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믿음이 아니라 태도에 대하여

06.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를 어긋나게 만드는가

by LumiTo



삼일신고를 삶의 문장으로 읽다



사람은 잘못된 선택보다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방식에서

더 멀어진다.


처음부터 어긋나려고 한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옳다고 믿었고,

나름의 이유도 있었다.


그래서 어긋남은

실수처럼 오지 않는다.

설명 가능한 선택으로,

그럴듯한 판단으로 다가온다.


삼일신고를 읽으며

가장 자주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다.


인간은

외부의 유혹보다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데

훨씬 능숙하다는 사실.


우리는 종종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이번만은 예외다'라고 말하고,

'나중에 다시 정리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 말들은

대부분 틀리지 않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문제는

그 말들이 반복되며

태도가 아니라

습관이 되어버린다는데 있다.


한 번의 예외는

상황일 수 있지만,

반복된 예외는

이미 선택이다.


삼일신고가 묻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는 선택을

그렇게 쉽게 허락하는가.


그 이유는

악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피하고,

갈등을 미루고,

당장의 긴장을 낮추기 위해

우리는 조금씩 기준을 낮춘다.


그리고 그 변화는

너무 서서히 일어나서

어긋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기 어렵다.


그래서 인간은

크게 무너지기 전에

이미 오래전부터

조금씩 벗어나 있었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고,

알고 있는 것과

살고 있는 것이 달라질 때.


그 간격을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마로

덮어버릴 때.


삼일신고는

이 모든 과정을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지금의 태도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무엇을 피하기 위해

그 선택을 허락했는가.


어긋남을 멈추는 일은

완벽해지는 일이 아니다.

다시 정렬하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 일에 가깝다.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에

조금 더 머무는 것,

스스로에게 했던 설명을

한 번 더 의심해보는 것.


그 작은 지점에서

태도는 다시

방향을 잡기 시작한다.


그래서 삼일신고는

성공적인 인간을 말하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를 다루는 일을

중단하지 않는 태도를

조용히 반복해서 강조한다.


Ⅱ부의 끝에서

우리는 하나의 사실에 도착한다.


인간은 쉽게 어긋나지만,

어긋남을 인식하는 순간

이미 다시 돌아오는 중이라는 사실.


다음 부에서는

이 인식이

삶의 기술로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도덕이 아니라,

구조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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