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사과의 맛이 난다 EP.11_ 사랑, 두 번째. 욕망
넓은 의미에서 사랑에 대해서 고민했다. 관계의 관점에서 사랑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행위라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상대를 이해하고, 고민하는 것은 고통을 수반하는 행위이고, 꾸준함을 요구하는 행동인데,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 행동을 끝까지 지탱할 수 있도록 도울까?
아니 그보다 근본적으로 사랑이 감정일까?
사랑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상대를 이해하는 행동이다. 그러면 그 사랑은 왜 작동할까? 사랑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욕망이 필요하다.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 이건 개인마다 다를 것 같다. 본인의 결함을 채우기 위해서 작동하는 근원적인 욕망일수도 있고, 사랑을 하면서 변해가는 가변적인 욕망일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사랑이라는 것은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지금껏 부정해왔지만, 나는 섹스하고자 하는 욕망이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저 몸을 섞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보다 더 본질적으로 나는 섹스를 하고 싶다. 이 문장만 보면 좀 이상하니까 아래 설명도 읽어주기를 바란다...ㅎㅎ
섹스라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가장 깊은 나를 보여주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피스톤질과, 쾌락의 환희, 그리고 자손 번식을 넘어서는 (어쩌면 호르몬의 장난일수도 있지만) 끈끈해지는 감정이 좋다. 몸이 맞닿으면서 느껴지는 부드러움과, 온기가 좋다. 그저 서로 안고 있어도 느껴질 수 있는 상대의 심장소리와 떨림이 좋다. 내가 상대를 안고 있는 그 순간에는 세상이 참 잔잔하고 조용하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을 좋아하는 것 같다. 미친 몰입의 순간이라고 할까... 그렇기에 그 상황에 놓이고 싶어하는 욕구가 나에게는 성욕이고 섹스를 하고 싶어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벌거벗었다는 점이 좋다. 가면이나 치장을 하지 않은 온전한 나 자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아무리 예쁘고, 잘생겨도, 사람은 결함을 가지고 있다. 보이고 싶지 않은 결함들을 모두 꺼내보여도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그정도의 깊은 관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 가장 근본의 감정을 경험하기 위해, 그리고 욕망하고 있기에 섹스는 깊은 단계의 사랑이다.
나는 섹스하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 사랑하고 싶은 것일까?
상대를 느끼는 그 순간에는 적어도 그 사람과 정말 연결되어있다고 느낀다. 깊은 연결이 왜 좋은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그런 몰입도 높은 순간이 너무나도 좋아서 자꾸 찾는 것 같다. 상대와 내가 이루는 깊은 몰입도는 섹스를 하고자 하는 욕망을 타오르게 하고, 같은 이유에서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려는 행동들도 하는 것 같다. 내가 그 사람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 하고, 그 사람의 생각과 언어로 말을 하려는 이유는 그 사람과 내가 연결되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깊은 연결로, 그 사람과 내가 동기화되는 느낌이랄까. 그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도 나의 존재가 실감이 나는 경험은 정말 짜릿하기에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사실 섹스에 대한 긴 글을 쓰고 싶었다. 논의를 해보고도 싶었고, 담론의 장을 계속해서 만들고도 싶었다. 그런데 내가 섹스에 대해서 깊은 견해를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걸 고민하다가 글을 늦게 올린 것도 있다. 이 글을 통해서 내가 무지한 부분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적어도, 사랑이라는 것이 감정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섹스가 나의 원동력이 되어올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사랑은 섹스다. 욕망이면서 연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