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모임의 힘, 나만 힘든 게 아니었다

by 박정미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생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대화할 상대가 없으면 머릿속에서 같은 생각이 계속 맴돕니다. 그러다 보면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닐까, 나만 뒤처진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자꾸 커집니다. 하지만 막상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금세 깨닫습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을요. 혼자서 끙끙대는 동안, 다른 이들도 나와 비슷한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말입니다.




2023년 3월, 저는 자이언트북컨설팅에서 주관하는 잠실 교보문고 저자 사인회에 참석했습니다. 매달 한 번씩 출간 작가들이 모여 사인회를 열고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였습니다. 온라인 수업으로만 얼굴을 보던 작가들을 실제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었습니다. 마침 다음 날은 서울 동아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이왕 서울까지 가는 김에 사인회도 참석해 보자는 마음으로 두 행사를 함께 계획했습니다.



혼자서 서울로 가는 일은 제게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숙소를 예약하고, 기차표를 예매하고, 짐을 꾸리는 그 과정 하나하나가 낯설고 긴장되었습니다. 그래도 마음속에서 ‘가 보자, 부딪혀 보자’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기차에 올라타 청량리 역에 도착하고, 지하철을 갈아타 잠실 교보문고로 향했습니다. 어깨에는 1박 2일치 짐이 메어 있었고, 마음속에는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서점에 도착하자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책 냄새가 어우러진 공간이 반겨주었습니다. 줌 화면 속에서만 보던 얼굴들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인사를 건네며 조심스레 자리를 잡았습니다. 3월 셋째 주 토요일 오후, 사인회 장소는 꽃다발과 케이크, 축하 현수막으로 가득했습니다. 사인회의 주인공은 박경아 작가였습니다. 정각 세 시, 사인회가 시작되었고 저도 책을 들고 줄에 섰습니다. 사인을 받고 “축하드립니다” 인사를 건네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함께 뒷풀이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토요일 오후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고, 저는 길을 잃지 않으려 앞사람을 꼭 따라갔습니다. 도착한 식당에는 이미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무대 앞자리는 북적였기에 저는 변두리 쪽에 앉았습니다. 여전히 쭈뼛거렸지만 용기를 내어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영주에서 왔다고 말하니 모두 놀라며 멀리서 왔다고 하며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식사 자리에서는 박경아 작가의 인사말에 이어 여러 작가들의 축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자, 같은 테이블의 작가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이었습니다.


“저는 아직 초고도 못 썼어요.” “저는 기획 단계에서 막혔어요.”


그들의 말을 들으며 놀랐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미 책을 냈거나, 글을 술술 써내려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현실은 달랐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조금은 나아가고 있구나.’



그때 저는 이미 초고를 완성하고 1차 퇴고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겉으로는 태연하게 웃었지만, 속으로는 큰 위안을 얻었습니다. 나만 더디고 부족한 줄 알았는데, 모두가 같은 길을 걷고 있었던 겁니다. 흔히 ‘타인의 불행을 나의 행복의 도구로 삼지 말라’고 하지만, 그날만큼은 그들의 이야기가 제게는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나 혼자 고군분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마음을 든든하게 만들었습니다.







뒷풀이가 끝나기 전, 저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다음 날 있을 마라톤 대회를 위해 일찍 쉬는 게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몇몇 작가들이 문 앞까지 나와 “내일 대회 잘 치르세요!”, “조심히 내려가세요!” 하며 배웅해 주었습니다. 그 따뜻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제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었습니다. 숙소로 향해가는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꾸준히 서울 사인회에 참석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달 셋째 주 토요일이면 잠실 교보문고로 향했습니다. 누군가의 출간을 함께 축하하고, 다른 작가들과 글쓰기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 제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온라인으로는 느낄 수 없던 온기, 얼굴을 마주하며 건네는 위로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 년을 꾸준히 다니다 보니, 다음 해인 2024년 4월에는 제가 그 자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사인회 현장에서 사인을 해주고, 축하를 받는 입장이 된 것이지요. 처음 참석했던 그날을 떠올리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그때의 떨림, 낯섦, 두려움이 결국 나를 이 자리로 데려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라인으로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배움의 기초를 쌓았지만, 오프라인 모임은 제게 또 다른 성장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줌 화면 속 대화와 실제의 대화는 다릅니다. 눈빛을 마주하고, 표정을 읽고, 목소리를 직접 들으며 나누는 대화는 온도가 다릅니다. 질문이 생기면 즉석에서 물을 수 있었고, 제가 알고 있는 부분은 이제 막 글을 시작한 사람에게 나누어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프라인의 만남은 서로의 성장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세상은 빠르게 비대면으로 전환되었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직접 교감하는 일은 결코 대체될 수 없습니다. 화면 너머의 만남은 편리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오프라인에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자신만의 생각에 갇히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의 고민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다들 각자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혼자 끙끙대지 말고, 사람을 만나세요.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세요. 그 속에서 우리는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이겨내려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결국 서로를 통해 자랍니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주고받는 일 그것이 오프라인이 주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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