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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an de TJ Sep 26. 2022

13. 마더 테레사

세상이 칭송하는 영웅은 평범하고 가장 낮은 곳에서 사는 사람이다.

우리말에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병수발을 드는 동안 환자와 가족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칠 수밖에 없는데 가족이란 이유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기도 하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지 못해 안달이 나는 경우도 많다.


술과 담배를 즐겼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모두 당뇨병과 위암에 시달리다 결국 세상을 떠나셨고, 병원에 계셨던 기간 동안 아버지와 엄마는 그 힘들다는 병수발을 수년간 하셨다.


그 힘들고 긴 병에도 효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엄마의 삶은 늘 피폐하게 메말라갔다.

"자식이 효자라서 정말 좋겠다."는 말은 입장을 달리 말하면 "남편이 효자라서 너무 힘들겠다."는 말과 동의어 그 자체다.


그래서 다들 딸 가진 부모들은 적당한 집에 적당하게 시집가서 큰 고생 없이 살기를 바라고, 아들 둔 부모들은 내 아들 힘들게 안 하는 여자를 며느리로 들였으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요즘처럼 결혼하자마자 시부모에게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시대에 이런 이야기들은 옛날이야기이고, 아직도 이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면 그야말로 옛날 사람인 것이다.


내 엄마 네 엄마가 아니라 그냥 우리의 엄마일 뿐이다.


그리고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만약 우리 집처럼 긴 병에 효자가 있으면, 그 효자의 가족들은 너무 힘든 삶을 살아야 한다.


효자는 그의 선행으로 주위 사람에게 칭찬을 받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 효자의 효도는 오롯이 그만의 효도가 아니라 그 효자의 배우자와 가족들이 함께 효를 다했기 때문에 효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효자는 그의 가족들에게 잘해야 한다.






엄마는 의외로 할아버지와 특별한 추억거리나 기억이 없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좀 의아했지만 나는 곧 이해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할아버지 스스로 며느리에게 이러쿵저러쿵 말씀을 많이 하셨을 타입도 아니셨고, 며느리를 끔찍이 생각해서 뒤에서 따로 챙겨주는 그런 성격은 아니셨다.


그러니 기억에 남을 만큼 큰 추억이나 기억이 없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위암 선고를 받으시면서 정말 안 가본 병원이 없었을 정도로 아버지와 엄마는 진심으로 열과 성을 다해 병간호를 하셨다.


다른 모든 환자 가족들이 그렇듯 처음에는 모두가 걱정과 염려를 하지만,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는 일은 일상처럼 이어지는 일이고 아무리 착하고 능력 있는 자식들이라 해도 아픈 부모의 곁에서 그 자리를 지키기란 어렵다.


그들도 그들의 일상을 살아내어야 하기 때문에 서로 안타까운 일임을 잘 알지만 어쩔 수 없다며 서로가 적정한 선에서 선을 긋는다.


우리 집도 그러했다. 아버지의 형제들은 많았지만, 결국 아버지만 할아버지의 곁을 끝까지 지켰다.


물론 그 형제들은 자기들도 할 몫을 다했다고 하겠지만, 대낮이든 새벽이든 할아버지를 간병하던 부모님의 모습을 직접 지켜봤던 나로서는 그들이 과연 그들의 몫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구부러진 나무가 고향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올곧게 잘 자란 이쁜 나무는 큰 쓰임을 위해 베어져 어딘가에 필요한 곳을 지키겠지만, 고향 선산을 홀로 지키는 것은 허리가 굽어 어디 쓰기도 어려운 굽은 나무가 지킨다는 말이 그래서 와닿았다.


결국 못나고 가장 힘없는 자식이 바보같이 부모 곁을 지킨다는 옛말처럼 나의 아버지와 엄마는 그렇게 그의 부모 곁을 지켰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버지와 엄마를 도와드리고자 나의 스무 살을 할아버지가 계신 병원에서 보냈다.






피가 끓는 젊은 나이에 하루 종일 병원에 있으려니 좀이 쑤셨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도 할아버지는 원체 마르셨고, 특별히 원하시는 것도 없으셨다.

대신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는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겨하셨으나 그마저도 몸에 힘이 없어지니 말씀하시는 것도 힘들어하셨다.


몸이 힘드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병원에서 찾을 수 있는 기쁨이라 해봐야 그저 사람들의 병문안이나 손에 움켜쥔 은단과 호두알이 전부였다.


건장한 20대 남자가 하루 종일 거동도 하지 않는 노인과 함께 하루 종일 있는 일은 그야말로 곤욕이다.


지금이야 손에 두고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있었지만, 20년 전 그 당시에는 겨우 휴대폰이 나오던 시기였고, 문자메시지 정도나 보낼 정도의 디지털 문명시대라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TV를 보거나 원치도 않던 신문이나 보며 과자봉지를 뜯는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가끔 몸이 아프다며 손으로 좀 쓸어달라고 하셨다.


"야~야~~ 내 등 좀 쓸어두가!"

"할배! 등 주물러 달라고요?"

"아니 좀 쓸어달라고..."

"쓸어 달라는 게 무슨 말이지?"

"됐다마... 그만해라..."


그렇게 나는 환자가 원하는 것 하나도 할 줄 모르는 몸만 큰 바보였다.


엄마가 일을 마치고 할아버지가 계신 병원으로 오셨다.

땀으로 젖은 근무복을 넣은 쇼핑백을 한 켠에 두고, 숨 돌릴 새도 없이 이것저것 치우셨다.

하루 종일 미싱을 하느라 어깨와 손이 성치 않았을 엄마는 그 지친 손으로 별로 치울 것도 없는 서랍과 침대를 매만지며 시트도 갈고, 귀찮아서 미쳐 치우지 못했던 오줌통도 직접 갖다 버리셨다.


나는 할아버지 곁에서 숨만 쉬고 있었을 뿐 병간호라고 할만한 일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엄마가 하는 일을 지켜볼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말씀하셨다.

"야~ 야~~ 내 등 좀 쓸어두가!"

"예~ 아버님, 어디예? 여기예?"

그렇게 등을 쓸어드렸다.


할아버지는 그제야 편안한 미소를 보이셨다.


나는 늙고 아프면 피부에 닿는 모든 자극이 따갑게 느껴져서 주무르는 것조차도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성난 살갗들이 진정이 되도록 어루만져주는 것이 쓸어준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엄마의 손길을 보고서야 이해가 되었다.


마치 "마더 테레사"가 여기 계시다면, 흡사 저 모습이 아니었을까!





늘 집에서 가장 작고 사소한 일부터 챙겨 온 엄마는 본인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던 것 같다.

가족들의 편안함을 위해 따뜻한 마음으로 늘 작고 사소한 일들을 도맡아 하셨다.


새벽이슬을 맞으며 갈았던 연탄에도 엄마의 손길이 닿아 있었고, 집안 가득 구수한 향을 풍기는 보리차를 끓이는 주전자에도 엄마의 손이 갔었고, 냉장고 안에 들어있던 반찬들 속에도 엄마의 수고로움이 있었다.


그것들 모두에 엄마의 사랑이 들어 있었다.

마더 테레사의 위대한 사랑이 작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처럼 엄마의 위대한 사랑도 그 작은 사랑들에서 시작되었다.


엄마는 영웅이었다.


"If you try, you will find it impossible to do one great thing. You can only do many small things with great love"         - Mother Teresa


그래서 세상이 칭송하는 영웅은

평범하고 가장 낮은 곳에서 사는 사람,


바로 세상 모든 엄마!






To. 엄마


과거의 힘들었고 안 좋았던 일들은 다 잊어버렸다고 말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어찌 사람이 저렇게 무딜 수가 있나 생각했는데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보니 엄마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네요.


그 숱한 시간을 견디려면 온전히 다 기억하거나 아니면 다 잊어버리거나 둘 중 하나였을 테니 엄마는 끝내 바보처럼 착하게 사는 길을 선택했네요.


그리고 엄마는 나의 영웅이 되셨네요.

나의 영웅, 고맙습니다.


      From.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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