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3편 : 작품 속 문장을 구체적으로 느껴보자!
*이방인의 재미있는 줄거리는 1편에서 확인할 수 있어!
*이방인을 이해하는 구체적인 해설은 2편에서 확인할 수 있어!
안녕~! 나는 고전 문학을 읽고 설명해주는 일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도치라고 해! 너희들 고전문학 읽는 거 좋아하니? 아마 어렵고 지루하고 공감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고전을 시도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을 것 같아 ㅠㅜㅠ 그래서 너희들에게 고전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기 위해서 도치가 찾아왔어~ 나와 함께 유명한 고전 작품들의 줄거리를 들어보고, 구체적인 내용 설명도 알아보고, 유명한 문장들도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작품을 하나씩 둘씩 알아가다 보면, 고전 읽기가 정말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될 거야!
3. 이방인에 담긴 명언들을 읽어보자!
■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이방인>이라는 작품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그 유명한 첫 번째 문장이야! 상황이나 인물에 대한 어떠한 설명이 없는데도, 우리들은 이 문장을 보자마자 알 수 없는 거부감을 느끼게 돼. 또한, 뫼르소라는 주인공을 비인간적이고, 따뜻함은 찾아볼 수 없는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해버리지.. 그런데,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이 문장은 사실 작가 카뮈가 지적하고 싶었던 인간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해. 2부의 재판 장면에서는 뫼르소가 어떻게 해서 사람을 죽이게 된 것인지, 그 사건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오히려, 영혼이나 인간성이란 찾아볼 수 없는 존재이고, 인간 사회에 큰 피해를 주는 악마이기 때문에 사형을 당해. 우리가 뫼르소를 비난했던 것과 재판에서 사형을 당하는 것은 사실 '인간성이 없기 때문'이야.
그런데, 뫼르소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그는 오직 '진실함'을 추구했을 뿐이야. 여기서 말하는 진실함은 거짓말뿐만 아니라, 자신이 느낀 감정의 정도를 꾸미는 것도 포함돼. 즉, 조금만 슬픈 일이라면 그저 조금만 슬퍼하고자 하는 것이야. 어머니의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는 그다지 슬프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우리는 어떤 상황이나 가능성을 무시하고, '아들이라면'이라는 사회적 가치 기준을 들이밀면서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뿐이야. 어쩌면, 뫼르소에게 이 세상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태도를 비난하고, 사회적으로 정해진 정도를 무조건 강요하는 잔인한 공간이었을지 몰라.
■ 언제나 다름없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이제 엄마의 장례가 끝났고, 나는 다시 일을 하러 나갈 것이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 문장은 어머니의 죽음에도 크게 슬퍼하지 않는 뫼르소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어.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도 별다른 추모의 기간을 거치지 않고, 평소처럼 수영을 하고, 데이트를 즐기고, 야경을 보면서 감상에 젖는 모습을 보여주지. 심지어, 장례식이 끝난 이후로 크게 달라지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으며, 이전의 삶이 그대로 이어질 것이며, 자신의 마음 역시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해. 여전히 충격적인 모습을 통해 주인공을 끔찍한 인물처럼 느끼게 만들기도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이 작품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으며 읽어야만 해! 우리가 받는 충격처럼 뫼르소는 잘못이 있는 것일까? 잠깐 모든 감정과 가치관을 내려놓고 본다면, 이 문장이 사실 그렇게 이상한 문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도 몰라!
■ 불로 지지는 태양의 열기가 내 두 뺨으로 확 번졌고 땀방울들이 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내가 엄마의 장례를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고, 그날처럼 특히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줄들이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펄떡거렸다.
카뮈는 언젠가 인터뷰를 통해 '이 작품에서 햇빛이라는 요소를 빼선 안 된다'고 강조한 바 있어. 그만큼,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햇빛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지. (단순히, 살인의 원인이라는 점을 넘어서 말이야!) 작품에서 햇빛이 강조되는 장면은 크게 두 장면, 어머니의 장례식과 아랍인의 살인 사건 장면이야. 이 부분을 생각해보면, 무덤덤하고 감정이 없어 보이는 뫼르소가 강렬한 햇빛에 의해서 예민해지고 흥분하는 모습이 그려져. 즉, 햇빛은 가장 직접적으로 감정을 흔들고 감각을 느끼게 만드는 존재이지.
여기서 작품의 주제와 연관지어 보자. 우리가 말하는 사회의 규칙이나 행동 방식, 도덕 법칙은 우리의 직접적인 본능이나 생각을 억제하고 포기하는 것과 관련돼. 즉, 내가 생각하기에 올바른 것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멈추고 남들과 합의된 행동을 따르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올바른' 방법으로 여겨지지. 그러나, 주인공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은 곧 느껴지는 그대로를 진실되게 표현할 뿐, 그 외에는 어떠한 거짓도 더하지 않는 것이야. 바로 이 지점에서 햇빛은 진실된 삶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어! 오직 진실된 것은 일차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이고, 그 감각에 충실한 모습이 드러나고 있거든!
■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그날 내가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제했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뇨, 그건 사실이 아니거든요."
뫼르소의 변호사는 살인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도 않았음에도 살인 사건에 대한 진술을 이미 정해놓고, 그것에 따르기를 요청하지. 생각해보면, 재판이라는 과정은 참 이상해. 실제 사건에 대한 진실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중요한 것은 재판이라는 인위적 과정에 얼마나 적합한 행동을 하는지야. 그럴듯한 답을 정해놓은 뒤에 그대로 진술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그 대답을 평가하고 어느 정도 정해진 형벌을 내리지. 모든 것이 인위적인 과정에서는 개인의 생각이나 경험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고려 사항이 되지 못해. 얼마나 정해진 틀에 따라 행동했는지를 평가하며, 이 모습은 사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거야!
재판의 후반부, 도대체 왜 사람을 죽였냐는 판사의 질문에 뫼르소는 '햇빛 때문에'라고 진실을 말했어. 이후, 그가 받은 반응은 비웃음뿐이었어. 도저히 그게 말이 되냐는 반응과 함께 뫼르소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는 것뿐이라는 무시를 당하게 되었어. 결국, 이 장면 역시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사회적 규칙에만 집중하는 우리의 비판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여기까지 읽어보면, 많이들 오해하고 있는 '햇빛 때문에 사람을 죽인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어. 이전까지 우리의 시선이 '말도 안 되는 사이코패스'의 이야기였다면, 이제부터는 '진실에는 관심이 없는 모든 것이 인위적인 재판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거야!
■ 예심 판사는 분개하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그럴 수는 없다고, 인간은 모두 신을 믿는다고, 심지어 신을 외면하는 이들조차도 신을 믿는다고 했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신념이었고, 만약 그것을 조금이라도 의심해야 한다면 그의 삶은 무의미해지고 말 것이었다.
판사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진술한 뫼르소의 말에 큰 충격을 받으며, '인간은 모두 신을 믿고, 그 믿음 속에서 삶의 의미가 생긴다'고 소리쳤어. 만약, 그것을 의심하고, 모든 것이 거짓임이 밝혀진다면 판사는 자신의 인생에서 어떠한 뜻과 긍정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어. 사실, 이 판사의 불안함과 간절한 외침은 아직 부조리를 깨닫지 못한 미성숙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 (2편을 확인해 줘!) 이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은 본능적으로 우주의 거대한 의미와 삶의 뜻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자 하지. 그 과정에서 종교와 철학이 발전하였고, 우리는 종교의 가르침에 무한히 의지하면서 그것만이 정답이고, 종교를 믿으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어..!
하지만, 카뮈가 말하는 인간의 부조리한 숙명이라는 것은 인간의 간절한 노력과 믿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어떠한 뜻이나 정답이 없다는 것이야.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순간 인간은 엄청난 두려움과 불안함을 느끼며 완전히 무너지게 될 운명이지.. 마치 예심판사가 느끼는 불안함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떠한 뜻이 없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야.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진실을 깨닫고 무너질 것임을 암시하지.
하지만, 카뮈는 부조리한 운명이 이러한 좌절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했어! (2편을 확인해 줘!) 정해진 뜻이 없고, 따라야하는 정답이 없다면, 오히려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자신만의 의미를 향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 운명에 반항하고, 무너지지 않은 채, 자신만의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지!
■ 검사는, '배심원 여러분, 그 영혼을 깊숙이 들여다보았으나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상 나에게는 영혼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고, 인간다운 점도, 인간들의 마음을 지켜주는 그 어떤 도덕적 원리도 없었다는 것이다.
앞에서 여러 번 반복했듯, 뫼르소가 사형을 당해 세상에 사라져야 했던 이유는 아랍인을 죽였기 때문이 아니야. 검사의 진술처럼, 마음속에 영혼이나 인간다운 점, 그 어떤 도덕적 원리조차 없기 때문이야. 검사는 비인간적인 대상이 인간 사회에 나왔을 때 끔찍한 피해를 줄 것이라며, 그를 사형시키는 것이 곧 정의라고까지 이야기할 정도였어. 우리는 사회적 규칙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따르는 이를 본능적으로 거부하게 돼. 그런데 이러한 거부감은 사실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일반적인 사람들이 느끼는 '나는 잘못 살았다'라는 생각에서 오는 것이라 볼 수 있지. 겉으로는 사회의 규칙, 함께 사는 삶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그 깊은 마음속에서는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데에서 오는 질투와 부러움의 감정이라 할 수 있어.
사실,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독자들조차 이 사형 장면에서, 재판장의 다른 인물들과 함께 사형에 통쾌함을 느끼기 마련이야. 지금까지, 뫼르소를 바라본 시선이 '어머니가 죽어도 슬퍼하지 않는 사이코패스'였으니까! 그러나, 도치가 설명해 준 작품의 주제와 비판점을 고민해보면서,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면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 어떠한 잘못이 없는데도 사형을 당해야했던 불쌍한 주인공의 모습일 거야.. 정말로, 뫼르소를 보면서 영혼이 없는 비인간적인 대상으로 볼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전 생애 동안, 내 미래의 저 깊숙한 곳으로부터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 오지 않은 세월을 거슬러 내게로 불러 올라오고 있었어."
사형을 앞둔 뫼르소는 자신이 평생을 살아온 세상이 어떠한 곳인지, 자신에게 주어진 부조리함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깨달으면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극적으로 깨닫기 시작하지.
■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아서, 마침내 그토록 나와 닮아서, 마침내 그토록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뫼르소는 최후의 순간, 진정한 행복과 해방감을 느끼며 자신의 사형을 기다리게 되었어. 뫼르소는 평생 남들에게 무시받고, 욕과 핍박을 받으며 살아왔고, 영혼이 없다는 이유로 죽음을 앞두고 있어. 그러나, 세상의 진정한 규칙을 깨닫게 된 이후, 오직 자신만이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지! 세상에 정해진 답이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과 달리, 오직 자신만이 사회의 비판을 견디면서도 자신이 추구하는 삶에 오롯이 진실될 수 있었거든! 그리고 이 모습이 카뮈가 말하는 반항하는 인간이야.
수많은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평가와 비판은 우리가 잘못된 답을 믿고 헌신하도록 만들어. 그렇게 삶의 목적은 이미 정해져있는 몇 가지 방식으로 결정될 뿐이고. 하지만, 부조리를 경험하고 완전히 무너지며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추구하며 나아갈 수 있어! 결론적으로, 인간이 경험해야 하는 부조리한 삶의 한계는 사람을 완전히 무너뜨리지 못해. 용기있는 반항을 통해서 세상 속에서 자기자신을 찾아갈 때에 가장 '인간다운' 사람을 살 수 있게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