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시간, 나는 배가 아파 체육을 빠진다고 하고, 교실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어차피 체육 해봤자 피구만 주구장창 할게 뻔해서 체육을 빠졌다. 나는 교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아무도 없는 고요한 교실과는 달리,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제스처, 그리고 2층 교실까지 들려오는 웃음소리 같은 것들이 들려왔다. 나는 화장실이라도 다녀올까 싶어, 교실을 나서려 하는 순간, 내 발 밑으로 책상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유지현의 다이어리가 툭 떨어졌다. 난 그 다이어리를 집어 펼쳐보았다. 이러면 안 될 거 알지만, 그냥 호기심이 펼쳐보았다. 맨 첫 장부터 펼친 일기의 내용은 이랬다.
‘오늘은 좀 다른 곳에 일기를 쓴다. 지금 내가 일기를 쓰고 있는 다이어리는 오늘 김 연과 같이 문방구에 가 맞춘 다이어리인데, 표지가 내 취향이라 마음에 든다. 오랜만에 간 초등학교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우리 때는 막 공사도 하고 건물을 새로 짓는다 뭐다 했었는데, 오랜만에 학교를 가니 공사가 끝나 학교가 좀 더 바뀌어져 있었다. 우리 때부터 해줬으면 좀 좋았을까. 아무튼, 이제 일기는 이 다이어리에 기록을 할 것 같다. 원래 쓰던 일기장은 내 서랍에 잠시 넣어두었다가 이 다이어리를 다 쓰면 다시 꺼내서 쓸 계획이다. 계획이랍시곤 10분 전에 정한 거지만. 그래도 김 연과 같이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가는 거 같아서 좋다.’
맨 첫 장의 일기를 다 읽고 계속 다이어리를 넘기며 일기를 읽었다. 그러다 최근 몇일 전에 쓴 일기를 발견했다.
‘어제 연과의 추억을 지우려 내 방에 붙어있던 김연과 찍은 사진들을 모조리 떼어버렸다. 뗀 이유는 간단하다. 계속해서 김연이 생각나서. 걔는 나 없이도 잘 지내고 있는 거 같은데 나는 그 아이를 자꾸 못 잊겠다. 왜 이럴까, 그 아이는 내 말 하나 안 들어보고 떠났는데. 난 김연 SNS에 그런 댓글을 단 적도 없고, 오히려 김연이 나를 뒷담 깠다 하는데. 내 말 하나 안 들어보고 떠난 김연이 너무나 밉다. 학교에서는 애들의 따가운 눈초리만 쉴 새 없이 받고 있다. 오늘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와 내가 읽고 있던 책을 덮어버리고 말했다. 김연한테 그렇게 모질게 해 놓고 너는 책이나 읽고 있냐며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 애들은 나를 비웃고 경멸한다. 처음에는 무시하자라는 마인드였는데 점점 버티기가 힘들어져 간다.’
그 일기를 읽고 한참 동안 다이어리를 붙잡고 있었다. 내가 유지현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아는 체 하지 말자고 한 게 유지현에게는 큰 상처였구나. 나도 모르게 감정이 벅차 올라서 그렇게 말했구나. 나였어도 너무나 상처받았을 거 같은데. 유지현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당장이라도 사과하고 싶었다. 이렇게나 유지현이 힘들 줄은 몰랐다. 무릎 꿇고 유지현에게 빌어도 유지현은 받아주지 않을 거 같다. 내가 너무나 큰 죄를 저버렸으니까.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새겨버렸으니까. 내가 그 상황이라면 버티지도 못했을 거 같은데. 그 여린 몸으로 혼자 이 모든 상황을 견뎌내고 있다는 거에 감탄하면서도 미안했다. 머릿속엔 유지현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만이 가득 차있었다. 계속 미안했다. 어떻게 유지현에게 사과를 할까, 유지현이 내 사과를 받아주기나 할까 라는 생각들을 하며 다이어리를 덮었다. (12.13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