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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an de TJ Sep 18. 2022

11. 여름휴가와 냉장고 청소

엄마의 여름휴가는 늘 냉장고 청소를 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면 매일 똑같은 루틴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우리 집도 그랬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부모님과 "잘 잤어?"라는

아침인사를 하는 등의 일은 없었다.


그런 건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그저 사치스러운 일상이었고,


늦은 밤 얼굴을 마주 보고 저녁밥을 먹고 나서

하지 못한 밀린 일들을 하다 보면

베개에 머리만 대어도 잠이 오던 날들이었다.


그러다 주말이 되면 늘 할아버지 댁으로 가서

하루 종일 땡볕 아래에서 밭일을 돕거나

그게 아니면 가족들 경조사에 참석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모처럼 늘어지게 잠을 자는 게

내가 기억하는 우리 가족의 주말 일상의 전부였다.


지금처럼 여행이니 캠핑이니

가족끼리 일상탈출이나

힐링이 되는 취미생활 따위는

생각해볼 수도 없는 사치였고,


진짜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일상,

그것이 그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가는

서민의 삶이었다.


그런 보잘것없는 서민의 삶에도

일 년에 단 며칠이라도 꽃이 피는 시기가 있었다.


1년에 딱 한 번 주어지는 엄마의 여름휴가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만나는 오아시스였고,


엄마와 시간을 온전히 함께하는 그 시간들은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순간들 중에서

정말 손가락에 꼽히는

행복으로 꽉 채운 순간들이었다.


아이에게 최고의 선물은 부모이다.


나는 행복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시장은 늘 바쁜 곳이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살기 위해 불나방처럼 몰려드는 곳이다.


그런 치열한 삶의 현장에도 한참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에는 문을 닫고 휴가를 보냈는데..


시장에서 미싱을 하셨던 엄마도 그즈음이 되면 여름휴가를 보낼 요량으로 마지막까지 힘을 쥐어짜셨다.


계속되는 잔업을 근근이 버티며

마침내 맞이한 엄마의 여름휴가는

엄마보다는 오히려 내가 더 많이 기다렸다.


그리고 엄마가 휴가를 받고 오신 날엔

늘 발을 씻겨 드리고 어깨를 주물러 드렸다.


늘 손아귀가 안 쥐어질 정도로 아프고

어깨가 결려 파스를 붙이던 엄마의 어깨는

늘 돌덩이처럼 딱딱했었다.






여름휴가의 첫날은 늘 그렇지만,

깊고 편안한 엄마의 늦잠으로 시작되었다.


곤히 잠든 엄마를 깨우지 않으려고

아침에 까치발을 들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퉁퉁 부은 얼굴을 마주하며

서로 한번 씨익- 웃고 나면,

엄마는 이내 국수를 삶으셨다.


큰 냄비에 물을 끓인 후 멸치와 양파, 무를 넣고

푹 우려낸 멸치육수가 준비되면,


어른 팔뚝만 한 국수를 꺼내 부추와 함께

푸짐하게 삶아내셨는데

집안 곳곳에 퍼지는 멸치 향과

국수가 삶아지는 냄새는 침샘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목구멍으로 꼴딱 침을 삼키다 보면,

어느새 푸짐한 국수를 큰 그릇에 내어주셨는데

그 맛이 그리워져서 본가에 갈 때마다

나는 지금도 가끔 엄마에게 국수를 먹자고 졸라댄다.


어릴 적 먹었던 맛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데

특히, 그 진한 멸치육수에 양념장을 넣고

후루룩 마시는 국수는 별미 중의 별미였다.


없는 살림에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몇이나 있었을까!


국수라면 늘 두 그릇을 드셨던

엄마는 잔치국수를 참 좋아하셨다.


삶의 무게는 우리 집을 과거로 돌려놓았고,

70년대도 아니었지만,

IMF가 주고 간 아픔으로 참 오래도록 신음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버텨냈고,

그 버틸 힘은 위대한 일상에서 나왔다.








엄마의 여름휴가는 늘 냉장고 청소를 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는데 나는 그 일이 참 좋았다.


왠지 엄마가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달까?


엄마는 마치 그동안 마음의 짐이라도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양 냉장고 문을 활짝 열어젖히셨다.


냉동실에 가득 들어찬 성에를 제거하고, 냉장고에 든 상한 채소들을 들어내고, 검은 비닐봉지에 둘러싸여 정체를 알 수 없는 식재료들을 확인하셨다.


상한 음식이라도 버리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신 아버지의 눈을 피해 상한 반찬을 버리고, 냉장고를 새것처럼 청소하셨다.


먹을 것이라면 냄새가 나더라도 버리질 못했던 아버지와는 달리 엄마는 냉장고를 다시 정리해 채우셨는데 나는 그걸 볼 때마다 뭔가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냉장고에 넣어두면 냄새만 날 뿐임에도 아버지의 고집으로 엄마는 늘 아버지의 눈을 피해 가족의 건강을 지키려 애쓰셨다.


물론 아버지는 맛이 살짝 가려하는 음식은 지금도 다시 끓이거나 냉장고에 얼려두면 괜찮다는 이상한 논리로 가족을 괴롭힌다.


무엇이 중헌디!


엄마의 그러한 노력에도 나는 잘못 먹은 음식들로 자주 고생했다.


대충 막 먹어도 괜찮다는 아버지의 말은 늘 내 몸에 두드러기를 불렀고 나는 그때마다 마이신이라는 항생제가 가득 든 약을 여섯일곱 알씩 건네받고 삼켰다.


어린 시절 돈이 없어서 약국에 팔려가서 시다를 하며 곁눈질로 배웠다는 아버지는 자기 마음대로 약을 제조해 건네셨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아버지의 손을 감히 뿌리칠 수 없었다.


그땐 그랬다지만, 너무 무모한 일들이 많았다.






엄마는 늘 아들의 건강을 염려하셨고, 그 걱정으로 없는 살림에도 내 앞으로 실비보험과 암보험을 넣으셨다.


내 나이 마흔이 넘어서 보험료 납입의무가 끝나자 환급금을 받았다며, 이건 내 돈으로 넣었지만 아들 앞으로 든 보험이니 네가 받는 게 맞다며 한사코 돈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그 어려운 살림에도 쪼개서 넣은 보험료는 엄마의 고된 인생을 갈아 넣은 피와 땀이기에 차마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엄마는 “그러면 내가 쓰고 싶은데 돈을 쓰겠다”라고 하셨고, 나는 “그렇게 하시면 좋겠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런 대화가 있은 다음 날 엄마는

“내 며느리! 너무 이쁘고, 늘 고생을 많이 해서

마음이 안 좋다!”며 아내에게 거금을 모두 보내셨다.


엄마는 늘 아내를 아끼셨고, 나는 그렇게 잘 지내는 엄마와 아내를 보며 마음이 흐뭇하다.




To. 엄마


돌이켜 생각해보니 엄마는 늘 저를 지켜주셨네요.


고맙습니다.


자식의 건강을 지켜주느라..

자식의 배고픔을 달래주느라..

자식의 미래를 밝혀주느라..

엄마는 그토록 피곤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내셨네요.


존경합니다.


엄마는 참 대단한 엄마예요!

오늘도 내일도 사랑합니다!


         From.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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