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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an de TJ Sep 21. 2022

12. 엄마의 휴가

바다를 보며 마지막을 생각한 순간, 날 믿고 마음을 연 네가 눈에 밟혔다

누구에게나 가슴속 깊이 남아있는 상처가 있다.

그 상처는 절대 아물지도 않으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절대 잊히지 않는다.


상처받은 이는 평생을 마음에 담고 살아가는데

상처를 준 이는 이런 사실을 절대 모르거나

알아도 금세 잊어버리고 살아간다는 사실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분노에 차오르게 한다.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와 뉘우침도 필요하지만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해야 하는 큰 결단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세상의 많은 슬픈 이야기들은 종종

가족이라는 울타리 아래에서 소리 없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불행의 씨앗은 기어코 살아남아

또 다른 불행을 낳아 아픈 추억을 남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으로 이를 극복해왔다.


우리는 사랑으로...

서로의 눈물로...

어깨 두드리며 위로하며 치유한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은 불행이었으나

우리는 늘 정직하게 행복의 씨앗을 다시 뿌렸다.


그게 우리의 삶이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유독 엄마에게는 바라는 것도 많았고,

늘 불만이 가득하셨다고 한다.


지금도 그때 왜 자신에게 그렇게 모질게 대했는지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물어나 볼 걸 그랬다며

궁금해하는 엄마의 말을 듣다 보니

파란만장한 엄마의 인생 이야기를 곱씹어 보게 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삼촌과 고모가 함께 사는 집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고 여덟 살이 된 나와 동생이

태어난 지 몇 달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


아버지는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일을 하러 나가셨는데

늘 아버지의 아침을 챙기는 것에서 엄마의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조리원에 가서 산후조리를 할 여유는 당연히 없었고, 집에 살림하는 여자는 바깥에서 일하는 남편의 아침 밥상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 기억에도 그때 아버지의 아침식사로

새로 출시되어 나온 사리곰탕 라면이 상에 올라오자

어린 나는 라면 한 가닥, 국물 한 숟갈이라도

더 얻어먹으려 했던 게 기억난다.


그렇게 고된 시집살이는 아이를 낳고서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채로 계속되었다.


할머니는 밭일을 하며, 곡식과 채소를 키워

시장에 내다 파는 일을 하셨는데

어느 날 수확해두었던 강낭콩 관리를

잘하지 못해 벌레를 먹은 일이 생겼다.


그게 아까웠던 할머니는 강낭콩을 물에 불려

부엌에 놔두고는 엄마에게 밥에 콩을 넣고

지어먹으라고 하셨다.


동생을 낳고 두어 달이 지나 겨우 몸을 추스르는

엄마는 서슬이 퍼런 시어머니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 콩을 골라내다 보니 도저히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시어머니의 말이라도 썩은 콩을 먹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음 날에도 할머니는 그 썩은 강낭콩을 부엌에 두러 왔다가 얼굴이 울그락 붉그락되었다.


부엌 방문을 열어젖힌 할머니는

"니는 왜 이 귀한 걸 안 먹노?"라며 고함을 쳤고,


엄마는 "어머니 이거는 너무 썩어서 골라내도 먹을 수 있는 게 없어요."라고 말했다.


자신의 말을 되받아친 데다 자기의 뜻을 거역한

며느리가 못마땅했던 할머니는

"그러면 됐다. 내가 먹고 죽으련다.

내가 다 먹을 테니까 니는 손도 대지 마라!"며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엄마는 내가 왜 이런 걸 먹어야 하고,

왜 이런 일로 혼이 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난리를 치고 난 후 지친 엄마는

어린 동생 옆에서 누워 하염없이 울었다.


한참을 울었지만 배도 고프지 않았고,

하루 종일 그렇게 누워만 있었다.


정말 힘이 쭉 빠진 병든 닭처럼 그냥 널브러져 있었다.


하필 어린 동생은 그날 계속 설사를 해댔고,

기저귀와 이불에 이물질들이 묻어 나왔지만,

아무것도 할 의욕이 없었던 엄마는

뒤처리도 하지 않은 채 누워만 있었다.


평소 같으면 식사를 준비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점심을 챙겼어야 했겠지만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번갈아가며 혀를 끌끌 찼다.


밥을 먹는 내내 나는 마음이 불편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못 배워서 저런다.

집안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계속 엄마 흉을 보았다.


그러다 밤이 되어 아버지가 퇴근해서 돌아왔다.

할머니의 한탄을 듣고 어지러운 방구석을 보자

눈이 돌아간 아버지는 부엌에서 칼을 찾아들고

"XX 년 내가 오늘 니 죽여버린다."며 길길이 날 뛰었다.


큰 샤시 유리창을 여섯 장이나 깨부수며

동네가 떠나가라 고함을 치는 탓에

엄마는 맨몸으로 황급히 도망을 갔고,

엄마를 찾으러 아버지는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엄마는 살기 위해 연탄보일러가 있는

그 비좁은 공간에 숨었다고 한다.


매캐한 연탄가스가 코를 쿡쿡 찔렀지만,

칼을 들고 설치는 미치광이에게 눈에 띄는 순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힘없는 문고리를 부여잡고 눈물범벅이 되었다고 한다.


밤이 깊어지자 정신이 돌아왔는지 어쨌는지

어느새 조용해졌고, 나와 동생은 숨을 죽여

엄마를 기다렸다.


그 어린 젖먹이가 뭘 알았을까? 싶었지만,

기특하게도 녀석은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추운 바람이 부는 계절!

그나마 연탄보일러가 옆이라 견딜만했다는 엄마는

새벽이 되자 그 좁은 문을 열고 나와 방에서 태평스레

자고 있던 아버지를 흔들어 깨웠다고 한다.


"당신 일어나 봐라!"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내일 날 밝거든

가서 이혼해줘라."


그리고 엄마는 아버지에게 흠씬 맞았다.


제대로 된 산후조리도 못 받은 여자에게 손찌검이라니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하고도 참 뻔뻔했다.


엄마는 그 어린 핏덩이를 둘러업고 집을 뛰쳐나갔고,

정처 없이 떠돌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바닷가

근처 어딘가에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시내버스를 타고 버스종점까지 갔을 것이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생각도 해보고

내가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다를 보며 마지막을 생각한 순간,

엄마는 자기를 믿고 마음을 열어준 내가 끝내 눈에 밟혔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잘 따르고, 애교를 부리던 내가

겨우 엄마에게 마음을 열고 '엄마! 엄마!'하는데

그 불쌍한 것이 원수 같은 그 인간의 손에

그리고 또다시 다른 사람 손에 키워질 것을 생각하니

차마 그건 못할 짓이라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겨우 마음을 열고 받아준 아이인데

가슴으로 낳은 아이인데

나 마저 이 아이를 포기하면 절대 안 될 건데...


그렇게 엄마는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그날 이후로 집에 잘 들어오지 않으셨고,

"엄마는 언제 오냐?"는 내 물음에 대꾸하지 않으셨다.

할머니도 고모들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어린 나는 엄마가 동생과 함께 단둘이 여행을 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나는 그냥

"곧 돌아오실 거야!"라는 느낌이 들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냥 엄마는 돌아올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모에게 크게 혼이 난 아버지는

엄마가 있는 이모집에 한 달을 꼬박 찾아갔고,

할머니를 데려가서 사과도 했다고 한다.


술 냄새를 풍기며, 마음에도 없는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는 할머니를 보고도

엄마는 마치 살아 돌아온 보살인 양

마지못해 용서를 했다고 한다.


엄마의 휴가는 한 달이 지나서야 끝이 났고,

아버지는 엄마가 원하지도 않은 분가를 하겠다며,

또 길길이 날 뛰었다고 한다.


못난 자식이 저리 난리를 치는데

부모가 무슨 힘이 있으랴!


그 일 이후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착한 자기 아들이 못된 여자 하나 때문에

저렇게 바뀌었다며 엄마를 참 미워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시월드의 헬게이트가 열린 것이었다.


그 후 우리 가족은 분가를 했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연락을 받고서

할아버지 댁을 오가며 늘 동분서주해야 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불쌍한 피해자 마냥

불쌍한 척을 하고 있고,

피해를 입은 사람은 마치 가해자인 듯

마음 불편해했다.


그때의 일은 참으로 온당하지 않은 일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가

계속 귓전을 때린다.


나는 이따금 음... 아...  등의

아무 의미없는 외마디 탄성을 지를 뿐이었다.


어찌 그런 모진 삶을 살아냈는지...

가여운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가슴 깊숙이 묻어두고 싶었던 이야기

아무도 몰랐으면 싶었던 불편한 이야기

차마 부끄러워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


엄마는 아직도 그 일을 가슴에 담아두었고,

그때의 기억은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엄마의 휴가는 그렇게 아팠다.






엄마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순박한 시골처녀였다.


시골처녀가 어른이 되어서라도

도시생활을 해봤었다면,

조금은 약아빠진 생각을 할 줄 알았을 텐데..


깡촌에서 칠 남매 중 막내로 귀여움을 받으며

곱게 자란 예쁜 막내딸은

애교도 없고 급한 성격이었지만,

세상을 정직하게 살고

그저 성실하면 충분하다 여겼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었으니 애 딸린 돌싱남도

그저 불쌍히 여겼을 것이다.


참 대단한 사람이다.






To. 엄마


엄마!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샤워를 하고 나니 참 나른하네요.


침대에 누워 편안하지만,

피곤한 몸이라 반쯤 감긴 눈으로

엄마의 안부를 물어봅니다.


늘상 하는 말이지만 "엄마! 식사하셨어? 뭐 드셨어?"

"맛있는 거 드셨어? 별일 없으셨어?"라는

안부를 건네봅니다.


엄마는 늘 "내 걱정 하나도 안 해도 된다." 고 말합니다.


혼자 먹는 밥이 얼마나 맛있을 것이며,

혼자 있는 시간이 얼마나 외로울까요?


펄펄 날아다녔던 엄마가

이제는 지하철까지 겨우 걸어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시니


철없는 아들은 이제야 엄마가 나이가 들었구나 란

생각을 해봅니다.


젊은 날 꽃다운 엄마의 희생과 사랑으로

나는 이렇게 편안한데


늘 입으로만 엄마를 걱정하네요.


죄송하고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From.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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