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2편 : 이방인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해설!
*이방인의 재미있는 줄거리는 1편에서 확인할 수 있어!
*이방인에 나오는 여러 명언들에 대한 설명은 3편에서 확인할 수 있어!
안녕~! 나는 고전 문학을 읽고 설명해주는 일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도치라고 해! 너희들 고전문학 읽는 거 좋아하니? 아마 어렵고 지루하고 공감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고전을 시도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을 것 같아 ㅠㅜㅠ 그래서 너희들에게 고전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기 위해서 도치가 찾아왔어~ 나와 함께 유명한 고전 작품들의 줄거리를 들어보고, 구체적인 내용 설명도 알아보고, 유명한 문장들도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작품을 하나씩 둘씩 알아가다 보면, 고전 읽기가 정말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될 거야!
2. <이방인>이 어렵다고? 핵심만 쉽고 빠르게 알려줄게!
프랑스의 유명 작가 알베르 카뮈의 핵심 키워드는 '부조리'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부조리는 보통 평등하지 않거나 정의롭지 않은 상황을 나타내지만, 카뮈가 말하는 '삶의 부조리'는 의미가 크게 달라! 그의 유명 작품들 (이방인, 페스트, 시지프 신화, 반항하는 인간 등)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사상을 먼저 배워야만 하지! 먼저 정답부터 알려주면, 카뮈의 부조리는 '세상의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과 무관심한 세계 사이에서 생기는 근본적인 모순'을 의미해. 무슨 말인지 어렵지? 이제 차근차근 알아보자!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인간은 이성이 있고, 생각할 줄 아는 존재이지? 그래서 카뮈가 생각하는 인간은, 세상과 삶과 죽음의 의미와 같은 무거운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지.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종교와 철학은 모두 이 어렵고 심오한 주제에 대한 답을 찾고, 인생의 방향성을 찾으려는 노력의 산물일 거야.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에는 정해진 답이나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야! (카뮈의 관점에서..!) 우주가 생겨나고, 우리가 태어나서 삶을 사는 이 모든 과정은 그저 우연하게 발생하는 일일 뿐, 누군가의 목적이나 뜻에 따르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지!
만약 평생을 어떤 철학에 몰두했다면, 혹은 어떤 종교를 믿으며 살아왔다면, 세상의 진실 (정해진 뜻이란 없다!)을 깨닫는 순간 엄청난 허무함과 좌절을 경험하게 돼. 인생을 바쳐온 고민과 답을 찾는 노력이 모두 무의미한 낭비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기 때문이지...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성적이고 의미를 탐색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러한 좌절의 순간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야. 이것 참 허무하지 않니..? 그런데, 카뮈가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이 좌절의 순간 이후에도 인간이 '위대하게' 살아가기 때문이야.
좌절 이후에 인간의 행동을 나타내는 단어는 '반항'이야. 평생 자신의 시간이 무의미함을 깨달은 인간은 단순히 무너지고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적극적으로 반항하면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간다는 것이 카뮈의 설명이야! 무슨 말이냐면,, 만약 세상에 정해진 답이나 목적이 없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물론, 혼란스럽고 불안하지만, 동시에 정답을 내가 직접 정할 수 있게 돼! 즉, 따라야 할 답이 없다면, 내 인생의 의미와 방향성을 내가 개척하며 행복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지!! 결국, 카뮈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불합리한 상황에 직면하고, 좌절하지 않은 채 삶의 새로운 의미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야!
내가 1편에서 작품에 대한 힌트를 줬는데..! 이 작품이 비판하는 대상은 주인공 뫼르소가 아니라, 2부의 재판 장면이라는 점이야! 바로 앞에서 반항에 대해서 배웠지? 반항이란, 자신의 삶에 대한 목적과 의미를 스스로 개척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었어! 여기서, 이 작품이 비난하고자 하는 재판 장면을 떠올려볼까? 미리 답을 알려주자면, 이 작품이 비판하는 대상은 '자신에게 솔직할 수 없고, 정해진 규칙이 강요되는 인간 사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어!
재판이 벌어지는 법정에서는 개인의 성격이나 개성은 전혀 살아있지 않아. 검사, 판사, 피고와 같이 정해진 역할이 있고,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에 따라 정해진 행동 방식과 규칙을 따라해야 하지. 재판의 모든 과정은 그저 정해진 형식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심지어 사건에 대한 개인의 진술까지도 답이 정해져있어. 변호사는 뫼르소에게 형량을 줄이기 위한 답을 강요하는데, 사건의 진실과 상관없이 정해진 답이 존재한다는 의미이지. 누구도 뫼르소의 감정과 생각에는 관심이 없고, 정해진 방식의 답을 해내는지에 따라 그를 판단했어.
냉정히 말해서 뫼르소가 사형당한 이유는, 아랍인을 죽였기 때문이 아니야. 아랍인은 프랑스의 식민지 국가 출신이었기에 반성한다는 진술만 했어도 심각하지 않게 넘어갈 사건에 불과했지. 이러한 상황에서 뫼르소는 자신이 추구해 온 삶의 가치관 (언제나 진실만을 말한다!)을 고집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형을 당한 거야. 우리의 주인공이 가진 삶의 원칙은 어느 순간에도 거짓을 말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과장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야. 오롯이 진실된 감정과 생각만을 말한다는 것이지!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비인간적이고, 악마와 같은 모습이라며 거부하고, 그를 사회에서 격리시키려고 할 뿐이야.. 그것이 뫼르소가 죽어야 했던 이유이고, 카뮈가 이 작품을 통해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이야.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장면은 작품의 후반부, 뫼르소가 사제에게 분노를 쏟아내고, 죽음 앞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장면이야. 먼저, 사제를 만나는 장면부터 살펴보자.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뫼르소가 평생 추구했던 원칙은 '거짓을 말하지 않고,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는 규칙 하나뿐이었어. 그에게는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고, 그 과정에 느껴지는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 유일한 모습이지. 사제의 말처럼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죽음 뒤의 상황을 고민하는 것은 뫼르소에게 모두 거짓에 불과해. 그에게는 종교나 법 모두 세상의 부조리를 깨닫지 못한, 보통의 인간들이 저지르는 실수에 불과했을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지.
뫼르소는 죽음을 앞두고 세상의 규칙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어. 세상은 인간의 고통이나 슬픔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항상 흘러가는 대로 흘러갈 뿐이야. 이렇게 무심한 세상의 모습을 보면서, 뫼르소는 비로소 부조리의 개념 (이성적 인간 vs 무관심한 세상)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제대로' 돌아보게 되었지. 이때, 그는 엄청난 행복을 느껴! 왜냐하면, 그동안 삶에서 자신을 비난했던 이들은 모두 사회의 강요에 눌려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이고, 오직 자신만이 '인간다운' 반항의 삶을 살아간 인물이었기 때문이야! 평생 남들의 멸시와 비난에 살아왔던 쓸쓸했던 뫼르소는, 사실 자신만이 옳았음을 깨닫기에 언제나 행복했던 것이라 생각하지...
우리는 왜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 뫼르소를 보고 사이코페스라고만 생각했을까? 그건, 우리 안에서 '아들로서의 도리'라는 사회적 관념이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야! 심지어 둘의 사이가 어떠한지, 주인공이 어떠한 사람인지 (심지어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 문장 하나만으로 비난할 수 있는 것이야.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은 이유는 말 그대로 '그만큼 슬프지 않았기 때문'이지,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야. 어쩌면, 우리도 사회의 관념과 강요에 익숙해져서 우리와 다른 성격의 모습을 가진 사람을 무작정 비난하고, 쫓아내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