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단상
“내일 같이 뛰어요.”
영아 씨와 통화 중에 툭 튀어나온 말이었다. 마라톤 동호회에서는 폭염으로 인해 일요일 장거리 훈련을 잠시 쉬기로 했다. 어제, 헬스장에서 7km를 뛰었지만, 그 생각은 하지 못하고 덜컥 제안해 버렸다.
“좋아요, 같이 뛰어요!”
언제나 밝은 영아 씨가 흔쾌히 답했다. 영아 씨는 우리 동네에서 꽤 먼 곳에 산다. 차를 몰고 둑방 근처까지 와서 주차한 뒤 달리기를 시작한다고 했다. 나는 집에서 둑방까지 10분 거리라 먼저 나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는 중간 지점인 한정교에서 만나 무섬마을까지 함께 달리기로 약속했다.
영아 씨를 처음 만난 건 작년 여름이었다. 다른 러닝크루 소속이지만, 우리 회원과 친해서 몇 차례 함께 훈련한 적이 있다. 죽령 훈련 때 처음 알게 되었고, 올해 초에는 김천에서 열린 도민체전에도 함께 출전했고, 공룡능선 산행도 함께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하늘은 흐렸고, 햇살은 없었지만 달리기엔 괜찮은 날씨였다. 전날 밤 쪄둔 단호박을 꺼내 먹고, 양치 후 달리기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검은색 반팔 티와 짧은 반바지, 발가락 양말, 무릎 스포츠 테이프, 그리고 흰색 나이키 모자. 최근에 장만한 스포츠 고글도 챙겼다. 조금 멋을 부린 것 같지만, 햇빛 차단이 주된 목적이다. 러닝조끼에는 어젯밤 냉동실에 얼려둔 물을 넣었다.
6시에 집을 나섰다. 10분쯤 걸어 둑방에 도착해 준비운동을 하며 영아 씨를 기다렸다. 이른 아침 둑방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길을 계속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기분이 오랜만이었다. 특히, 함께 뛸 친구를 기다리는 일은 설레는 일이었다. 드디어 저 멀리서 한 사람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영아 씨였다.
손을 흔드는 그녀에게 나도 양손을 크게 흔들며 반갑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활짝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원래 인라인 스케이트장에 차를 세울 예정이었지만 시민운동장에 주차했다고 했다. 약 1km를 이미 달려온 셈이다. 우리는 함께 무섬마을 쪽으로 발을 맞춰 달리기 시작했다. 페이스는 6분 30초. 적당한 속도였다.
좁은 길을 둘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달리니 길이 가득 찬 듯한 느낌이었다. 혼자 달릴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분이었다.
무섬으로 가는 길은 자전거가 자주 지난다. 영아 씨는 자전거가 경적 없이 지나가면 “클랙슨을 울려주세요!” 하고 뒤에서 소리쳤다. “조심하라고요. 우리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나는 그런 말을 해본 적 없다. 그런 영아 씨가 낯설기도 하면서 한편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지나가는 사람마다 인사를 했다. 나는 달릴 때 거의 입을 다물고 뛴다. 영아 씨는 달랐다.
무섬다리 초입까지 도착했을 때 스포츠 시계는 11km를 가리켰다. 거기서 돌아가기로 했다. 되돌아가는 길, 1km쯤 지나면서부터 점점 힘이 들기 시작했다. 다리가 무거워지고, 속도가 떨어졌다. “먼저 가세요. 저는 뒤에서 따라갈게요.”내가 말했다. 정아 씨는 살짝 망설이다가 “그럴게요!” 하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달려갔다.
나는 점점 더 느려졌고, 결국 월호카페 근처에서 걷기 시작했다. 단호박을 너무 조금 먹어서인지 배도 고팠고, 다리는 무거웠다. 정아 씨가 파워젤을 줄까 요하고 물어보았지만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괜찮다고 했다.
최근 달리기가 예전 같지 않다. 지지난주 단체 훈련에서도 후반에는 거의 걸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요즘 자주 그렇다. 걸으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생각해 보니 어제 오후 늦게 헬스장에서 7km를 뛰었고, 밤 11시까지 책상 앞에서 글을 썼으며, 남편이 늦게 퇴근해 자정 넘어서야 잠들었다. 장거리 훈련 전날에는 컨디션 조절이 필수인데, 나는 그걸 또 놓쳤다.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조금 힘이 나는 듯싶어 다시 달려봤고, 몇 km는 그렇게 달릴 수 있었다. 얼마 안 달리자 또 힘들어졌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맞은편에서 오는 동호회 선배를 만났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인사를 하고 다시 힘을 내 뛰기 시작했다.
발바닥은 뜨겁고 종아리는 터질 것 같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가다 보니 3km 정도 남았고, 다시 잠깐 걷다가 마지막엔 힘을 짜내 뛰었다. 총 거리 21km. 하프 완주였다.
도착해서 바로 집으로 가지 못하고 둑방길 벤치에 앉아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발이 쪼그라든 듯하고 핏줄이 선명하게 튀어나왔다. 발가락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주물렀다. 그러고 나니 조금 나아졌다. 벤치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낀 하늘, 시원한 바람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오늘 반환점 이후로는 제대로 뛰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속도로 완주했다. 예전처럼 생생하게 달리는 시절도 있었고, 지금처럼 정체기 같은 시기도 있다. 살다 보면 그런 법이다. 그래도 끝까지 완주했다. 평균 페이스 7분 30초.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영아 씨는 원래 나보다 기록이 느렸다. 이제는 나보다 더 잘 달린다. 매주 무섬까지 혼자 꾸준히 뛰었다고 하니, 그 실력이 쌓인 모양이다. 나는 이제 영아 씨에게 실력이 뒤처진다. 그런데 전혀 억울하지 않다. 나는 나의 현재 실력을 인정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페이스가 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이다. 나는 나의 속도로 계속 달릴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