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속 명언, 함께 읽어보자!

<데미안> 3편 : 작품 속 문장을 구체적으로 느껴보자!

*데미안의 재미있는 줄거리는 1편에서 확인할 수 있어!

*데미안을 이해하는 구체적인 해설은 2편에서 확인할 수 있어!


안녕~! 나는 고전 문학을 읽고 설명해주는 일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도치라고 해! 너희들 고전문학 읽는 거 좋아하니? 아마 어렵고 지루하고 공감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고전을 시도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을 것 같아 ㅠㅜㅠ 그래서 너희들에게 고전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기 위해서 도치가 찾아왔어~ 나와 함께 유명한 고전 작품들의 줄거리를 들어보고, 구체적인 내용 설명도 알아보고, 유명한 문장들도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작품을 하나씩 둘씩 알아가다 보면, 고전 읽기가 정말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될 거야!




3. 데미안에 담긴 명언들을 읽어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하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떻든 살아가면서 자연의 뜻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이로우며 충분히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의 여러 작품들은 (데미안, 싯다르타, 수레바퀴 아래서 ...) '위대한 성장 소설'이라고 불리면서 전세계 수많은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 왜냐면 헤세의 작품들은 어떻게 살아야할지가 막막하고 불안한 우리들에게 삶의 방향성을 알려주고, 우리를 무한히 응원해주기 때문이야! 작품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이 문장을 통해 헤세는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이 얼마나 특별하고 위대한 것인지를 강조하고 있어.


생각해보면, 그 누구도 '나'와 같은 삶을 살 수 없어. 태어나면서부터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경험, 관계, 환경, 사건들이 다 다르고, 성격이나 가치관 같은 내면도 전혀 다르니까. 그렇기에 '나'라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겪는 이 모든 시간들은 역사를 통틀어서 오직 한 사람만 경험할 수 있는 정말이지 특별한 것이야. 그런데, 이 특별함을 버리고 단지 남들이 하는 대로 살아간다면? 그것만큼 안타깝고 슬픈 일이 있을까? 데미안이 전하는 교훈을 읽어보기 전에, 먼저 우리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참 좋겠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나는 이 문장이 데미안이라는 작품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해!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라는 말은 우리의 삶이 추구해야 하는 목적이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운명을 따라가야 한다는 의미야! 앞서 말했듯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위대하고 특별한 것이라고 말했지? 사회에 치여서, 권위에 치여서, 타인에게 치여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삶의 목적을 바꿔버린다면 정말 큰 비극이지.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경험들과 나만 가질 수 있는 생각이 모이면, 나라는 인생만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가 생길 거야. 그것을 고민해보자.


많은 한국인들이 몇 살까지 뭘 이루어야 하고, 그 다음엔 뭘 해야하고.. 이러는 삶에 지쳐있어. 그러나, 우리가 그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남들과 다른 모습이 곧 실패로 여겨지기 때문이야. 요즘에는 쉬었음 청년을 비롯해서 정말 많은 청춘들이 자신의 삶을 실패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포기해 버려.. 삶을 망쳤다고 생각이 든다면 데미안의 목소리에 주목해보자. 우리의 인생은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고 거기로 나아가는 것에만 의미가 있어! 단지 사회의 성공을 따르는 것은 진정한 성공이 아니야.



카인과 그 표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한 가지 깨달음이 감지되었다. 그것은 신부님이 가르치는 것과 같지 않다는, 그것을 달리 볼 수도 있다는, 그 점을 비판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사회의 목소리를 벗어나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데미안은 '지금까지 받아들이던 세상을 반대로 생각해 봐야 한다'라는 방법을 강조하지. 어린 소년 데미안은 성경의 이야기를 반대로 해석하는 충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했어. 그 어린 아이가 선생님과 목사님의 이야기를 의심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으니까. 이러한 모습에서 상조되는 메시지는 이거야.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정답이 무조건 옳은 것인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꽤 많은 독자들이 이 부분에서 거부감을 느껴. 도덕, 종교, 어른들의 말을 반대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지. 이 부분은 작품이 쓰인 배경을 바탕으로 꼼꼼하게 이해해야 해! (2편에 있으니까 보고와 줘!!) 작품이 쓰인 1차 대전 시기에는 미친 지도자와 전쟁에 미친 정당의 말이 곧 정의이고 사회의 정답이었어. 그것에 의심하는 것은 이기적인 매국노라고 취급되었고. 지금 보기에는 명백한 오답이지만, 그때 그곳에 있었다면 우리가 잘못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까? 바로 이 부분이 헤세가 지적하는 부분이야. 무작정 사회를 비판하고 반대하면서, 내가 최고다! 하자는 말이 아니야. 그보다는, 우리가 당연한 정답이라고 여기는 가치관들이 어쩌면 끔찍하고 파괴적일 수 있음을 의심하고, 무작정 받아들이는 태도를 조심하자는 말이야!



"그러나 그걸 수행하거나 충분히 강하게 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소망이 나 자신의 마음속에 온전히 들어 있을 때, 내 본질이 정말로 완전히 그것으로 채워져 있을 때뿐이야."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다짐과 목표를 세우지만 금방 무너지고 말지? 그만큼 인간은 너무나 연약하고 불안한 존재야. 하물며, 다이어트 하기, SNS 끊기와 같은 일도 금방 실패하는 데,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일은 얼마나 어렵고 고된 일일까? 그래서 데미안의 삶을 살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내면의 목소리를 깊이 있게 듣고 이해하는 태도'야. 왜냐하면, 어느 정도의 호감과 목표로는 가치 실현의 삶을 살 수 없거든. 어떠한 불안함과 어려움이 다가와도, 그것을 이겨낼 정도로 순수한 열정과 목적 의식이 가능한 경우에만 가능해.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볼 때, 언제나 의심하고 조심해야 해. 단순히 '이게 좋아, 이게 하고 싶어'라는 생각이 든다면, 계속 그것을 의심하면서 내가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온전하게 이해해야 해. 남들이 나를 비난해도 끝까지 이루고 싶은 가치관인지, 그것이 정말 나에게 주어진 목적이 맞을지, 어쩌면 이 해답도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들을 계속 하는 것이지. 당연히 나에게 주어진 길을 깨닫는 일은 정말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일 거야. 그렇지만, 운명처럼 그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삶은 180도 달라질 것은 약속할게!



그러나 진짜 데미안은 저런 모습이었다. 지금 이 사람 같은, 저렇게 냉담한, 태고처럼 늙은, 동물 같은, 돌 같은, 아름답고 찬, 죽었는데 남모르게 전대미문의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의 주위를 둘러싼 이 고요한 공허, 이 정기와 별들의 공간, 이 고독한 죽음!


세상의 소리를 차단하고 오직 자신에게 집중하려는 데미안의 모습이 인상적이라 이 문장을 가져왔어. 데미안이 자신에게로 들어가는 모습은 마치 수도자의 명상처럼 시간이 멈춘 것처럼 묘사되고 있어. 죽은 듯한 모습으로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신과 대화하는 모습이지! 물론, 우리가 매일 같이 명상을 하고 고통을 참는 수련을 할 필요는 없지. 삶에 대해 고민하고, 정말 나라는 사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과정부터 이 과정의 시작이야. 다만, 내면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모습이 얼마나 숭고하고 위대한 일인지 느껴보고, 우리들의 고민들 역시 위대한 인생의 장면이라는 것을 명심해주었으면 좋겠어!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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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에 데미안이 말했다. 우리는 아마도 우리가 존경하는 하나의 신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는 함부로 갈라놓은 세계의 절반만 나타낸다고. 그러나 세계 전체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아브락사스라는 신은 작품을 이해하는 가장 핵심적인 상징이야. 그는 신과 악마가 반반씩 섞여 있는 모습의 신인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신과 달리 나쁘고 악한 모습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큰 차이점이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세상을 반대로 바라보자!'라는 말도 대부분은 좋은 가치들 안에서만 고민하게 되지. 좋다고 생각하는 여러 가치들을 동시에 생각해보는 정도가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이야. 데미안은 이러한 모습에 직접적으로 반박하고 있어!


싱클레어는 어려서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두 세계(착한 세계와 나쁜 세계)에 관심을 가져. 우리가 무조건 나쁘고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악의 세계에 흥미를 가지고, 그곳을 관찰하며 이해하는 싱클레어를 통해 완전히 외면하고 있는 '세계의 절반'이 중요함을 느낄 수 있어. 결국 데미안이 말하는 확장과 존중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과감하고 용기를 내야하는 일이야. 하물며 성경의 내용을 비틀며, 성경의 악에 대해 생각하기도 하잖아. 즉, 사회와 종교의 목소리를 벗어난다는 의미는 그럴듯한 대안을 찾는 태도가 아니야. 아예 모든 가능성을 (심지어 악의 세계를!) 열어두고 생각하며 진정한 나만의 답을 찾겠다는 용기있는 태도야!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을 비롯한 자아 실현에 대한 고전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자아 실현의 삶은 사실 행복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점이야..! 무슨 말이냐고? 꿈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고, 오히려 수많은 시기와 질투, 한숨과 비난이 가득하지. 불안한 우리들은 남들과 다른, 자신의 개성을 따라가는 사람에게 본능적인 질투를 느끼거든. 그래서, 정말 많은 청춘들이 꿈으로 가는 길을 포기하게 되지..


게다가 사회의 기준을 거부하는 일은 언제나 나를 의미없는 존재로 여기게 만들거야. 모두가 추구하고 부러워하는 성공의 기준을 나 혼자서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거든. 내가 의미있다고 여기는 꿈이 남들에게 무의미한 일이라면,, 멍청하게 인생을 낭비하는 놈이라는 비난을 받지. 점점 심해지면, 남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먼저 자신에게 이런 비난을 하게 되기 쉬워.. 그래서 자아 실현의 길은 무척 고난스럽고, 그래서 데미안이 말했던 내면의 충만함이 중요한 것이지! 이런 어려움에도 기필코 지켜야 하는 것이 자아 실현이거든!


심지어, 자아 실현을 달성한 이후에도 삶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어.. 왜냐면 세상의 행복, 성공과는 다른 기준을 나혼자서 달려왔기 때문이지.. 그렇지만, 내면의 실현은 그것이 아니면 안될 정도로 나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온 가치야. 그렇기에 자아를 따르고 그것을 실현하는 일은 무엇보다 숭고하고, 위대하고, 가치있는 삶의 모습일거야. 비록, 매일매일은 고통이 가득하지만, 오직 나라는 인생이 가지는 가치를 세상에 보여주니까! 운명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고통스럽더라도, 무너지지 말고 위대한 일을 해나가길 바랄게!



너 스스로 생각해 내려고 애써야 해. 그러고는 정말로 네 본질로부터 나오는 것, 그걸 하면 돼. 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아. 네가 너 자신을 찾아낼 수 없으면 다른 영들도 찾아낼 수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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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된 인간에게는 한 가지 의무 외에는 아무런, 아무런, 아무런 의무도 없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그래서 소설 <데미안>에는 삶의 유일한 길에 대해 강조하지.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와 방향은 오직 자신을 들여다보고, 나의 마음이 이끄는 길이 어디인지를 깨닫는 것! 그 길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슴 깊이 느끼고, 자신의 인생을 위해 용기 있게 나아가는 것!



지금 연대라며 저기 저러고 있는 것은 다만 패거리 짓기일뿐이야. 사람들이 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어. 서로가 두렵기 때문이야. (..) 그런데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헤세가 이 작품을 쓴 결정적 이유는 1차 대전 이후에 삶의 방향과 의미를 모두 잃어버린 당대의 청춘을 비판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지? (2편에 있으니까 보고와 줘!!) 문장에 있는 '패거리 짓기'가 그 모습을 나타내는 단어야. 불안함을 느낀 젊은이들은 의미없이 몰려다니면서 남들을 따라했고, 그곳에서 안도감을 느끼려 하였지. 그러한 모습이 전혀 의미가 없고, 부정적인 모습에 불과하다는 의미를 보여주는 단어이기 때문이야! 결국, 이들이 패거리짓기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삶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헤세가 이들을 비난하고 혼내기 위해 작품을 쓴 게 아니야! 오히려,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고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자 해서 이 작품을 썼어! 데미안의 메시지를 떠올려볼까? 내면의 목소리를 향해 나아가는 삶이 유일하게 주어진 의무이자, 올바른 모습이라고 했잖아. 이 문장은 헤세가 다음과 같은 말을 젊은이들에게 해주는 것과 같아.


"얘들아, 사는게 참 어렵고 혼란스럽지? 남들의 말에 따랐더니, 더 혼란스럽고 어렵기만 하고 말이야. 그런데, 사회가 말하는 방향이 무조건 삶의 정답이 아니야. 너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추구하는지,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봐. 그리고 그것만을 향해 용기있게 나아가보자! 삶의 유일한 정답은 너의 마음이 이끄는 그 삶을 향해 나아가는 거니까!"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내가 인간을 과소평가했음을 알았다. 그렇게 봉사와 고통의 위험이 제아무리 제복을 입혀 그들을 획일화해 놓았어도 나는 많은 사람들, 살아 있는 사람들, 죽어 가는 사람들이 운명의 의지에 눈부시도록 접근하는 것을 보았다.


싱클레어는 후반부에 전쟁에 참전해서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명령에 복종하고 있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느껴. 이 모습은 그동안 자신이 목격했던, '사회의 모습에만 따르는 수많은 길 잃은 사람들'처럼 보였기 때문이야. 그런데, 곧이어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모습 안에서 저마다의 삶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여기에서 엄청난 희망을 느끼게 되었지. 동시에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의지와 운명의 위대함을 깨달아!


물론, 우리들은 모두 사회의 틀에 맞추어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고 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있어.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런 의심없이, 어떠한 성찰과 반성 없이 인생을 살고 있을까? 아니지! 비록 겉보기에는 모두 똑같아 보여도, 저마다 진지한 고민을 하고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내가 살아야 하는 모습은 무엇인지를 고민해! 이건, 삶에 주어진 운명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능이야.


여기에서 우리는 희망을 느낄 수 있어! 비록 아직 용기내지는 못했지만, 우리 안에는 운명을 찾으려는 강한 열망이 존재해. 그렇기에 누군가 자신의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모두가 용기를 내고 마음이 이끄는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사실.. 나는 너희들에게 그런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어. 인기 없다고 생각하는 고전 문학이지만, 나는 책을 읽고 누군가와 나누는 일이 순수한 행복이자 목표야. 사회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행복을 향해 나아가도 된다는 용기를 나를 통해서 주고 싶어!! 앞으로 많은 고전 문학 작품과 함께 즐겁게 만나기를 기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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