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의 '광장'을 읽고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명준이 바다에 몸을 던진다는 결말을 알고 나니 소설의 첫문장이 다시 보인다. 그가 마지막에 보았던 바다가 그랬을 것 같다. 푸르다 못해 짙푸른 바다가 몽환적으로 보이고, 물고기비늘처럼 출렁이는 바다의 숨소리에 홀리어 몸을 던졌을 그의 죽음은 시를 노래하는 것 같다.
소설은 전쟁 후 남북의 이념이 부조리한 시대상과 맞물려 돌아가는 극한 사회, 약탈과 사기로 가득찬 광장, 죽어있는 텅빈 광장을 그 당시 남한으로 묘사한다. 누구나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우리의 사회적 광장과 개인적이고도 은밀한 공간인 밀실이라는 상징적인 용어가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면서 나를 또한 고뇌하게 만들었다. 광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꽉막힌 밀실에 갇혀있는 숨막힘을 청년 명준은 오롯이 견디고 있다.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한 남과 북을 겪고 사랑을 잃고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고독한 청년의 짧은 삶이 이토록 강렬한 것은 황폐한 시대를 살아가는 처절한 몸부림 때문만은 아니니라. 적어도 나에게는 무력하다 자조하는 청년 명준이, 실상은 모든 상황에서 어떤 순간에도 무력해 보이지 않았다. 또한 그는 냉철한 지성과 철학적 사유로 비틀어진 이데올로기에 치열하게 맞서고, 다가오는 사랑에 대해 청년의 순수를 바친다.
갑자기 끌려가 피로 얼룩진 취조의 무서웠던 순간의 두려움과 분하고 서러운 눈물을 쏟아내는 20살 청년, 핏내로 축축한 와이셔츠를 입고 어두워지길 기다리며 산자락에 앉아있는 명준의 고독한 분노에 직전의 무력함은 간데 없다.
좋은 철
궁리질 공부꾼은
보람을 위함도 아니면서
코피를 흘렸는데
내 나라 하늘은
곱기가 지랄이다.
작가 최인훈이 소설 속의 명준을 평생 그토록 아낀 이유를 알 것 같다. 적어도 내게는 명준의 나약해보이는 죽음조차 거대한 뒤척임으로 꿈틀거리는 바다에 강한 생명력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의 죽음이 슬프지만은 아닌 것은, 그의 숨은 멎은 것이 아닌 것 같다. 되레 바다의 숨과 합하여 그토록 그리던 푸른 광장으로 내달은 것이 아닐까. 사랑으로만 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혁명으로도 시를 만든다 했던 명준의 말에 더해, 그의 죽음도 시가 되었다.
못잊을 고운 각시들을 그리며 그 푸른 광장, 바닷속으로 몸을 던진다.
한 철 피우고 지는 붉은 꽃의 붉어진 눈시울이 있다면 명준에게도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적어도 명준은 내게 그렇게 짧게 피어 다가와 오래도록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