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부딪히는 삶
“빨리 가자” 남편의 재촉에 마음이 급해졌다. 싱크대 제일 위 칸에 넣어두었던 보냉 가방을 꺼냈다.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찐 단호박을 얼른 작은 크기의 통에 담고 나무젓가락과 물병도 담았다.
벌써 현관 앞에 서서 남편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남편 보고 먼저 내려가라고 말했다. 나는 책상 위에 놓여있던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를 챙기고 수영복을 넣어둔 가방을 챙겼다. 급히 수건도 한 장 넣었다. 혹시나 몰랐다. 이번에는 수영을 할 수 있을지.
나들이 갈 때 늘 들고 다니는 파란색 보냉 가방과 운동 갈 때 가지고 다니는 나이키 운동 가방 그리고 장보기 할 때 늘 들고 다니는 검은색 에코백 이렇게 가방 세 개를 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주자창에 가서 차로 가자 남편이 이미 에어컨을 틀어놓았기에 차 안은 시원했다.
먼저 마트에 들렀다. 나는 차 안에 있고 남편만 차에서 내렸다. “맛있는 거 사 와” 차 안에서 나는 남편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그제야 나는 한숨 돌리고 가방에 넣어 두었던 베르베르 씨 책을 읽기 시작했다. 두세 페이지 정도 읽었을 때 남편이 왔다.
들고 갔던 검은색 에코백에 뭔가 가득했다.자리에 탄 남편이 가방을 뒷좌석으로 넣었다. 슬쩍 돌아보니 캔맥주와 과자, 빵이 있었다. 나를 위한 옥수수수염 차도 있었다. 준비를 마치고 한 시쯤 출발했다.
목적지는 울진 죽변항이었다. 그곳에서 회를 사서 해수욕장으로 갈 계획이었다. 올여름 들어 벌써 세 번째다. 한 시간 30분 정도면 울진 바닷가에 닿는다. 우리는 시간이 날 때 회를 사서 바닷가에 갔다. 두세 시간 정도 먹고 시간을 보내다 돌아 오곤 했다. 어제도 남편이 쉬는 날이라 그렇게 가게 되었다.
회 센터에 들러 오징어회와 해삼을 샀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은 계속해서 오징어 회를 먹는다.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최근 계속해서 오징어회를 먹는다.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약 5분 정도 다시 운전해서 후정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먼저 두 번은 주자장이 한산하더니 어제는 입구부터 분위기가 복잡하게 느껴졌다. 역시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차들이 많았다. 휴가철이었다.
빈 곳에 차를 주차시키고 먼저 사 온 회 접시와 초장을 차 안에서 먹기 좋게 세팅을 했다. 사각 일회용 접시의 비닐을 벗기고 초장 뚜껑도 열었다. 남편은 나무젓가락으로 오징어 회를 집어 초장에 푹 찍더니 입으로 가져갔다. “캬! 이 맛이야!” 차 유리 앞으로는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었고 하얀 모래사장에는 튜브를 타고 수영하는 사람들이 둥둥 떠 있었다.
옆에서 나도 회를 몇 젓가락 먹었다. 남편과 달리 나는 이 상황이 별로 탐탁지 않았다. 매번 남편의 의도로 바닷가에 오지만 나는 이렇게 회를 사 와서 먹는 것보다 식당에서 먹고 싶었다. 오는 길 차 안에서 단호박을 먹기는 했지만 배도 몹시 고팠다.
남편은 계속해서 회와 맥주를 먹었다. 나는 별로 입맛이 없었다. 시야 왼편에는 바다를 향해 쭉 뻗은 길이 있고 그 끝에 전망대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 저곳에 가보자고 했다. 지난번 왔을 때도 가보려고 했지만 땡볕에, 또 너무 멀어 보여 망설이다 가지 않았었다.
이번에는 저기 한 번 가보자고 남편에게 몇 번이나 말했다. 더운데 뭐 하러 가냐며 꿈쩍도 않던 남편이 마지못해 그래 가보자라고 했다. 먹던 회 비닐을 다시 씌우고 초장도 뚜껑을 덮어 정리하고 우리는 차에서 나왔다. 먼저 트렁크로 가서 우산을 빼냈다.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기에 양산이 아닌 우산이라도 써야 할 것 같았다.
해안가를 따라 걸어서 다리가 시작되는 끝점까지 갔다. 눈으로 보던 것과 달리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 이야기 몇 마디 나누다 보니 금세 시작점에 왔다. 구경 온 사람들이 많았다. 안내 데스크에서 표를 끊으려고 하니 안내원이 무료라고 했다. 뜻밖이었다.
바닷길을 향해 걷는데 바닷바람이 시원했다. 발아래로 점점 짙푸른 바다가 넘실거렸다. 몇 미터씩 가면서 길 한 편에 사진을 찍을 수도 있고 그늘로 햇빛도 막아 줄 수 있는 설치가 있었다. 기념으로 우리도 사진을 한 번 찍었다.
약 300미터 정도 바다를 향해 걸어가자 해중 전망대가 나왔다. 막연히 바다 위만 볼 줄 알았던 그곳은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전망대였다. 수심 7미터까지 내려갔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두꺼운 유리창을 통해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물고기 구경보다도 이렇게 해저에 전망대를 만들 수 있는 건설 능력이 놀라웠다.
“오길 잘했다!” 남편이 말했다. 관람을 하고 우리는 다시 바다 위로 올라와 다시 차가 있는 해수욕장으로 되돌아왔다.
겉에서 보기만 했을 때는 그렇게 바닷속 전망대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직접 가보니 바다 위뿐 아니라 바닷속을 구경할 수 있었다. 구경뿐 아니라 남편과 비록 땡볕이지만 걸으며 평소 잘 나누지 않던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가만히 앉아 눈으로만 보며 무엇이든 직접 해보는 것이 좋다. 직접 부딪치고 겪어보면 또 다른 것을 느끼고 알 수 있다.
돌아와서는 수영까지 했다. 철썩거리는 파도가 무서워 바다 가장자리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가 용기 내어 몇 발짝 더 들어가 보았다. 겨우 몸을 물에 맡기고 팔을 몇 번 휘저으며 드디어 그렇게 바라던 바다 수영을 해 보았다.
올여름 처음 해수욕장에 왔을 때는 차에만 있다가 돌아갔다. 두 번째 왔을 때는 발을 담가 보았다. 어제 세 번째 왔을 때는 수영을 했다. 비록 아주 잠깐이었지만, 바닷속에서 몸을 띄우고 바닷속도 들여다 보았다. 서너 번 그렇게 한 다음 도저히 무서워서 계속할 수 없었다.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바로 샤워장으로 가서 샤워하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너무 긴장해서 산소 부족으로 생기는 현상이라고 했다. 두통은 차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자 사라졌다.
나는 두 가지를 해냈다. 해중전망대 관람, 그리고 바다 수영. 겉에서 보기만 하면 결코 알 수 없는 경험들이었다. 삶도 그렇다. 가만히 앉아 바라보기만 하면, 우리는 껍데기만 알 뿐이다. 직접 부딪치고 시도해야만 그 속을 안다.
남은 날들은, 그렇게 체험으로 채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