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속 명언, 함께 읽어보자!

<프랑켄슈타인> 3편 : 작품 속 문장을 구체적으로 느껴보자!

*프랑켄슈타인의 재미있는 줄거리는 1편에서 확인할 수 있어!

*프랑켄슈타인을 이해하는 구체적인 해설은 2편에서 확인할 수 있어!


안녕~! 나는 고전 문학을 읽고 설명해주는 일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도치라고 해! 너희들 고전문학 읽는 거 좋아하니? 아마 어렵고 지루하고 공감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고전을 시도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을 것 같아 ㅠㅜㅠ 그래서 너희들에게 고전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기 위해서 도치가 찾아왔어~ 나와 함께 유명한 고전 작품들의 줄거리를 들어보고, 구체적인 내용 설명도 알아보고, 유명한 문장들도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작품을 하나씩 둘씩 알아가다 보면, 고전 읽기가 정말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될 거야!




3. 프랑켄슈타인에 담긴 명언들을 읽어보자!

창조주여, 제가 부탁했습니까? 진흙에서 나를 빚어 사람으로 만들어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절 끌어내달라고? - [실낙원], 존 밀턴 -


본격적으로 작품이 시작하기 전, [실낙원]의 문장 하나를 인용하고 있어. 문장 속 인간은 신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애처롭게 외치고 있는데, 결국 핵심은 탄생이 우리의 의지대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점이야! 그 어떤 존재도 자신의 요청대로 탄생하지 않으며, 부모님의 선택에 의해 낳음을 '당하는' 존재라고 부를 수 있겠지. 이러한 점에서 작품의 핵심 주제인 '창조자의 의무'라는 점이 생겨나! 비록 부모님이긴 해도, 결국 다른 사람에 의해 주어진 삶을 견뎌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비참함은 무척 억울한 것이 될 거야. 부탁한 적도 없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 속에서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건 참으로 불합리한 일이지.. 작가 셸리는 적절한 문장을 인용하면서, 우리가 가진 생명이라는 것에 대해 달리 생각해보도록 만들고 있지!



지식을 얻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자신의 자질이 허용하는 것보다 더 위대해지려고 열망하는 사람보다 자신의 고향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더 행복한지를 배우기 바란다.


작품의 핵심 주제는 '무분별한 기술 사용이 인간을 얼마나 파멸로 이끄는가'라고 할 수 있어! 사실, 이 무분별한 기술 사용이라는 말에는 단순히 기술을 통해 자연이나 다른 생명을 착취하는 것만 있지 않아. 좀 더 정확히는 '인간의 목표 달성'을 위한 기술 사용 전부를 의미해. 즉, 인간이 어떠한 목적(지적인 호기심, 명예, 성취욕, 부, 발전, 행복 등)을 얻기 위해 과학 기술을 발전했을 때, 모든 기술에는 부작용과 위험성이 존재해! 프랑켄슈타인은 나쁜 목적을 가진 적이 없고, 지적 호기심이라는 '순수한' 목적을 추구했던 젊은 학자였을 뿐이지. 특별히 나쁘지 않은 인물로 인해 발생한 비극을 다룬다는 점에서 우리는 기술 그 자체의 문제를 고민해야 해!


이 문장에서 말하는 '지식을 얻는 일'이나, '더 위대해지려고 열망하는 사람'은 모두 글이 쓰일 당시 과학 기술과 인간의 이성을 찬양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의미해! 이들은 기술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지..! 그러나, 이들보다 '자신의 고향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사람들, 세상을 탐구와 활용의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사는 곳이라고 보는 순박한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더 행복해. 그래서, 이 책의 작가 메리 셸리는 이성과 지식을 지나치게 중시하던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



하지만 막상 일을 끝내자, 아름다운 꿈은 사라지고 숨막히는 공포와 역겨움이 엄습했다. 내가 창조해낸 존재를 더는 참고 볼 수가 없어서 그 방에서 뛰쳐나왔다.


이 부분도 18~19세기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야. 프랑켄슈타인은 엄청난 열정과 목표 의식에 사로잡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본인의 연구에 몰두하여 결국 결과물을 만들어내었지. 여기까지는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세상에 만들어내는 과학자, 기술자의 모습과 동일해!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결과물을 보자마자 프랑켄이 느낀 감정이 '두려움'이라는 점이지..! 그 두려움은 괴물의 끔찍한 모습 때문도 있지만, 자신의 기술이 생각보다 역동적이고 자신이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닫는 데에서 오는 거야!


몇 년 전 유행했던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면, 자신이 만든 핵폭탄 기술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함을 과학자들은 그 순간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다고 묘사되고 있어. 또, 최근 인공지능 기술이 급격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인간이 기술을 통제할 수 없다는 '특이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두려움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지. 기술이 점점 고도화될수록,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범위까지 무섭게 넓어지고 있어. 이런 기술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이득이 되는 기술이라면 발전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발전시켜야 할까? 모든 기술에는 부작용과 위험성이 있어! '프랑켄슈타인의 두려움'은 오늘날 우리가 기술을 다룰 때 고민해봐야 할 부작용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어..!



■ 아! 어째서 인간은 짐승보다 우월한 감성을 지녔을까요? 그래봐야 더욱 얽매이기만 할 뿐인데. 그저 배고픔과 갈증, 욕정만 느낀다면 더 자유로울 텐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마음은 이는 바람에도, 우연히 마주한 말이나 말로 전달되는 풍경에도 속절없이 흔들리지요.


인간의 감정과 특성에 대해 한탄하는 프랑켄슈타인의 말이 인상적이라 가져와봤어! 결국, 프랑켄은 인간이 불행한 이유가 다른 동물들과 달리 뛰어난 이성과 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인간은 다른 동물들처럼 식욕이나 성욕과 같은 일차적 욕구를 넘어서는, 더 다양한 목표와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우리가 앞선 문장에서도 보았듯, 좋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능력은 때때로 불행함의 원인이 되기도 해! 글이 쓰이는 상황을 고려하여 문장을 살펴본다면, 이 역시 인간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당시의 사람들의 믿음에 대한 의문이라고 생각해. 인간은 무조건 우월하고 뛰어나다고 볼 수 있을까? 오히려, 잘못된 목표를 추구해서 피해를 끼치기도 하고, 갈등 속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지.. 그래서 이 문장은 인간의 이성과 감성이 언제나 올바르고 합리적이라는 사람들의 생각에 의문을 품게하고 있어!



■ 그런데 내 친구와 친척들은 어디 있을까? 내겐 어린 시절 지켜보았던 아버지도, 웃음과 애정어린 손길로 축복해준 어머니도 없었소. (...생략..) 나는 나를 닮거나 나와 친교를 맺으려 했던 존재를 본 적이 없었소. 나란 존재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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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을, 저주받을 창조자! 도대체 왜 내가 살았을까? 당신이 멋대로 내게 준 생명의 불씨를 왜 당장에 꺼버리지 않았단 말인가? 모르겠소. 절망이 아직 나를 지배하지는 않았던 모양이오.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의 방치로 인해 평생 불행한 삶을 살아야만 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아서 모두에게 외면받고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었어. 태어난 그 순간, 프랑켄은 괴물을 차가운 실험실에 버려둔 채 도망갔고, 괴물은 세상과 인생을 본인 스스로 깨우쳐야만 했지. 모든 이들에게 받는 혐오와 차별과 멸시를 참아가면서 말이야..! 사실, 이 작품을 평범한 괴물 소설과 다르게 만드는 가장 특별한 요소는 우리가 '괴물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볼 수 있어. 괴물을 단순히 배가 고파서, 복수를 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존재가 아니야! 오히려, 자신의 슬픈 삶에 대해 털어놓을 수 있는 이성적이고 감정적인 생명체야.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삶이라니... 말로 듣기만 해도, 우리를 슬프고 힘들고 답답하게 만드는 단어지.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를 보살펴주고 위해주는 사랑의 관계야. 괴물이 프랑켄을 찾아와 요청하는 내용조차도, 처음에는 처절한 복수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슬픈 삶을 들어주고 해결해주기를 바랐던 것이지.. 우리가 괴물의 사연을 듣게되는 이 순간부터 독자들은 괴물을 불쌍하고 외로운 존재로,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생명을 무책임하게 버려버린 잔인한 인간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말지. 그래서, 사실 이 작품을 읽을 때에는 괴물이 견뎌야 했던 비참함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어찌 생명을 가지고 그렇게 놀 수 있는 거요? 나에 대한 의무를 다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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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심하시오.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란 걸. 나는 당신의 아담이건만 아무런 죄도 없이 당신에 의해 기쁨에서 쫓겨나 타락한 천사가 되었소.


괴물의 슬픈 사연과 프랑켄슈타인의 잔인한 무책임을 깨닫게 되면서, 이 작품은 본격적으로 창조자의 의무에 대해 강조하기 시작해! 만약, 우리가 감정과 생각을 가지는 생명을 만드는 일을 한다면, 그것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을 져야만 한다는 내용이지. 맨 앞의 [실낙원] 속 문장에서부터 강조했듯 모든 생명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상태로 다른 사람에 의해 '주어지는' 인생을 살아가야 해. 그 과정에서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 등 힘겨운 것들을 견뎌내야 하기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지.. 괴물의 말처럼, '아무 죄도 없이' 쫓겨나서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고, 타락해버리는 비극적인 운명을 가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


생명에 대한 책임감은 정말 정말 중요한 주제야. 최근 발전하고 있는 생명 과학으로 인해 복제 동물을 만들거나, DNA를 조작해서 인위적인 생명을 만드는 실험도 진행되고 있고, 생각과 감정을 가지는 AI 기술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지.. 우리가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명 과학과 생명 윤리는 점점 더 무거운 토론 주제가 될 수 밖에 없을 거야..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생명에 대해 무책임한 나쁜 어른들을 정말 많이 볼 수 있어... 자신의 아이나 반려 동물을 함부로 학대하거나 유기하는 등 책임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말 오랫동안 심각한 사회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지.. 결국, 이 작품에서 말하는 '창조자의 의무'라는 것은 도덕 윤리와 기술 발전 문제를 모두 아우르는, 정말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에 연관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악마가 절실히 원하던 공감의 결과물로 자식이 태어난다면 악마 종족이 이 땅에 번식해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고 공포를 부추길지도 모를 일이었어요. 나의 이익을 위해 후대에게 이런 저주를 내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내게 그런 권리가 있을까요?


한편, 지난 2편에서 이 작품은 굉장히 중요한 '페미니즘' 소설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었어! 괴물이 나오는 과학 소설에서 왠 뜬금없는 페미니즘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 핵심이 바로 이 부분에서 나와! 생명을 잉태하고 임신하는 것은 오직 여성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지. 그런데,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남자 과학자는 오직 혼자의 힘으로, 과학의 힘으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면서, 여성의 역할을 빼앗아 버린 거야.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떠했지? 본인조차 책임질 수 없는 재앙을 만들어내면서 주변인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심지어 자신의 창조물과 자신까지 비극적인 삶으로 이끌었지.. 그래서, 이 소설은 '무분별한 과학 기술로 인한 재앙'으로도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여성의 역할을 빼앗으려는 남성의 비극'으로도 해석할 수 있어. 18~19세기의 과학자들은 남성적인 이성이 여성적인 것을 지배할 수 있다고 자만했는데, 그 모습에 대한 직접적 비판인 것이지..


페미니즘을 또 보여주는 장면이 이 문장이야!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암컷 괴물을 만들다가 문득 엄청난 공포에 휩싸여. 그건, 혹시나 수컷 괴물과 암컷 괴물이 짝짓기를 해서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낸다면... 그래서 세상에 괴물이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이지. 즉, 암컷 괴물이 가지는 생식 능력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고, 이것은 곧 남자 과학자(이성, 합리성의 상징)가 여성이 가지는 고유의 생명 창조 능력을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어! 결론적으로, 페미니즘 관점에서 이 작품을 생각해본다면, 여성의 역할을 빼앗으려 하는 남성 중심적 사회가 불러올 비극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지!



이제 나는 자유의지로 사고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분노에 휩쓸렸고 내게 힘과 평정을 주는 것은 오로지 복수심뿐이었지요. 내 감정을 결정하는 것도, 내가 차분하게 머리를 굴리게 해주는 것도 복수심이었습니다.


괴물의 잔인한 복수를 당한 프랑켄슈타인은 그동안 자신이 추구했던 자유의지, 이성, 논리 등을 모두 잊어버리고, 감정에 휩싸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특히, 자신에게 다가온 복수심이라는 불타는 감정을 느끼게 되자, 그동안 프랑켄슈타인을 지탱해주던 지식과 생각은 한순간에 의미없는 것으로 사라져버리지. 프랑켄의 최후의 모습까지도 작품의 주제처럼 '18~19세기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던 시대의 모습'이 얼마나 허약하고 허황된 꿈인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할 수 있어! 그토록 자신했던 모습들조차 가장 직접적인 감정에 휩싸이면서 사라져버렸으니까! 결국, 이 작품은 당대 과학자들과 시민들이 맹신했던 과학, 합리성, 남성적인 것들을 비판하고, 여성적이고 생명력이 넘치는 것을 추구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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