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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man Dec 20. 2020

공간이 만든 공간

유현준, 공간이 만든 공간, 을유문화사, 2020


건축과 관련하여 인상적인 저서들을 연속해서 발표했던 유현준은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발생하고, 서로 다른 생각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융합되고 어떻게 생각의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는지 추리"하기 위해 <공간이 만든 공간>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그는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이 왜 다른가를 그 지리적 배경, 다른 말로 공간적 배경을 통해서 파악한다. 빙하기 이후 서로 다른 기후가 형성된 된 두 지역은 집약적 농업인 벼농사를 주로 짓느냐, 혹은 밀농사를 빗느냐에 따라 다른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이 건축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의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서양의 법칙은 상황과 관계없이 절대적인 명제를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서 동양은 집단의식이 강하고 ‘중용’ 같은 상대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동양에서는 경우에 따라서 행동에 대한 가치가 결정 난다. 두 문화권은 건축 공간을 대하는 방식도 다르다. 서양의 건축은 벽 중심의 건축을 하면서 내부와 외부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공간의 성격을 갖는 반면, 동양은 기둥 중심의 건축을 하면서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한 성격의 공간을 갖는다. 서양의 법칙은 상황과 관계없이 절대적인 명제를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서 동양은 집단의식이 강하고 ‘중용’ 같은 상대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동양에서는 경우에 따라서 행동에 대한 가치가 결정 난다. 두 문화권은 건축 공간을 대하는 방식도 다르다. 서양의 건축은 벽 중심의 건축을 하면서 내부와 외부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공간의 성격을 갖는 반면, 동양은 기둥 중심의 건축을 하면서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한 성격의 공간을 갖는다. (56p)"


어떤 공간에 사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진다. 서로 다른 두 공간에서 두 생각과 문화가 나왔고, 이 두 문화가 융합하면서 새로운 생각과 문화가 탄생한다. 6장 '동양을 닮아 가는 서양의 공간'에서 저자가 자세히 다루는 현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와 마스 반 데어 로에는 동양식 사유에 영향을 받아 이를 자신들의 건축에 적용한 사례이다. 그리고 7장 '공간의 이종 교배 2세대'에서 나오는 안도 타다오와 루이스 칸은 문화 융합의 또 다른 사례다. 루이스 칸은 "현대식 건축 기술을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서양 전통 건축, 도가 사상, 유대 민족 문화까지 자신이 접할 수 있는 모든 문화적 유전자를 섞어서 융시킨 건축가였다."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은 융합을 보여준 것이다. 안도 타다오는 "서양의 기하학과 동양의 상대적 관계성을 융합"시켜 '바람의 교회' 같은 건축물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이를 요약하면, 새로운 생각은 다른 공간과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과거의 전통과의 접촉을 통해, 그리고 전혀 다른 문화를 종합시킬 때 나올 수 있다. 건축의 사례에서 보자면,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도 새로운 생각이 나올 수 있다. 현재에는 이조차 부족하여 다른 학문 분야와의 융합을 통하여 창조적 아이디어를 얻으려 하는 시도도 있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권인 공간에 인터넷 공간이 새롭게 추가될 것이고, 향후에는 해저 공간과 우주 공간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은 코로나 19로 인하여 공간에 커다란 변화가 생긴 해이다. 코로나는 일상을 변화시켰고, 일상의 변화는 공간을 재구성한다. 가장 단적인 예시는 권력의 해체와 재배치이다. 모임을 통하여 믿음과 권력을 강화시킨 기독교는 위기를 맞았고, 반대로 유투브나 넷플릭스 등의 플랫폼은 부상하였다. 어쩌면 우리는 공간의 재구성과 그로 인한 권력의 재배치가 이루어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것은 긍정적일 수 있고, 부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흑사병과 전쟁 등으로 인해 중세 사회가 무너지자 대학은 더 이상 어떠한 새로운 사상도 낳을 수 없게 되고 신비주의로 도피했던 것처럼, 코로나 시기 속에서 어떠한 융합도, 어떠한 새로운 것도 거부한다면, 부정적인 결과로 귀결됨은 당연할 것이다.



여담. 이분의 균형 감각이 참 대단한 것 같다. 이 책은 건축과 지리를 중심으로 동서양 문명과 철학, 역사를 서술한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자는 자신의 해석을 절대적으로 주장하지 않으며 충분히 틀릴 수 있고 다른 해석도 가능함을 인정한다. 이전에 읽은 루이스 다트넬의 <오리진>은 지리적 영향력을 너무 강조하여 지리결정론적 입장을 보여준 데 비해 겸손함과 균형감각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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