새롭게 정의하는 과정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전쟁은 그러한 세계경찰 미국으로의 치환이 최초로 드러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세계경찰은 무엇을 하는가? 그는 지구 내부의 모든 전쟁을 ‘내전화’하고 이 내전에 개입한다. 마치 지구 외부적 우주 경찰이 지구의 모든 전쟁을 ‘지구적 내전’으로 치부하는 것처럼.


나는 앞에서 1950년대는 핵 공포의 시대였다고 말했다. 세계경찰 미국의 위상은 핵무기를 통하여 확보된다. 1949년에 소련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미국의 핵에 대한 독점적 지위는 깨졌으나, 여전히 압도적 핵 우위는 가지고 있다. 이는 다시 클라투와 우주경찰 고트의 위상과 정확하게 겹친다. 백인 남성의 형상을 한 메시아와 그가 보유한 절대적인 무력은 미국으로 전이됨으로써 영화는 핵이라는 파멸적 무기를 유일하게 관리할 수 있는 경찰국가 미국의 형상을 형성해낸다. 이 순간에 핵은 제국적 폭탄으로서 등장한다. 이리하여 지구의 메시아 미국은 지구 외부적 관점에서 지구를 상대화하는 공명정대한 경찰이 됨과 동시에 핵을 통하여 그 지위를 유지한다. 그러나 경찰국가 미국의 형상은 곧 제국의 형상이다.


매카시즘이라는 광풍에 저항하여 군비 경쟁이 초래할 지구적 위기를 경고하는 자유주의 영화의 고전인 이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제국주의 패권국(=경찰국가)로서 자신을 형성해가는 미국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참고 자료: 이영재, 1950년대 미국과 일본의 괴수영화와 핵 - 지구, 블록, 국가의 착종 -


작가의 이전글 공간이 만든 공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