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 하지만 사랑해(6)

나는 누구지?

by ㅇㅅㅇb

땡볕에 30분 남짓을 걸어 도착한 마트. 그 이후의 시간은 희미한 안개처럼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버스 안에서의 일 때문이었는지, 혹은 그저 정신이 텅 비어버렸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미리 적어둔 목록의 물건들만을 기계적으로 집어 들고 돌아온 것 같다. 돌아오는 길은 갈 때와 달리 찰나의 순간처럼 느껴졌다. 마치 버스가 아닌 택시를 탄 것처럼.
​식탁 위에 장바구니를 툭 내려놓고, 나는 자석에 이끌린 쇳조각처럼 소파로 향했다. 지금 냉장고에 넣지 않으면 분명 상할 텐데, 머릿속으로는 그런 생각이 분명했지만 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전원이 꺼진 TV의 검은 화면에는, 희미한 윤곽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나의 모습이었다.
​TV 속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입술이 ‘너는... 누구야?’라고 묻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나는... 모르겠어. 내가 누군지." 그가 미동 없이 나를 응시했다.
​내가 그에게 되물었다. "그럼 당신은요?"
​TV 속 남자는 차분히 답했다. "과거에는 수많은 이름으로 불렸지. 택배회사 운송업 직원이었고, 누군가의 남편, 친구, 형제, 그리고 아들. 하지만 지금은 그저 현지 아빠라 불리는 사람일 뿐이야."
​정적이 흘렀다.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TV 속 남자가 다시 물었다. '다시 물을게. 너는 누구야?'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과거의 나, 수많은 이름으로 불렸던 사람이지만, 지금의 나는...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현지 아빠..."
​잠시의 침묵이 흐르고, ‘그거면 된 거야’라는 한마디가 귓가에 울렸다. 깜짝 놀라 TV를 쳐다보니, 검은 화면 속의 남자가 비로소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는 입 모양으로 무언가를 말했다.
​'잘 부탁해.'
​입 모양으로만 들리는 듯한 그 한마디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 순간, TV 속 남자의 모습이 흐릿해지며 천장의 얼룩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TV를 보니, 소파에 누워 잠든 나의 모습이 보였다. 아, 짐을 내려놓자마자 잠이 들었나 보다. 방금 전의 모든 것은 꿈이었다. 꿈에 나온 그 남자는 누구였을까. 태어난 이후부터 어제까지의 나였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힘이 났다.
​이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의 나는 '현지 아빠'이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시계는 3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현지와 친구들이 곧 도착할 시간이다. 어서 일어나야겠다. 자랑스러운 아빠의 모습으로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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