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 하지만 사랑해(7)

내 자랑스러운 아빠야

by ㅇㅅㅇb

이번에 만들 파스타는 알리오올리오와 토마토파스타 2개이다. 하지만 청양고추를 넣어 약간의 매운맛을 추가할 예정이다. 레시피는 인터넷에 찾아보니 자세히 나와 있었다. 내가 어릴 때는 어머니가 방법을 모르면 만들 수 없는 시대에 살았을 거다 보니 요즘은 정말 좋은 시대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아무튼 시간이 별로 없다 보니 2개를 동시에 작업하여야 한다. 먼저 알리오올리오와 토마토파스타에 들어가는 공통재료를 손질한다. 청양고추, 마늘... 그리고 겹치는 게 없다. 알리오올리오는 생각보다 들어가는 재료가 많지 않았다. 면을 삶고 기름에 둘러 볶기만 하면 끝이었다. 토마토파스타도 확인해 보니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소스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했지만 요즘은 소스를 마트에서 팔고 있었기에, 현지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면 종종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파스타가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장 기본적인 면을 삶는 게 어려웠다. 파스타면은 다른 면에 비해 두껍기 때문에 꽤 시간을 들여야 했고, 면이 잘 삶아졌다고 해서 소스와 함께 하면 맛이 따로 노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꽤 많은 파스타 면이 소비되었다. 버리기에는 아까우니 잘 된 파스타를 아이들이 먹을 때 내가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마지막으로 시도 가능한 면이 남을 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지와 친구들이 온 모양이었다. 일단 나는 인사하기 위해 주방에서 나왔다. 문 쪽을 보니 현지와 3명의 친구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친구들은 나를 보더니 인사를 건네왔다.

“아 안녕하세요~ 현지 아버님.”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버님’이라는 호칭이 아직도 낯설다. 매일 아침 모든 게 지워지고 나면, 나는 기록해둔 대로 다시 아빠인 척 연기를 시작해야 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현지가 친구들을 소개해주었는데 수진, 지민, 지윤이라는 ‘여자’ 친구들이었다. 야구 방망이를 들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중, 파스타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미안하구나... 아직 파스타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잠시 거실이나 현지 방에서 기다려 줄 수 있을까?”

하지만 ‘파스타’라는 말을 듣고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파스타도 만드실 수 있으세요? 현지에게 아버님께서 요리를 자주 하신다고 듣긴 했지만 대단하세요...”

“아니 그냥 인터넷에 레시피는 나와 있으니 그대로 만들기만 하면 되더라고...”

“레시피대로 만드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데요... 저희 엄마도 레시피 그대로 만들지만 제대로 못 만드시는 경우가 얼마나 많으신데요??”

친구들 중 지민이라는 아이는 가장 활발해 보였다. 지윤이와 수진이는 아직 어색한지 말이 많진 않았지만 착한 친구들로 보였다. 현지가 친구들을 거실로 데려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왠지 모르게 뭉클해졌다. 눈물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이 순간 내 감정이 드러나면 ‘연극’이 깨져버릴 것 같아 꾹 삼키며 파스타에 집중했다.

이미 수많은 실패 끝에 자신감은 바닥이었지만, 저런 멋진 친구들을 데려온 현지를 위해서라면 뭐든 해야 했다. 먼저 면을 삶고, 삶아진 면의 물기를 조금 제거했다. 하지만 찬물을 부으면 안 된다. 물기가 조금 빠진 파스타 면을 프라이팬에 넣어 알리오올리오는 기름과, 토마토파스타는 소스와 함께 볶아주었다. 볶아진 면을 한가닥 집어 맛을 본다. 지금까지 만든 것 중 가장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이들의 SNS 업로드를 위해 가장 예쁘게 접시에 담아야 했다. 젓가락에 면을 돌돌 말아 접시의 정중앙에 놓고 젓가락을 살살 빼면 면이 자연스럽게 내려가며 예쁘게 담겼다. 그리고 그 주변에 소스를 담아주었다. 만들고 보니 시중에서 파는 것과 비슷한 모양이 나왔다.

식탁에 파스타를 올리고 주변을 정리했다. 젓가락은 현지와 친구들이 도와주었다. 냄새가 나서 빨리 먹고 싶어서라고 했지만, 나는 아이들이 도와주는 그 모습에서 왠지 대견함을 느꼈다.

아이들은 만들어진 파스타를 보고 잠시 말이 없었다. 혹시 싫어했나 불안했지만, 지윤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혹시 사진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려도 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곧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흡사 재난 상황실 같았다. 결국 수진의 한마디로 토론이 종료되었다.

“파스타.. 빨리 안 먹으면 불어버릴 거야....”

그제야 모두 파스타에 집중했다. 이미 조금 불어 있었지만, 아이들은 각자 그릇에 담아 맛을 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지민이 말했다.

“대박~ 엄청 맛있어.”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나는 본래 현지의 아침밥을 차리는 건 ‘아빠이니까’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왔다. 하지만 사실 기억을 잃은 나는, 그저 아빠의 빈자리를 흉내 내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누군가 내 요리를 맛있다고 해주니, 그 순간만큼은 진짜 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파스타 한입을 먹고 아이들을 보니 현지와 눈이 마주쳤다. 현지가 다시 파스타로 눈을 돌렸지만, 방금의 눈빛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아빠인 척하는 걸 눈치챈 걸까. ‘나는 너에게 자랑스러운 아빠일까...?’ 하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매일 지워지는 기억 속에서, 이 질문만큼은 늘 남아 있었다.

그런데 지민이의 말에 대답한 현지의 한마디가 내 생각을 멈추게 했다.

“현지는 부럽다~ 이런 맛있는 요리해 주시는 아버님 계셔서.”

“맞아, 내 자랑스러운 아빠야!!”

그 한마디에 오늘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한 번에 풀리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정말 자랑스러운 아빠는 나일까, 아니면 내가 대신하고 있는 그 사람일까’라는 질문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끝내 삼켰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현지는 소파에서 쉬고 있었다.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현지가 다가와 말했다.

“아빠, 나도 아빠가 우리 먹을 때 먹던 거 먹어보면 안 돼?”

“응? 방금까지 먹었었잖아.”

“완성된 거 말고, 실패했던 아빠 요리.”

“어떻게 알았어?”

“아무리 요리를 잘한다 하더라도 처음 만든 요리를 그렇게 잘할 순 없었을 거 아니야...”

숨겨둔 실패작을 보여주지 않으려 했지만, 딸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결국 수많은 실패의 흔적들을 내놓았다. 불어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상태의 파스타였다. 그런데 현지는 거침없이 젓가락을 들어 면을 입에 넣었다.

‘우물, 우물, 우물...’ 집 안에는 현지의 씹는 소리만 가득했다. 마침내 ‘꿀꺽’ 소리와 함께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맛없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그 말을 듣자 마음이 아팠다.

“그러게 내가 먹지 말랬잖아...”

“그래도 맛있어...”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제야 알았다. 현지가 말하는 ‘맛있다’는, 내가 실패를 딛고 결국 파스타를 완성해낸 그 과정 전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는 걸. 기억은 매일 사라지지만, 현지의 저 말만큼은 내 안에 오래 남았다.

일요일 연재
이전 06화몰라... 하지만 사랑해(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