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고생 많았수다
앞선 9화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저는 재수해서 대구에 있는 K대학에 입학했고, 1년 다니다가 군입대를 했습니다. 물론 K대학을 자퇴하듯이 휴학하고 군 입대를 할 때는 약간의 즉흥적인 생각과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습니다. 어찌되었든 87년 9월 논산 제2훈련소로 입대를 했다. 그리고 90년 2월 동두천 00부대를 만기 제대했다.
제대후 3수를 거쳐 부산에 있는 국립대학인 P대학을 또 다시 1학년으로 입학했다. 이번에는 고등고시 시험 종류를 변경했다. 왜냐하면 대구의 K대학을 다니면서 외무고시를 준비했었는데 전공인 불어과목이 너무 어려워 도저히 외무고시 합격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91년 부산의 P대학에서는 행정학을 전공하다 보니 자연스레 행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군대도 갔다왔고,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학년 입학하자 마자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P대학은 대학측에서 고시 공부하는 학생을 위한 전용 기숙사 00재를 운영했다. 00재는 학생회관 위쪽 한적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00재 입사 자체의 경쟁률이 대단했다. 00재의 단점은 식당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용해서 공부하기는 좋았지만, 식사 제공이 되지 않아 불편했다.
그렇게 1학년을 보내고 본격적인 고시공부를 위해 2학년은 휴학했다. 그리고 서울 신림동에 있는 고시원으로 이불 보따리를 옮겼다. 0탑 고시원에서 생활하면서 근처 고시학원에 다녔다. 2개월 정도 고시원에서 있었는데 그때는 미친듯이 공부했다.
학원 강의를 듣고, 고시원에 와서 새벽까지 공부를 했다. 이러다가는 고시공부를 시작한 첫해 그리고 재학시절에 합격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제대로 쉬지 않고, 먹지도 못한 상태에서 너무 무리한 탓에 서서히 체력이 고갈되었고, 나중에는 수면부족으로 인한 두통이 지속되었다.
결국 행정고시를 1개월여 앞둔 시점에 고향집으로 낙향했다. 몸도 좋지 않았고, 글자만 보면 머리가 아픈 증상이 있어서 시험칠때까지 마무리 공부를 할 수 없었다.
대신에 1개월 동안은 수양차원에서 낚시를 주로 다녔다. 여동생과 밤낚시도 다니고, 가끔씩 등산을 하며 보냈다. 그래도 시험에 대한 불안은 없었다. 어차피 예의상 시험만 한번 쳐보고 고시공부를 접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어릴때부터 그렇게 오랫동안 고시에 대한 애착과 출세욕이 있었지만, 현실적인 능력의 한계와 체력적인 문제로 인해 이 모든 것을 접기로 했다. 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보았기에 후회는 없었다.
막상 결정하고 나니 후련했다. 칠흑같이 어둡고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나의 외길 고시인생이 끝이 났다. 아무도 떠민 사람도 없었고, 아무도 그만 두라는 사람도 없었지만, 스스로 그만 두었다. 아직 많이 남은 내 푸른 청춘과 여생을 위해 특단의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 잘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2학년에 복학을 했다. 이젠 열심히 학점도 따고 해서 취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과 공부에 매진하기 위해 중앙도서관 바로 밑에 있는 기숙사에 입사를 했다. 아침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중앙도서관 2층 소위 '로열 박스'라는 곳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학과 공부와 취업공부를 병행했다. 고독하고 외로운 사투가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기숙사-중앙도서관-강의실-중앙도서관-기숙사로 이어지는 루틴한 생활이 계속되었다.
저녁 9시쯤 되면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이상 공부할 수 없다"는 마음의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면 가방을 싸서 기숙사로 돌아왔다. 매일 소주 반병과 새우깡을 먹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도저히 잠이 오지 않으면 수면제를 먹고 잤다.
그러나 공부에 탄력이 붙으면서 수면제는 반쪽, 1/4쪽으로 줄여 나갔다. 그러나 소주는 매일 반병씩 한달은 마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 평균학점도 4점대로 올라서고 취업공부도 어느정도 완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소주도 완전히 끊었다. 참 고난의 행군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학교 시절 공부에 소질이 있다는 나름의 자신감과 주변의 높은 시선이 나를 여태껏 공부하게 만들었고, 남들처럼 연애도 한번 해보지 못하고 고생은 고생대로 지지리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고생하며 공부하며 보낸 불면의 밤들은 헛되지 않았으며, 현재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50대 후반인 나는 아직 현직에 있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나름의 위치를 갖고 있다. 최근 마친 드라마 '서울 자가 대기업 김부장'의 주인공인 김낙수보다는 내가 훨씬 낫다.
과거의 고생과 나의 선택 그리고 회사 덕분에 자식들도 잘 키웠고, 화목한 가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언젠가는 죽고 반드시 죽는 우리네 한번 뿐인 인생, 치열하게 살아온 나의 젊디젊었던 나의 청춘에 대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그간 정말 고생했다. 수고 많았다. 앞으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가렴'하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등을 토닥거려 주고 싶다.
이것으로 나의 인생필름 1부는 마칩니다. 나의 군대생활과 회사생활에 대한 좌충우돌 처절한 리얼 스토리는 나의 인생필름 2부와 3부에서 소개하겠습니다.
그간 촌스럽고 거친 시골뜨기 순수남의 이야기에 관심가져 주셨던 모든 이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한동안 필름 검수 과정을 거친 다음에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좋은 일 마니마니 가마니 가득하시길 앙망합니다.
2025. 12.5 브런치 초보작가 맹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