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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끼형님 Mar 26. 2022

쥐 수천 마리가 자살하는 이유

쥐 수천 마리가 집단 자살하는 장면이 목격된다. 레밍이라 불리는 이 쥐는 사실 지독한 근시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저 식량을 찾아 앞선 녀석의 뒤를 쫓았을 뿐이다. 선두가 절벽에서 잘못 점프하는 바람에 모두가 줄줄이 뛰어내리게 되었다. 멀리서 보면 자살처럼 보인다.


마치 우리 모습과 닮았다.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 채 그냥 달린다.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른다. 달리는 도중 옆에서 시끄러운 외침이 들린다. "빨리 뛰어! 옆에 쥐새끼보다 먼저 도착해야지!" 고개 돌려 옆을 본다. 부모의 얼굴이 보인다. 학교 선생의 얼굴이 보이고, 동료의 얼굴이 보인다. 온 사회가 이 레이스에 미쳐있다. 다음 광고를 한번 보자.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묻는다. 주인공은 옅은 미소와 함께 '그랜저'로 대답한다. 09년도 광고임에도 불구하고 어색함이 없다. 사회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인생을 쓰레기통에 내다 버린 대가가 고작 자동차라니. 참으로 불쌍한 인생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달려온 것일까? 아마 이 길이 전부였기 때문이리라. 경쟁에서 도태되면 실패자로 낙인찍혔다. 살기 위해 달려야 했다. 무수한 경쟁자를 짓밟으며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달렸다.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달렸고, 동료보다 높은 고과를 받기 위해 달렸다. 큰 차를 타고, 좋은 집을 사기 위해 달렸다. 이 정도 했으면 끝이 보일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도착한 목표 지점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오히려 저 멀리 새로운 목표지점이 보인다. 무언가 이상하다. 그들이 말했던 '행복한 인생'이라는 도착지는 언제쯤 나타나는 것인가. 부모 말씀이라 의심치 않았고, 선생이라 믿었으며, 다수의 선택이라 의심 없이 따랐다. 그들의 말이 틀린 것일까. 그럴 리 없다. 모든 건 열심히 달리지 못한 내 탓이다. 마음 다잡는 주문을 외우는 수밖에.


'이 길이 옳다. 주어진 길은 이 길 뿐이다. 이 길을 걷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그랜저를 위해 경쟁해야 하고, 더 많이 벌어서 더 큰 집에 살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반드시 모두가···.'


지금 와서 뒤돌아보니 모조리 틀렸다. 끝없이 달릴 게 아니라 잠깐 멈춰야 했다. 앞만 볼 게 아니라 주변을 둘러봐야 했다. 멀리 있는 목표보다 지금 여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고, 불확실한 미래를 좇기보다 현실에 충만하게 머무르는 법을 배워야 했다. 시 <그 꽃>에서 고은은 말한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망할 목표를 좇느라 놓쳐버린 꽃들이 너무 아깝다.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과거는 이미 저만치 흘러가버렸다. 지금부터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자. 나는 이제 무의미한 달리기를 그만둔다. 발을 멈추고 멀리 목표 지점을 바라보니 절벽 끝에 떨어지는 쥐들이 보인다.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이 레이스의 끝이 낭떠러지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쩌면 나였을지도 모를 가여운 것들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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