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사과의 맛이 난다 EP.8_창작자 선언
하나의 유령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창작이라는 유령이.
나는 예술이 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브런치에 예술을 고민하는 글을 메거진으로 기고했다. 그런데 글을 쓰면 쓸수록 나는 예술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예술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하고 싶은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늘 예술이 무엇인지, 내가 예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예술을 멀리했다. 나는 예술가들을 바라보면서 말하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어야겠다 생각해 왔다.
저번 주말, 실무를 하고 있는 제품 디자이너를 만난 자리가 있었다. 나는 아직 학생이라 디자인계에 들어가 보지 않았지만, 궁금한 점들이 많아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러다 문득 예술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없어서, 예술을 할 수 없다’고 말하자, 그분은 이렇게 답했다. “지혁 님은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계신 거예요. 지금은 날카롭게 갈아내고 있는 시기인 거죠.”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너무 말을 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완벽하게 갈아내기 위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구나.’
그렇게 예술을 위해 나의 생각을 더 갈아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한 아티스트를 만났는데, 그분이 이렇게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없다고 말을 하고 계시잖아요. 그 과정도, 그리고 그 말도 표현하니까 예술이 아닐까요?” 그리고는 내가 예술을 할 사람이라고, 나만의 색감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그 말을 되새기며 생각해 보았다. 이 길을 계속 가다 보면 언젠가는 완벽하게 갈아낼 수 있겠지. 그렇지만, 그 과정은 완벽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죽을 때까지 완벽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완벽을 향해가는 그 과정도 예술의 표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스케치와 목업은 결과물이 될 수 없다 생각했다. 이건 예술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습작’이라는 예쁜 단어가 있었다. 과정도 예술인 것이다. 과정도 내 표현이라고 말하면 예술인 것이다. 예술이라는 것은 예술가가 이름을 붙이면 생명력을 얻는다고 생각해 왔는데, 왜 나는 내가 만든 습작을 예술이라 부르지 않았을까.
아마 완벽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또 완벽주의다. 사실 나는 표현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너무 많은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서 갈아내고 있었다. 나는 완벽하게 말하고 싶어 했고, 그 때문에 어떤 말도 내뱉지 못한 채 입을 닫고 있었다. 내가 예술을 하고 싶으면서도 완벽하지 않다는 두려움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기에 작업 중인 습작들은 예술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생각 때문에 항상 완벽한 표현을 찾으려 했고, 완벽하지 않으면 보여주기 싫었고, 결국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끝을 냈다. 사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시도라는 예술이 있는데 그걸 왜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마음을 바꿨다. 이제는 시도해 보자고 결심했다. 예술이 무엇인지, 내가 예술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 경험해 보고, 고민하고, 고심해 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나에게 고민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 그 아티스트는 자신의 작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가 작곡하고 노래하는 모습이 고민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만들어내는 과정에서도 예술이 탄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그 작품이 완벽하지 않았나? 그건 아니었다. 그 사람의 완벽이 느껴졌고, 그 사람만의 디테일이 전해졌다. 완벽이라는 객관적인 단어는 실현할 수 없지만, 자신이 생각한 완벽을 표현해 낸다면 그걸로 충분히 완벽한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 아티스트가 예술을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고, 나도 이제 시도를 두려워하지 말고, 예술을 해보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완벽을 만들어보자고, 내 눈에 완벽하면 그건 그대로 완벽해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나는 예술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 너무 무겁게 생각했음을 반성했다. 시도와 행동이 곧 예술이라는 사실을 그 아티스트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내가 하는 고민을 예술로 표현해보고자 한다.
나는 예술을 할 것이고, 창작을 할 것이다.
내가 창작을 함으로써 잃을 것은 안정이지만, 얻을 것은 세상의 모든 감각과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