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 중요한지를 잃어버리는 순간, 중요한 것은 사라진다.
오늘 이별을 했다. 오래 만나지는 않았지만, 분명 많이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이었다. 새벽에 이별을 맞이하고, 당일 아침 나는 어김없이 작업을 하러 갔다. 먹먹한 마음을 가지고. 작업대 앞에 앉아 앞에 놓여있는 일들을 차례로 쳐냈지만, 마음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왜 이별을 하게 되었을까. 내가 더 바라보지 못했던 순간들, 힘을 다 쓰고 기운이 빠진 채로 만난 탓에 흘려보낸 대화들, 돌이켜보니 그 작은 무심함들이 결국 이별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돌아와서도 계속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하는 척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무심하게 손만 놀리고 있었다.
불과 지난주, 나는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심장 수술을 받기 위해 아산 병원으로 갔지만,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그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작은 알럿을 본 기억이 있다. ‘디스크 공간 부족’이라는 메시지였다. 그 순간은 그저 병원 시스템 관리가 허술하구나 하고 웃어넘겼는데, 시간이 지나 곱씹어 보니 그것은 다른 의미를 담고 있었다.
병원은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 뜰지 모르는 작은 알럿을 해결하기 위해 인력을 쓰기보다는, 환자의 안전을 지키는 도우미 한 명을 더 세우는 것이 더 본질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럿은 화면에 남겨두어도 괜찮지만, 환자의 낙상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사소한 문제와 본질적인 문제는 겉보기엔 극명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언제나 헷갈린다.
나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사랑과 커리어 사이에서도 나는 결국 커리어를 택했다.
작업을 위해 시간을 빼고, 체력을 다 쏟아냈다. 남은 저녁 시간에는 그 사람을 바라보기보다는 영화를 틀고 게임을 켜며 생각을 닫아버렸다. 그렇게 나의 삶에서 중요한 균형은 무너져 갔다.
이별 당일에도 나는 작업을 하러 나갔다. 그만큼 나에게 일과 웨이스튜디오, 커리어는 삶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어쩌면 내가 붙잡고 있던 이 일은, 아산병원 엘리베이터 화면에 남아 있던 작은 알럿에 불과한 건 아닐까.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내 곁에 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나는 여전히 묻는다.
나라는 존재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고 싶은가.
무언가를 시도하고, 부딪히고,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나는 창업과 작업, 그리고 예술을 사랑한다. 동시에, 안정적인 관계 속에서 신뢰를 쌓고 작은 마을 같은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는 나도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균형을 나는 끝내 맞추지 못했다. 그래서 알럿이라 생각했던 일이 결국 엘리베이터를 멈추게 만들었다. 멈춰 선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한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에만 집중했더라면, 이렇게 균형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벌려놓지 않고, 정말 중요한 것만 붙잡았다면 나는 여전히 도전과 관계, 두 가지 모두를 품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별은 아프지만, 그 아픔 속에서 나는 하나를 배운다. 작은 알럿에 매달리느라 정작 본질을 놓치지 않도록, 이제는 살아야 한다는 것. 나의 삶에서 지켜야 할 ‘낙상 방지’가 무엇인지 묻고, 거기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것.
오늘의 이별은 나에게 분명히 말하고 있다.
너의 알럿은 무엇이며, 너의 본질은 무엇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